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이렇게 커질줄 몰랐다, 데뷔작이 히트작 정은영·박윤솔
'판' 이렇게 커질줄 몰랐다, 데뷔작이 히트작 정은영·박윤솔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8.05.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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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판' 정은영(오른쪽)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뮤지컬 '판' 정은영(오른쪽)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판이 커질 줄 몰랐어요."

신예 창작진의 창작뮤지컬 '판'이 어느덧 세 번째 시즌을 연다. 정동극장의 올해 두 번째 기획공연이다. 6월12일부터 7월22일까지 이 극장 무대에 오른다.

19세기 말 조선이 배경이다. 양반가 자제 '달수'가 염정소설과 정치풍자에도 능한 최고의 이야기꾼, 즉 전기수(傳奇叟)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달수는 인간미에 입담까지 겸비한 '호태'를 통해 이야기꾼의 매력에 빠지고,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아나가는 과정이 뼈대다.

정은영(32) 작가와 박윤솔(33) 작곡가가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분 공연으로 만든 이 작품은 2017년 3월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기획공연, 12월 정동극장 '창작ing' 시리즈로 관객과 만나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들었다.

정 작가는 '판'의 왕성한 생명력에 대해 "기분이 좋아요. 소박하게 시작한 데뷔작인데 신인의 작품으로는 예상치 못하게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요"라며 웃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판'이 말 그대로 판을 제대로 깔았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무대'로 통하는 '판'은 풍자가 가득한 자리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노니는 공간이자, 억눌림을 털어내고 새롭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통 연희의 양식을 빌려와 흥겨움을 더한다. 이번 세 번째 공연까지 모두 지휘한 변정주 연출은 "우리 전통 연희 놀이의 개념으로 뮤지컬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판' 정은영(오른쪽)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그러나 이종교배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실험이 초반에는 두 젊은 창작진에게 두려움이었다. "일반 뮤지컬 관객들에게 익숙한 문법의 뮤지컬이 아니었죠"(정은영)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시점의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객석과 통했다. '비선 실세'를 둔 사또가 '검은 명단'을 만들고, 사또가 퇴임 뒤에 거주할 절을 짓기 위해 장사꾼들로부터 후원금을 '강제'로 걷는 장면으로 정부의 악행을 풍자하며 호쾌한 웃음과 시원한 박수를 얻어냈다. 민속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이 풍자의 정점이었다.

정 작가는 "배경이 조선시대지만 현재의 이야기에요. 정치 풍자도 들어가 있고,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도 있죠. 그런 현실의 문제점을 짚은 것에 대해 '재치 있고 통괘하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라고 짚었다.

음악적인 쾌감도 상당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연희자를 중심으로 빚은 음악편성은 감각적이다. 키보드, 바이올린, 드럼 등 서양악기와 장구 등 전통악기의 조합이 균형의 미학을 이룬다. 서양 뮤지컬 작법의 노래들은 극 전개를 이끌고, 우리의 흥과 한이 밴 변화무쌍한 장단이 곳곳에서 판을 벌인다.

"개와 같이 주둥이가 얄팍한 그는 오히려 땅에서 모이를 쪼아먹는 새들을 올곧게 괴롭히니 ··· 그 세월이 족히 십 년은 되었다더라"고 사또를 겨냥한 풍자에 이어, 달수 그리고 그를 전기수로 이끈 호태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새가 날아든다' 장면.

이 부분의 에너지와 쾌감은 시민들이 봉기하는 대표적인 명장면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넘버 '원 데이 모어'를 떠올리게 한다. '뮤지컬 빌드 업'의 끝판왕이라고 할까.

뮤지컬 '판' 중 '새가 날아든다' 

박 작곡가는 "정 작가가 민중을 새에 비유한 가사를 썼더라고요. 한 마리, 두 마리 점차 늘어가면서 쳐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리다가 점층적인 구성을 생각했어요"라고 밝혔다.

그녀는 뮤지컬작곡가를 '이야기를 쓰는 음악가'로 정의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꾼에 대해 쓴 이야기'인 '판'에서 극의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와 극중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나눌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장르를 확 나누자고 결심한 이유죠. 전체적인 스토리는 서양적인 음악 색깔로 가되, 이야기꾼이 무대를 꾸미는 장면은 완전 연희판 구성으로 생각한 거죠."

극의 중심인물은 남성인 달수와 호태지만, 여성 캐릭터인 '춘섬'과 '이덕'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다. 춘섬은 전기수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매설방 운영자이고 전기수들을 위해 소설을 필사하는 이덕은 달수의 움직임에 동기부여가 된다.

극중 극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광대 이야기와 김생과 영영의 사랑을 그린 영영전은,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된 최근 작품들이 고전 속 여성을 대하는 시선이 기존의 보수적인 기준과는 다르다는 점을 증명한다. 정 작가는 "배경이 조선시대이다 보니 당시 여성이 주체적으로 드러났던 극이 많지 않았어요. 저희가 공부하고 찾은 것을 비틀어서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한 정 작가는 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뮤지컬 공부에 뛰어들었다. 본래 클래식음악 작곡을 전공한 박 작곡가는 좀 더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 고민하다 뮤지컬 작곡을 선택하게 됐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판' 정은영(왼쪽)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좋아서 준비한 데뷔작으로 상업적인 홈런까지 친 두 사람은 창작 개발 환경이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저희는 운이 좋은 경우에요. 하지만 리딩까지만 하고 작품이 더 이상 개발되지 않아서 실망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죠.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작품이 올라갈 수 있는 시장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 열리는 이번 '판'에 대해서는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마음과 어깨가 들썩거린다. "배우들이 연습한대로 마음대로 뛰어 놀고 관객까지 신나는 그런 판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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