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해서 지은 죄, 무죄일까요?
알지 못해서 지은 죄, 무죄일까요?
  • 한승진목사(황등중학교 교목)
  • 승인 2018.10.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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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진목사(황등중학교 교목)
한승진목사(황등중학교 교목)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살인, 방화와 같은 큰 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본분(本分)에 넘치는 사치를 부리는 행위, 자기도 모르게 전범(戰犯) 기업이나 환경파괴를 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는 행위, 비인간적인 사육방법으로 사육되어 도축된 육류를 먹는 등의 행위들도 죄에 포함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저지르는 죄는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로 나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고 짓는 죄가 모르고 짓는 죄보다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알고도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고의성에 대한 괘씸죄가 있어서 그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알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그 죄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의미로, 그 죄를 인정하고 참회한다면 다시 그런 죄를 저지를 일이 적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저지른 죄라면 그 행위가 죄인 것을 모르기에 또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에 모르고 저지르는 죄가 더 큽니다.

잘못인지 모르고 했으면 그것이 더 심각하고 할 수 있겠지만, 잘못인 줄 알았다면 부끄러움을 갖고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전과는 달리 정신적인 수준이 높아져 손쉽게 잘못임을 알 수 있는 매체가 많아졌고 대중화되었습니다. 조금만 관심 갖고 살펴보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일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몰랐다고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하기 어렵습니다. 도덕적인 민감성을 갖고 살펴보면 자신을 돌아볼 것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다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경우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부족한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의든 타의든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고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사소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넘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반성과 참회 없이 계속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로 인해 도덕불감증(道德不感症)이 생기고 그것이 커져 갈 것입니다. 이런 개인들의 모습들이 확산되고 일반화될 때 우리 사회는 비도덕적인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음악 무단복제나 영화 불법 다운로드와 같은 행위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불법다운로드 한 번 한다고 영화사가 손해 얼마나 보겠어?’ 혹은 ‘내가 전범 기업 제품 사봐야 얼마나 산다고 한일 문제에 영향이 가겠어?’라는 식의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죄를 합리화시킨다면, 이런 죄는 모르고 지은 죄보다 더 큽니다.

지하철에서 1회용 컵으로 커피를 마신다던가, 실내 독서실에서 몰래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는 등 강력한 죄는 아니지만 분명 잘못된 행동들입니다. 죄는 곧 악행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누군가에겐 피해가 가는 행위입니다. 작고 사소한 죄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하거나, 한사람이 많이 하는 등 모이고 모인다면 큰 죄가 됩니다. 멈추면 바른 인격과 사회가 보입니다. 이런 일들은 ‘당시만 뭐 어때’ 라고 생각하고 지나가고는 계속 반복하는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 역시 죄입니다. 알고 깨달았으면 잘못을 멈춰야 합니다.

남이 보든 보지 않던 성숙한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우리 엣 사람들은 신독(愼獨)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독에 대해 중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배운 기억이 납니다. 신독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마음에 내재한 인욕·물욕을 인정하고 그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며, 선(善)과 악(惡)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마음속에서 신중하게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신독은 <대학>(大學)에 “이른바 성의라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악취를 싫어하고 미인을 좋아하듯 하는 것이니, 이를 스스로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과 <중용>(中庸)에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남송(南宋) 때의 주희(朱熹)는 신독의 독(獨)을 자기 혼자만이 아는 곳,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남이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신독은 개인적인 수양방법이면서 “안으로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했듯이 외부에 대한 실천과 연관되어 사회적으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명(明) 때의 왕수인(王守仁)은 특히 신독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천리를 보존하는 일과 인욕을 없애는 일이 한가지로 양지(良知)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때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일을 신중히 하는 신독의 공부가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됩니다. 명나라 말기의 유념대(劉念臺) 등도 신독을 학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루었습니다.

신독이 생활화되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4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법으로 정해진 것만 지키면 범법자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것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지 그것만 어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법만 지키는 사람은 도덕적인 수준으로 말하면 최하수입니다. 법을 당연히 지키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도덕률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신독입니다. 이렇듯 신독에 이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고수는 아닙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옳음을, 선함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도덕적 사람됨을 이룩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의 도덕적인 기준을 좀 더 넓고 깊게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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