유다를 정통 계보로 삼은 이유
유다를 정통 계보로 삼은 이유
  • 이재록목사
  • 승인 2018.04.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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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강해(110)
이재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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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에게 형의 후사를 잇도록 해야 했지만 망설여졌습니다. 혹여 두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며느리 다말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유다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셀라가 장성하면 부르겠다 했지만 실상은 셀라를 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만일 셋째 아들을 줄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재가할 수 있도록 며느리에게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적당히 그 상황만 모면하고자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해서 다말을 친정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이 장성하기까지 아무런 기별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녀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며느리 다말은 점차 유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다말을 통해 얻은 유다의 아들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시아버지 유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다말이 느낀 배신감은 참으로 컸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그를 통해 대를 잇고자 합니다. 명목상으로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실제 그 속에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과 시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말은 유다 집안의 큰며느리로서 누릴 수 있는 권한을 바라고 지금까지 인내해 온 세월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말은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로 올라온 시아버지 유다 앞에 창녀처럼 꾸미고 다가가 미혹합니다. 마침내 목적한 대로 그녀는 잉태하게 됩니다. 다말은 자신이 잉태하면 분명히 부정한 행동을 했다고 오해받을 것을 예견하고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시아버지 유다를 미혹할 때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받아 놓음으로써 후일 유다가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석 달쯤 후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분노한 유다는 당장 다말을 끌어다 불태워 죽이라고 합니다. 영락없이 행음한 여인으로 몰린 다말은 사람을 보내어 자신을 잉태시킨 남자의 것이라며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놓습니다.

그제야 유다는 모든 정황을 깨닫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 38:26) 하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유다가 약속대로 장성한 셀라를 다말에게 주었다면 이 같은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거짓말이 이런 불행한 사건을 초래한 것입니다. 마침내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베레스와 세라였으며 그중에 베레스를 통해 유다의 가문은 대를 잇습니다. 이렇게 해서 혈통으로는 유다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계보에 다말과 그가 낳은 아들 베레스의 이름이 오르게 됩니다(마 1:3).

유다를 정통 계보로 삼은 이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유다를 야곱의 정통계보로 삼아 그 계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영적으로 야곱의 장자이자 가장 선하고 중심이 좋은 요셉을 통해 계보를 이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므로 그때그때마다 비교적 선하고 합당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예수님의 계보를 이어가셨습니다. 물론 야곱의 아들 중 가장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명, 즉 애굽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족속이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 길을 예비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는 야곱의 아들 중 오직 요셉의 선한 마음과 그릇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것은 유다를 통해 이루십니다. 유다는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에 비하면 정통계보를 잇기에 부족함이 많았지만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나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유다의 제안으로 요셉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말의 일로 자신의 허물이 드러났을 때에도 숨기거나 모면하려 하지 않았지요(창 38:26).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음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창세기 44장을 보면 동생 베냐민이 도둑의 누명을 쓰고 애굽의 종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도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타고난 중심이나 그릇이 탁월하다 할 수 없고 마음에 악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사람의 도리를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조상의 기를 받고 태어나신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인 계보를 이어감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나마 선한 사람들을 택하여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이 유다 지파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아시면서 다말 사건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람만이 아니라 악하고 추한 사람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선한 사람만 택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섭리 안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도 있으며 처음부터 깨끗한 그릇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 안에 들어와 맑은 물로 씻어 깨끗해지는 만큼 존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 계보를 통해 예수님이 나신 것만 보아도 ‘나는 좋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서’라는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시켜 나가면 하나님 섭리 안에 쓰임 받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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