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이 원했던 것
정준영이 원했던 것
  • 한억만(피러한)목사
  • 승인 2019.03.3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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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클럽 버닝썬의 폭행, 마약 그리고 탈세와 또 다른 의혹에 이어서 가수 정준영이 승리 등과 함께 나누는 카톡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한 동영상을 유포한 협의로 급기야 구속까지 되면서 때 아닌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최근까지도 인기 프로그램에  두루 출연해 왔었기에 특히 방송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 동안 방송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넘어 누군가에겐 영혼을 불어넣었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숭리는 연예계를  은퇴하고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고, 정준영은 프랑스에서 개업하려던 레스토랑까지 중단시켰다.     

물론 방송에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 해도 그들은 일반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기에 높은 호감도는 스타가 되게 했지만 인성하고는 별개인 모양이다.   연예인들은 오직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고 그 덕에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 인간미까지 견비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히려 이번 일이 터지자,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사람 OOO에 나올 때부터 깔끔하지 못했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라...’라는 누리꾼들의 반응을  나는 상관없는 것처럼 그냥 무시해도 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역시 나도 자신이 없다.  

얼마 전에 어느 잡지사에서 미국과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사람 장단점을 조사해 본 일이 있었다.  장점으로는 정이 많고 머리 좋고 열심이 있는 반면에  단점으로는 협동심 부족, 부정직함 그리고 강한 비판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중에서 문제는 정직하지 않다는데 있다. 공산당은 생존을 위해서 거짓말을 당연한 일로 여기듯 우리도 유교적인 체면 문화로 부정직 이라는 사슬에 묶여서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현실이 두려울 뿐이다.  부정직한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깊이 보면 가정과 나라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백남준은 ‘예술은 고등사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외적으론 아름답지만 실상 눈속임 결과가 많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사탄이나 귀신을 흉측한 모습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와 사람들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한다.  나라나 기업, 개인이나 가정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다툼들도 근본적으론 선과 악의 대항이요,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싸움들이었다. ‘토지’를 완간할 때 박경리는 ‘인생에 대한 물음, 진실에 대한 물음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고백이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 어디에도 진실은 찾기 어렵고 또 그렇게 살기는 더욱 어렵다는 의미다.

입술로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정작 진실을 말하면  싫어하고 거리를 두기에 진실이란 때론  관계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서든지 진실과 거짓을 가름하려고 한다면 판명은커녕  또 하나의 싸움만 일어난다. 그것은 마치 의료분쟁을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일과 같은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진실을 호도하고 그것이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후세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실이요,  그토록 꿈꾸던  유토피아적인 세상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한 길을 통해서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고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실과 세상과의 상관성은 진실과 자신과의 관계로 진전된다. 곧 진실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과제다.  빅토르 위고는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라고 했다.  죽음 앞에서  무슨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죽음을 생각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 그 죽음 앞에서 웃기 위해서 오늘은 싸워야만 한다.   우리는 날마다  싸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싸움은 어쩔 수 없다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일부러 청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 싸움에서 지면 다른 모든 싸움에서도 이길 방도가 없기에 그렇다.  

나의 가장 무서운 적은 항상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의 헛된 욕심, 나약함과 게으름들은 지극히 작은 여우같지만 그것들이 자기인생의 포도원을 허는 거짓된 형상들이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외적인 조건들이 아니라  이러한 내부적 요인들이 원인제공 했건만  자신은 비겁하게 피해자라고 환경을 탓하고 다른 것을 원망했다. 자신 안에 진실이 부족하기에 작은 칭찬과 아첨에도 쉽게 원칙을 벗어나 유혹을 당하고,  작은 비난과 훈계하나 소화하지 못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비수를 꽂으며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  어리석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항상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하기에 감사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과의 싸움이란 진실과의 싸움인데 그것은 매 순간 선악과를 거절하는 일이요,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진실과 거짓이  혼합되어 있는 삶 속에서 언제나 진실을 말하고 진실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다. 비록 세상은 진실을 거부해도 자신은 그 진실과 싸워야 하는 것은 진실이 곧 행복이라는 변치 않는 등식 때문이다.  남자들은  ‘싸움의 기술’을 보고서 싸움의 고수를 모시고,  여자들은  ‘작업의 정석’을 보고선 작업계의 고수를 모시어  연애를 잘 익혀 시집 잘 가야한다고 말할 때가 있었다.  물론 살아가는데 있어서 싸움이나 연애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것과 비할 수 없는  진실은 인생의 행복과 직결되고 있는  기술이다.  

‘행복은 소걸음으로 오고, 불행은 떼 지어 온다.’라는 말처럼 부정직함에 기초를 둔 행운과 영예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당시에는 많은 이익을 얻지만 항상 적이 생겨나고, 또 악하고  어리석은 자들만 친구로 남게 되어  인생에 행복도 의미도 가져다 줄 수 없다.  반면에 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정들은 오히려 자신과 이웃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숨겨놓은 로또인 셈이다. 정준영과 승리가 뭐가 부족한 것이 있었겠는가.  다 있는데 만족이 없었다. 감사가 없었다. 설렘이 없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여자와 돈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생의 우물(well)인 그것이 삶에서 빈곤하면 이상하게도 모든 면에서 부족을 느낀다. 가장 큰 힘은  양심이 자신을 지배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권세자 앞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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