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고난절(대 사순절)과 부활절 의미 되새기기
정교회의 고난절(대 사순절)과 부활절 의미 되새기기
  • 임종훈 안토니오스 신부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 승인 2019.04.3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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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4월 월례회 발제문

1. 대 사순절의 의미

부활절 전 주간 성 대 월요일에 부르는 아름다운 성가가 있습니다. 이 성가는 마태오복음 20장 18절을 인용해서 대 사순절이 가진 의미와 목적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의로 수난을 향해 걸어가시면서, 주님께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도다.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그분과 함께 걷기 위해 와서 다함께 우리 생각들을 정화합시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립시다. 그분 안에서 이생의 쾌락에 대해 죽읍시다. 그리하여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의 외침을 들읍시다. ‘내가 고통 받기 위해 올라가는 곳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니라. 나는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느님 너희의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느니라. 너희는 나와 함께 천상의 예루살렘 하늘의 왕국으로 올라갈 것이니라.”

대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기도와, 금식과, 겸손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구세주 그리스도의 거룩한 수난을 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경축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금욕수행의 투쟁 경기장인 대 사순절에 들어섭니다.

수많은 혼란이 가득한 세상에서, 정교회의 금욕수행의 경험은 매우 가치 있는 영적 자산이고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지식을 길어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금욕적 삶이다’라고 하듯 그 정신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적시는 복된 금욕은 소수의 사람 혹은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외 없이 모든 신자를 위한 공동의 선, 공동의 복, 공동의 소명입니다.

물론 금욕수행의 투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닙니다. ‘금욕수행을 위한 금욕수행’의 원리는 타당치 않습니다. 목표는, 자신의 의지와 ‘육체의 정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다시 중심을 잡아주고,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고린토 전서 10:24)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서, 개인적인 욕망과 ‘권리’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2019년 대 사순절 메시지에서)

2. 부활절을 향해 가는 기간 동안 거행되는 예배를 통해 찾게 되는 대 사순절의 의미

1) 뜨리오디온 기간

‘뜨리오디온’은 두 가지 사항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하나는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서, 대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의 3주간을 포함하면서 대 사순절 기간과 성 대주간까지도 포함하는, 부활절을 준비하는 오랜 기간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책의 이름인 『뜨리오디온』입니다. 이 책은 평상시에는 매일 예배에서 아홉 개의 오디를 읽어나가지만 이 기간에는 세 개의 오디를 읽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 책은 이 기간에만 읽혀지게 됩니다.

세리와 바리사이파 주일: 이 날 루가복음 18장 10절부터 14절까지에 있는 세리와 바리사이파 사람에 대한 복음말씀이 교회에서 봉독됩니다. 부활절을 향하여 신자들은 이제 영적인 순례길을 떠납니다. 이 영적 순례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치 우리가 익숙한 항구를 떠나 새로운 종착지를 찾아 떠나는 항해를 시작할 때에, 많은 준비물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적 순례에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말로는 겸손이지만 그리스말로는 ‘따삐노시’이고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탕자 주일: 탕자에 대한 비유말씀인 루가복음 15장 11절부터 32절까지가 봉독됩니다. 우리는 다시 한 가지 더 영적인 준비물을 챙기게 됩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가르치시고 명하십니다. 탕자의 비유를 기억함으로써,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죄에 대한 절망감과 두려움에서 구해내고 덕과 선행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적들이 펼치는 간계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입니다.

금육 주일(최후의 심판 주일): 이제 우리는 점점 더 대 사순절의 치열한 영적 투쟁의 기간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대 사순절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기도와 금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금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날부터 신자들은 육류로 조리된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 사순절의 엄격한 금식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이 날부터 일 주일간은 우유로 만든 식품은 먹을 수 있는 제한적인 금식을 행하는 유식주간(우유는 먹는 주간)이 됩니다.
   이 날의 복음말씀은 마태오복음 25장 31절부터 46절까지 최후의 심판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대비하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심판에서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하시게 됩니까? 복음말씀에서 주신 답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나 인류와 같은 추상적인 집합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 짓고 악에 빠진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격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용서 주일: 이 날의 복음말씀은 마태오복음 6장 14절부터 21절까지에서 죄짓는 노예상태에서 우리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금식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 금식은 위선이나 과시가 아닌 오직 하느님께만 은밀히 알려지는 금식으로서, 우리의 타락한 욕구와 본성에 무릎 꿇지 않고 이겨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승리하여 이 세상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분열, 갈등, 증오를 없애고 이겨내어 일치, 연대, 사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즉 인간관계가 훼손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맡겨 적과 나 사이에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적과 내가 서로를 용서할 때만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2) 대 사순절 기간

대 사순절 기간의 세 번째 주일인 십자가 경배 주일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우리 자신의 육체적 욕구와 정념에 맞서 싸워나가도록 하고, 십자가 경배 주일부터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에 집중하도록 신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전례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정교 주일): 첫 번째 주일을 정교 주일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이 날 교회는 제7차 세계공의회(AD 787)에서 최종적으로 선언한 이콘반대주의자들에 대한 승리와 이콘(성화상) 공경의 회복을 기념하며, 정교 신앙의 승리를 외치기 때문입니다. 공의회 시노디콘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 예언자들이 본 대로,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교회가 이어받은 대로, 교부들이 가르친 교리대로, 온 세상의 교회가 합의한 대로, 은총으로 밝혀진 대로, 진리가 확인한 대로, 거짓이 쫓겨난 대로, 지혜가 떳떳하게 전파한 대로, 그리스도가 치하한 대로,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생각하며, 말하며, 전파한다. 그의 성인들을 말로, 저서로, 명상으로, 성제로, 성당에서 성화로 공경한다.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흠숭하며 경배한다. 그의 성인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사자들로서 연관적으로 공경한다. 이것이 사도들의 믿음이다. 이것이 교부들의 믿음이다. 이것이 신자들의 믿음이다. 이 믿음이 온 세상에 굳건하게 섰다. ...”

사순절 두 번째 주일(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주일): 두 번째 주일에는 14세기에 교회가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AD 1359)의 적들을 정죄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공인한 것을 정교 신앙의 두 번째 승리로 기념합니다. 성인은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모든 영예를 다 버리고 아토스 성산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과 교제하며 살기를 원했고 엄격한 고행을 실천했습니다. 열정적으로 기도하여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억제하고 자신의 영을 하느님께 끌어 올리며, 모든 순간을 끊임없는 기도와 거룩한 묵상에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도움으로 악마들에게 승리를 거두고, 강물처럼 많은 눈물과 밤새워 올린 기도로 자신의 영을 정화하여 성령의 은사를 담은 그릇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번의 기념 주일은 대 사순절의 흐름과는 다소 유리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대 사순절은 예비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그들에게 이 기간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처럼 아직은 예언되고 약속되었을 뿐인 새로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아직은 만나지 못하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 세 번쨰 주일(십자가 경배 주일): 이 날은 대 사순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고귀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를 경배하는 축일로 지냅니다. 사십일 기간 동안 우리는 참담한 통회와 힘든 금식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귀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기를 되찾도록 해주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게 하여 우리를 격려합니다. 힘든 여정의 중간에 교회의 교부들께서는 생명의 십자가를 세워놓고 우리를 쉬게 하고 새로운 활력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순절 네 번째 주일(성 요한 클리막스 주일): 이제 대 사순절의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더 이상 참회와 노력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성취된 사건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요한 끌리막스 성인(†AD 603)은 ‘사다리’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끌리막스』라는 정교회 최고의 영성 서적을 쓰신 분이고 영적인 상승의 단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이집트의 성 마리아 주일): 이 날의 복음말씀은 마르코복음 10장 32절부터 45절까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사십일 기간 동안 나 자신을 영적으로 정화하던 모습에서부터,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체험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도록 초점을 옮깁니다.
창녀였던 이집트의 성 마리아(†AD 378)의 삶을 기념하며 죄에 깊이 물든 사람도 회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사순절 여섯 번째 주일(성지 주일): 이 날 이전의 6일간은 성지 주간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간 동안의 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의 친구 라자로의 죽음과 부활, 베다니아와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함께 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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