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2장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 이재록 목사
  • 승인 2019.05.3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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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9)
이재록 목사
이재록 목사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있으면서도 민족 최대 명절인 유월절만큼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2:13~17)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이 다가오자 관례에 따라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것은 예루살렘이 해발 790미터의 산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이른 예수님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먼 곳에서 오느라 미처 제사에 쓸 소나 양, 비둘기 등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한 장사꾼들로 성전이 북새통인 것입니다.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사람이 줄을 지었고,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돈은 불결하다 하여 성전에 바칠 돈을 바꿔 주는 상인까지 넘쳐났습니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거룩해야 할 성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요.
이 광경을 본 예수님은 마음이 불붙는 듯했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동물을 성전에서 내쫓고, 돈 바꾸는 상인들의 돈을 쏟으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며 아무도 길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온유한 예수님께서 이토록 격노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느 곳보다 깨끗하고 거룩해야 할 하나님 성전이 이윤을 남기려는 장사꾼들로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지요.
‘하나님 앞에 드릴 제물을 사고파는 것이니 괜찮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엄연히 자기 이익을 위해 매매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렸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결코 성도 사이에 매매가 있어서는 안 되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명목으로도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교회 내 서점에서도 책을 판매하지 않습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 찬송가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하며 이익금을 구제나 선교 등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한 매매행위가 교회 안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세상 풍조가 들어오지 않도록 모든 일을 진리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자칫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여 세상 풍조를 허용한다면 누룩이 번지듯 세상에 물들어 시험과 연단이 따릅니다. 사랑과 긍휼이 많은 하나님이지만 성전을 더럽히거나 영광 가리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격노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성경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시 69:9) 하신 말씀의 뜻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열심히 율법을 읽고 지켰습니다. 성전에 모여 제사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악과 불의가 가득했기 때문에 성전에서의 매매행위가 옳지 않음을 분별하지 못했지요.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의 성전이 더욱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계시는 곳이므로 날마다 말씀대로 행하여 죄를 버리고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2.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18~22)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상을 뒤엎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제사장이나 서기관도 허용한 일을 뒤엎는가?’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면 나타내 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유대인들이 코웃음 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솔로몬왕 때에 처음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지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침략하여 파괴하였습니다. 그 후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의 1차 귀환과 함께 스룹바벨이 20여 년에 걸쳐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 역시 침략에 의해 파괴되었고, 뒷날 헤롯 임금이 백성의 지지를 얻고자 46년에 걸쳐 재건축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전 건축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많은 자재와 인력,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무려 46년에 걸쳐 지은 성전을 헐고 3일 동안에 세우겠다니 유대인들로서는 터무니없게 들렸습니다. 나중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을 때 이것을 빌미잡습니다(마 26:61).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조롱하였습니다(마 27:40 ; 막 15:29, 30).
예수님이 ‘사흘 동안에 성전을 일으키겠다’ 하신 것은 ‘내가 성전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만일 그때 예수님이 “내가 성전의 주인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찌 됐겠습니까? 그들은 격분하여 “네가 어찌하여 성전의 주인이뇨?” 하며 집요하게 따졌을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더욱 반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적 의미를 담아 간접적으로 함축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육의 사람은 영적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한 뒤에야 구세주임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뒤 생명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거자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적 체험과 함께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 말씀을 깨우칠 수 있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3.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2:23~25)
예수님은 기사와 표적을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죽은 이를 살리는 등 갖가지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이 환영하며 모시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능력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변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쁘게 의탁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입니다. 이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 지방을 지날 때면 그들의 집을 찾으셨습니다(눅 10:38).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마음속에 시기, 질투, 살인, 간음,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흠이 없고 진실하며 의로운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평가받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진리의 마음을 이룬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로써 표적이 따르며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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