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신학
미래의 신학
  •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7.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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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미래에도 신학은 설득력 있는 학문으로 남을 수 있을까? 20세기까지의 신학은 대체로 시간과 영원, 차안과 피안 간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것은 지구물리학적 세계관의 시각에서 전개된 해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이버 물리학(Cyberphysik)의 새 시대(eon)가 이미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이런 추세는 점점 심화 발전되어가고 있다. 신학의 본질은 세계관에 의해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점을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 신학의 고민이다. 신학은 급변하고 있는 세계관과 진화론의 보편적 인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의 새 기원’을 열어갈 수도 있고, 샤머니즘(shamanism)으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C까지의 신학은 철학을 통해 이론을 설정한 후 신학 논쟁의 과정을 거치며 정립되었고, 교회는 이렇게 형성된 신학 이론이나 해석을 교회의 현장에서 실천에 옮겼다. 이것은 서양 신학사가 서양 철학사를 추종해 가며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세까지 철학은 교회의 권위로 말미암아 “신학의 하녀”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신학은 고대 희랍철학으로부터 신학의 핵심사상을 정립할 수 있는 용어와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중세 이후로는 신학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더욱이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은 신학의 본질을 전환하기까지 했다. 신학은 철학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비근한 예로 상황적 해석의 신학, 즉 ‘삶의 자리(Sitz im Leben)’의 신학은 딜타이(W. Dilthey)의 해석학과 삶의 철학에 의존하며 표출되었다.
   
20C의 개신교 신학계가 철학으로부터 영향 받은 몇몇 보기를 들어보자. 우선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 바탕에는 키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사상구조가 깔려있으며 이에 더하여 실존과 삶의 본래성을 인간 해석의 뿌리에 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파울 틸리히(Paul Tillich)의 경우는 독일에 있던 시기에는 플로티노스(Plotinus)의 일자론, 셸링(Schelling)의 관념론,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변증법적 유물론, 그리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을 수용하여 그의 신학의 틀을 만들었다. 미국에 이민한 후에는 불교 철학, 실용주의 등을 포용하면서 그의 신학의 폭을 순수 이론적 경향에서 사회적 관심에 이르기까지 확대하였다. 실존신학의 한 축을 구축한 신학자로 틸리히를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경우 신학의 동인은 중근동의 신화와 종교, 다양한 신화론 등에서,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은 딜타이의 해석학에서, 실존신학 형성의 도구는 마르부르크 대학교 동료인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 도입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저서 곳곳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이런 종합된 결정체가 그가 말하는 “비신화론(Entmythologisierung)”이다.
한때 과정철학이 현대철학의 한 흐름으로 돌출되었을 때, 그 10여 년 후에 미국 신학계의 소장 신학자들에 의해 과정신학이라는 신학의 한 형식이 신학계에 큰 관심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흑인신학이나 제삼세계 신학의 사상적 논거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철학과 인간 소외론에 깊이 연계되어 있었던 점을 많은 학자는 논증한 바 있다.

동서 냉전이 끝나면서, 양극 체제의 세계 구도가 무너지자 인간의 삶의 전 영역에서는 다극화의 가치 변동이 시작했다. 20C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다극화, 즉 다원화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도 일부 신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 종교상대주의 등과 같은 이론으로 사회와 신학 간의 관계를 정립하려 한다. 후기 근대주의(postmodernism, 어떤 학자들은 탈근대주의로 번역함)가 삶의 종합적이고, 문화 중심적인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신사고에 신사상’을 역설하며 철학, 문학, 예술 등에서 한때 강한 인화력을 갖고 번져갈 때, 우리는 “postmodernism theology”을 주장했던 여러 논문을 읽을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로마클럽이 자원의 고갈이라는 시각에서 성장의 한계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에 의해 환경감시 활동과 환경파괴에 대한 적극적인 저지운동이 국제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 살리기 운동 등이 여러 환경단체에 의해서 범세계적으로 조직되고 활동하게 되면서, 생태학(ecology)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세계 석학들의 진지한 환경보고서들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환경과 미래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넘겨받게 되었다.

오염되어가고 파괴되어가는 환경과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보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여러 환경문제연구소와 관련 학회에서, 그리고 미래학회 등에서 진지하게 토론되는 동안에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신학으로 이런 문제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신학의 반응은 매우 신속했다. 일군의 신학자들은 생태신학(eco-theology), 혹은 환경신학을 신학의 새로운 장르로 역설하기도 했다.

나는 앞에서 일례를 들어가며 신학은 철학에 따라서, 포괄적으로 표현하면, 문화에 의해서 영향받으며 형성되어왔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러 형식에 의존해서 발전되어 왔다는 점을 개진했다. 물론 학문의 현장은 항상 반명제를 전제로 발전하는 곳이므로, 많은 신학자가 나의 이러한 주장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신학은 삶의 현장에서 역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삶의 자리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그 자리에 대한 해석과 적응력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언급(Rede von Gott),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나 신학을 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따라서 신학이 인간의 활동 결과인 문화에 의존해서 발전한다는 것은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갖추고 있어야 할 필연성이다. 신학이 철학이나 문화에 의존해서 발전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과잉 반응을 나타내는 것 자체가 참 신학의 본질 이해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신학이 수도원이나 신학교 강단에서 토론되는 학문이 아니고, 현장성을 가져야 하는 점에서, 신학의 이론화나 방법론은 시대성에 따라 항상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학의 가변성에 대하여 논하는 것 자체를 신학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신앙의 절대성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학 이해의 단견일 뿐이다. 신학이 학문인 한 그것은 부단히 변해야 할 것이고, 부단히 변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한 신학은 생명력 있는 학문으로 학문성을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미래의 신학’은 급변하는 세계관에 적응해 가며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를 창조목적에 부합하도록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회와 신앙의 참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피조물, 즉 삼라만상은 질료며 질료의 질료는 원질료, 원존(原存, archeon, Ursein)인데, 이것은 흙(土)이다. 창조주(神)와 피조물(土) 간의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가 창조신학의 핵심이며, 이것이 “신토불이 신학(神土不二神學, Sintobul’yi theology)”, 즉 “원형 신학(theologia archetypa)”이다. 세계관이 아무리 변해가도 신학의 가변성은 신토불이 신학의 구조에서 해석할 수 있는 한 신학의 길은 미래에도 자기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신토불이 신학 論考』(서울: 북코리아, 2013), 『신토불이 신학의 본질과 현상』(서울: 북코리아,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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