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잡설
야산잡설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2.0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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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대들 잘났네!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꿈을 꿨다 낯익은 듯 낯선 군상의 무덤 파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이 뱉어내는 오만의 입김이 구리지만 귀를 기울였다 “그래, 그대들 잘났네!”

마침 그때 매 눈을 가진 젊은이가 동네 야산에 올라와서 코를 벌렁거리며, ‘아,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르노라!’*1 자기 깐엔 명언이랍시고 목소리에 가락까지 넣어가며 한 마디 날린다 속으로 ‘저런 늙다리 이런 고상한 말 알기나 하겠노’ 히히, 한껏 무게 잡으며 자족 자만하게 웃는다 가만히 보니 언젠가 신작로에 누워 발버둥 치던...

옆의 노인 속으로 비웃으며, ‘미친놈, 뭐 에베레스트산 정상에라도 올라왔나 제기랄! 지에미 젓이나 좀 더 빨고 컸더라면..., 쯧쯧’ 입을 삐죽거리며 구시렁댄다 명언에는 진리가 담겨야지! 에헴, 크게 헛기침 한번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라!’*2

젊은이 미간을 찌푸리며 참 희한한 노털, 늙으려면 곱게나 늙지 뭐 ‘산은 산 ...’ 그런 말 나도 한다 ‘아, 똥은 똥이오! 그 말 하니 괜히 똥마렵네! 명언 한마디 하고 똥 싸러 가야지’(‘입으로 똥 싸는 놈’ 노인의 속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그때 똥개가 지나가다 참견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멍멍 멍멍멍(개들의 욕 ‘18, 18’) 사람 새끼! 기차가 떠나가니 내가 짖었지 나 못 잡고 떠나는 개장수 놈한테 다신 오지 말라며 멍멍 멍멍멍’

그때 조선 세시풍속도에서 본 듯한 도인 행색의 짝퉁이 나뭇가지 짚고 백포 자락 휘날리며 그 앞을 지나다가 옆 바위에 걸터앉아 ‘아, 인생은 돌고 돌아 윤회며,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유수라네, 에헴’ “윤회가 뭐꼬?” 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마침 조깅하러 나온 코쟁이가 그 말을 듣고 꼬부랑 발음 섞인 말로 ‘울랄라! 아닙네댕 아이용,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있는 검니댕!’*3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무슨 심각한 일이 있는지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던 털보 두 명이 그 말을 얼핏 듣고 돌아와 ‘뭔 개소리야! 너 프랑스 놈이지! 난 독일, 얜 영국 놈인데 똑똑히 들어 내가 있기 때문에 생각도 할 수 있고 사랑도 할 수 있는 거야 세상은 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아 이걸 인간중심주의라고 하는 거야 인간이 주체! 알겠어! 야, 프랑스! 내려가서 해장국 좀 먹어라 어젯밤 계집 끼고 퐁뒤 찍어 먹으며 포도주에 취해 농탕질 하느라 잠이 덜 깬 것 같군! 야, 너 토끼야, 이제 그 짓 좀 작작하고 책 좀 읽어 ML*4, 그리고 「제발 슈레 퐁 드 파리」*5, 그따위 코맹맹이 노래 짓거리 걷어치워 이젠 역겹다 노래 부르려면 「인터내셔널」*6정돈 불러야지’

철봉 몇 번 매달리던 백인 아저씨 한국 여자 껴안고 지나가다 모인 사람들에게 팔 젖으며 ‘하이 굿모닝!’ 한다 똥폼 잡던 젊은이와 영감님들 왈: ‘저 우리질 놈, 아침 일찍 산에 왔는데 언제 뭘 먹고 오노 당연히 굶고 왔지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들한테 팔 휘저으며 뭐 굶었니? 그리고 아무 데서나 여자한테 ... 참, 세상 말세로세, 에잇!’ 눈 감고 기 받는 것처럼 꼴값 떨던 노인이 하늘을 보며 ‘아, 양놈은 양놈이고, 되놈은 되놈이니라’

이 야산 참 희한한 곳이군 산에 정기가 없어 잡스러운 놈들만 들끓는가?

저 밑에서 호로놈스키가 올라오며 인사를 한다 어느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친다며 자주 만나는 놈 ‘으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7 사람들과 좀 떨어져 나무 밑에 누워있던 노숙자가 벌떡 일어나며, ‘시끄러워 이 새끼야! 사기당해 집 날리고 공장 날리고 마누라랑 새끼들 나가버렸는데 뭐 삶이 어쩌고저쩌고해도 슬퍼하지 말라고! 그럼 내가 기뻐 춤이라도 춰야 하냐!’ 한순간에 분위기가 쏴 해진다 이판사판 죽을 판에 교양이고 체면 깔아뭉개며 속을 누르고 있는데 호로놈스키가 염장을 질렀으니, 쯧쯧

좀 있으려니 개 끌고 오는 개 아빠들이 숲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내려간다 늙은 수캐 한 마리가 암캐 냄샐 맡고 묘한 소릴 내며 꼬릴 흔든다 ‘저놈, 느끼함이 철철 쏟아지며 밑은 이상스레 돼가네! 저 개새끼! 아무 데서나 시도 때도 없이...’ 저놈 머릿속엔 온통 요 줄만 없으면 개순이와... ‘오, 나의 개살구, 나의 강아지풀이여...!’ 암캐만 보면 저놈 시(詩)랍시고 읊어대며 몸을 붙여 뭉개며 올라타려 한다 저러다 #Me Too에 쪽팔릴 텐데... 하지만 저놈 개지랄하는 건 이미 저놈 동네선 쫙 퍼져있는 걸 개 줄 당기니 그놈 공들였던 꿈도 개꿈이 되어 버렸네! 입에선 아직도 끈적한 춤이 흘러내린다 개 주인들은 여길 개전용 공중변소로 여기고 있는 듯 며칠 전에도 어둔 새벽 오르다 개똥 밟고 미끄러져 코 깨진 사람 있다는 소릴 들은 것 같다

‘아, 떡은 떡이고, 밥은 밥이니라!’ 이러면 100% 진리, 즉 진리의 진리!? ‘떡도 밥이고, 밥도 떡이니라!’ 이러면 100% 또라이!? 떡도 밥도 쌀인데, 참 헷갈리네! 그렇다면 ‘쌀은 쌀이요 ... 아, 시간이 벌써 ... 에이, 오늘 새벽엔 웬 또라이들이 이리 많노 열여덟! 퉤퉤 내려가 똥 싸고 귀 씻고 쌀 먹고 삶의 전쟁터로 GO! 이보다 확실한 진리가 있을까?’ “그래, 니도 잘났다 아아, 이 오메가 또라이!”

카톡, 카톡, 카톡... 꿈속의 진상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아, 커피 생각이 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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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 길에 실종된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 1886-1924)가 남긴 말이라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음
*2) 8세기 중엽 당나라 청원(靑原) 선사의 어록으로 전해옴
*3)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4) ML: Marx와 Engels의 머리글자로, 저들의 전집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임
*5) 샹송 「파리의 다리 밑(Sous les ponts de Paris)」
*6) 사회주의 노동가 「인턴내셔널(The International)」
*7) 푸시킨(Alexander Pushkin, 1799-1837)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Even if life deceive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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