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취
향취
  • 韓崇弘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 승인 2019.04.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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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숭홍 박사
한숭홍 박사

나는 태어난 곳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월남민이 되어 ‘이북내기’로, 집시 같은 뜨내기로 살아왔다 이젠 정착지 흙 밟아가며 누볐던 이곳 산하 강산, 내 영혼에 채워진 향취(鄕醉)*, 나를 나되 게 한 바로 이 땅, 이 흙 내움 그 정취가 내게 고향스레 다가와 내 가슴에 고향의 그리움을 깊이 여민다 아, 내 영혼의 고향이여! 내 노래를 그대에게 바치노라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타향살이 서러워 잠 설치며 밤 지새는 이방인엔 흙 내움 물씬 밴 동화 같은 시골집 잔상이리라 그 앞으로 흐르는 개울의 징검다리와 도랑을 따라 흘러와서는 물레방아 휘두르고 거품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줄기며, 추수를 마친 휑한 논밭에 줄지어 앉아있는 철새들... 자기가 나서 자랐고 지금도 부모, 형제자매가 옹기종기 모여 소박한 살림살이 꾸려가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고향이리라 여기에 한 가락 애사를 넣으면 건넛마을 순이의 곱다란 눈 맵시는 어떠하랴 재잘거리는 귀여운 소녀의 입술은 꿈을 꿀 때면 살며시 눈을 감는다

해가 져가는 서산에 어둠이 덥혀오고 대지에 적막이 스밀 때면 풀숲에선 온갖 속삭임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한 맺힌 가락도 구슬피 들려온다 그리움엔 독수리의 날개가 달려있다 고향이 아득히 멀어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상할 때면 고향은 벌써 그리움에 잠겨 든다

고향! 초가의 흙 내움도 좋고 흙먼지 이는 방바닥이면 어떠랴 그곳에선 애정이 꽃피고 있는데 어찌 그곳에 그리움이 없으랴 언덕 자락엔 아직도 은빛 억새가 무성하련가 동무 생각도 새록인다

아, 고향의 그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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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취(鄕醉): 고향의 정취가 배어나는 그리움의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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