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통일은 통일을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
복음통일은 통일을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
  • 마요한 목사 (새희망나루교회 담임)
  • 승인 2018.12.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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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협의회 12월 발제문

나의 고향은 북한 함경북도에 있는 철광도시 무산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거기서 30여년 살았다. 고향에서 소학교와 고등중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기계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사로 뽑히게 되어 21살부터 고등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교사를 하면서 통신으로 사범대학 공부를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사라는 직업이 나의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또 당시 북한에서 교사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이 추락되고 고리타분한 직업이라는 인식을 하던 때여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어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하여 5년 가까이 교사생활을 하다가 가까스로 그만둘 수 있었다. 대신 나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북한의 최고 대학이라고 하는 김일성대에서 역사를 전공하여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일생에 한 번이라도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역사학자가 되면 역사 연구나 유적 발굴을 위하여 외국에도 나갈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사를 하면 사범대나 교원대 통신은 볼 수 있어도 정기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것은 북한의 교육제도가 2중 교육을 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계획도 무산되었다. 대학에 가려고 교사를 그만두고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해서 대학추천을 받아 시험까지 보았지만 높은 직위에 있는 누군가의 방해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직장의 청년동맹 간부로써 열심히 일하던 중에 김정일의 지시로 사회질서 통제를 위한 조직이 각 군마다 만들어지게 되자 그곳에 동원되게 되었다. 그곳에서 북한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열리게 된 것 같다. 2년 여 기간에 북한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알게 되었고 또 북한 밖의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겉으로는 법과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킨다는 보안서나 보위부가 부패에 앞장 서있고 인민을 ‘영도’한다는 당 기관과 당일꾼들이 부패의 원흉이니 사회의 전반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선전하는 대로 인민을 위한 기관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억압하고 북한주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부패기관이었다. 그 기간에 또한 북한에 친척방문으로 나온(실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나온다.) 많은 중국교포(조선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중국의 발전상황에 대해, 그리고 남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북한체제에 의해 세뇌되어 잘못알고 있던 생각들이 다시 정리되고 북한사회에 충성하려던 나의 꿈과 계획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 땅에서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되어 이 땅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보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움터갔다. 그때가 1992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남한 방송과 음악도 몰래 들으면서 북한 밖의 세상을 동경하며 때를 준비하였다. 탈북을 위해 몰래 중국어도 자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상황들로 탈북이 여의치 않아 결국은 시간이 많이 흘러 1998년에야 탈북할 수 있었다.
 
탈북하여 중국에 왔지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에 지인에 의해 교회를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성경통독반, 또는 사역장이라고 명하는 남한 선교사들이 탈북민들을 신앙훈련을 시키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은혜의 시간들이었다. 매일과 같이 반복되는 훈련이었다.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는 것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일어나 새벽기도모임을 한 시간 반 정도한 다음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9시부터 통독을 시작한다. 12시에 오전 통독이 끝나면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다시 통독을 시작한다. 6시까지 통독을 마친 후 저녁식사를 하고 8시부터 한 시간 30분정도 저녁예배 및 기도모임을 하였는데 그러면 하루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 같은 일과로 진행했고 토요일에는 오전만 통독하였다. 주일예배는 사역장에서 드려졌다. 이 사역장의 생활이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씀이 깨달아져가고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 인내심도 자라났다. 많은 탈북자들과 조선족들이 사역장에 왔다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갔다. 사람들이 왔다갈 때마다 마음이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매사에 조심해야하고 긴장해야하는 어려움들이었다. 그렇게 1년여 시간동안의 훈련을 통해서 사역자로 준비되게 되었다.

그 후 연변지역에서 사역장을 세우고 탈북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을 1년 동안 하다가 중국 변방대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게 되었다. 용정 변방대 구류소에 있는 독감방에 40일 동안 갇혀 취조를 받은 후 북한에 북송되었다. 북한 보위부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내가 다른 탈북자들처럼 중국 공안의 검문으로 우연히 체포되어 온 것이 아니라 북한보위부가 스파이들을 통해서 나의 중국에서의 활동을 알고 감시하다가 중국 국가안전위원회에 의뢰해서 체포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살아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옥 같은 북한 보위부 시설의 독감방에 수개월 동안 갇혀서 취조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곳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또 북한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다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살아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가족들에게 업혀 나오면서 이제는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살겠다고 주님 앞에 기도하였다. 그때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기 때문에 이제 주의 사명자로 준비하겠다고, 한국에 가게 되면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단하였다.

그로부터 40일 후에 재탈북하게 되었고 중국에서 선교사님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몸을 회복하고 있다가 7개월 후에 한국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 남한에 입국한 후 1년 동안 예수전도단 BEDTS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고 2004년 총신대 신학과에 편입을 하여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2006년 장신대 신대원에 들어가 2009년에 졸업하고 2011년 4월에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다.
 2004년부터 한국교회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예배하는 통일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고 통일선교사역 담당교역자로 사역을 감당하다가 2011년 7월에 지금의 새희망나루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북한의 회복과 복음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준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3만 3천명의 탈북민들을 보내셨다고 믿는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한국교회도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복음통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통일을 준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의 비전과 사명을 위해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지금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회복의 때를 준비하고 있다. 새희망나루교회는 남과 북의 성도들이 함께 있지만 누구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 평등하게 함께하는 교회이다. 여기서는 남한이나 북한이라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을뿐더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써 한 가족이 되며 서로가 서로를 섬기기를 원한다. 때문에 저는 저희 교회와 같은 교회를 ‘통일한국에 세워질 모델교회’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여러 가지 사역들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지만 특별히 집중하여 준비하는 것은 복음통일을 이루고 또 그 통일을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처음부터 청년들을 복음통일의 사명자로 준비시키는데 관심을 돌려왔다. 지금 새희망나루교회에는 여러 명의 남북한 청년들이 믿음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훈련되고 준비된 청년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계속해서 준비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어린이센터를 세울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수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교회 건물부터 세우는 것이 아닌 어린이센터를 세우고 그 어린이센터를 통해 지역 어린이들을 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적, 영적으로 양육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또한 회복된 아이들을 통해서 가정이 회복되고 또 그 가정을 통해서 지역과 사회가 새롭게 되며 그것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새희망나루교회의 사역 전략이고 비전이다. 이미 어린이센터를 위한 사람들이 훈련되고 준비되고 있으며 매달 어린이센터를 세우기 위한 특별헌금을 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저 자신이나 우리 교회가 그곳에 올라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닌 그 땅에서 주님의 일꾼들을 준비시키고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그들에 의해 교회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내가 북한 땅에 올라가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닌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우리 교회가 저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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