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 그 위대함(2)
여성성, 그 위대함(2)
  • 크리스챤월드리뷰
  • 승인 2019.06.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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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창조의 목적-1부
서진희 번역가세종대무역학과 졸업,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선교사로 약 7년간 활동했으며 제21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해외번역부분 최우수상, '나는 하나님의 성품의 아이가 되고 싶어요 / NCD출판사)' 등 그 외에 약 100 여 권의 서적을 번역했다.
서진희 번역가세종대무역학과 졸업,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선교사로 약 7년간 활동했으며 제21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해외번역부분 최우수상, '나는 하나님의 성품의 아이가 되고 싶어요 / NCD출판사)' 등 그 외에 약 100 여 권의 서적을 번역했다.

 

창세기 2:18에서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여자 창조의 목적은 불완전한 아담의 부족한 점을 지혜롭게 잘 보완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돕는 배필(Helper)이 필요해서였다. 창조 때부터 원래 아담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자’라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허점 많은 반쪽이지만 아담을 잘 도울 수 있는, 돕는 배필을 그에게 주셨다. 아담이 뭔가 불완전한 존재여서 그에게 여자가 꼭 필요했다면,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여자가 어떤 식으로 아담을 돕기를 원하셨을까? 아담이 매사에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지고, 모든 결정을 혼자서 내린 후에 ‘자,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 당신은 무조건 내 결정을 따라주기만 하면 돼! 나 멋있지!?’라고 하면 그저 열심히 박수 쳐주고 그 결정을 열심히 따라주는 것이 여자의 존재의미와 역할이었을까? 아담이 알아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앞장서서 깃발을 흔들며 ‘이쪽으로!’를 외치면 여자는 무조건 그 의견에 군말 없이 허겁지겁 따르는 것이 돕는 배필의 역할이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여기서 잠깐 부부관계에 관한 신약성경의 말씀을 살펴보자. 교회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할 때 에베소서 5:22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남자들은 아내에게 순종을 강조하고 싶을 때 주로 이 말씀을 내민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그렇다면 여기서 복종하라는 이 말이 과연 아내들만을 대상으로 사용된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앞 절인 5:21을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신약의 서신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 시대적,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서 원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와 같은 내용이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여자들은 머리를 땋거나 금이나 진주를 장식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교회에서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사치를 부리는 복장을 피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바울의 말은 5:21에서 남편과 아내가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전하다가 그 연장선상에서 아내들에게 순종의 중요성을 좀 더 강조하려고 했던 말이 아닐까? 바울이 살았던 시대가 남성중심적 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이 말씀 또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바울이 에베소서 5:21-25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서로 다른 지위나 역할이라기보다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는 원리적 차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말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맞게 풀어보면 남편이나 아내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에 서로 복종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부부가 서로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는 여자들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매우 낮았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던 당시에 여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남편을 통해서 또는 남편을 의지해야만 할 수가 있었다. 요즘 일부 중동국가의 여성들의 상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횡적인 관계가 아니라 종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상적인 부부라도 말이다.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돌봐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그 당시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그런 식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돌봐주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 당시에 부부관계의 상식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런 개념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부관계의 원론을 제시하는 창세기의 남자와 여자에 대한 기록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종적인 관계가 아니고 횡적인 관계임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인류에게 그런 권세를 주신 것이다.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파트너 관계라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자에게만 피조세계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을 것이고 여자는 그 피조세계의 일부로서 남자에게 복종하면서 남자가 맡기는 일을 수행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셨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여자를 ’돕는 배필‘로 아담에게 주셨다. ’돕는 배필‘이란 말은 아담과의 관계에서 여자의 역할과 존재의미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여자의 역할과 존재의미는 ’돕는 자‘ 다시 말하면 남자를 도와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잘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담과 여자는 파트너로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합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는 식으로 협력했다. 이것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하나님이 왜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최소 기본단위인 가정이라는 틀 안에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셨을까? 그 이유는 ’사랑‘ ’겸손‘ ’존중‘ ’헌신‘ 등과 같은 덕목들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남자 또는 여자가 독단적으로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시스템을 통해 남녀가 겸손히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돕는’이라는 말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돕는’이라는 말의 원어는 ‘에젤’이다.

그 말은 성령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할 때 사용된 원어와 동일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령께서 조력자, 즉 돕는 자(Helper)로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요14:26). 성령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말씀을 통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며, 우리와 함께 기뻐해주시고, 탄식해주시고, 인격적으로 교제해주신다. 파트너로서의 여자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도울 때는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때처럼, 우선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사랑하고 부족한 점을 메워주려는 긍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여자가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성령이 부족한 우리를 도우실 때처럼 말이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Helper인 이유는 남자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고, 하나님을 좀 더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을 위해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여자는 아무 존재의미도 존재가치도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이유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부부의 행복은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남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노력할 때, 거기서 행복, 사랑이라는 부산물이 보너스로 생기는 것이다. 이런 창조의 원리 때문에 사실 남자는 혼자서는 행복하기가 어렵고, 여자도 혼자서는 행복하기가 어렵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로를 돕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와중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돕는 방식은 어떠한가? 성령은 아주 인격적인 분이시다. 첫째, 성령은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 우리와 적극 교류하시면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신다. 둘째, 우리가 성령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면 성령은 어떻게 하실까? 성령은 슬퍼하면서 우리를 떠나신다. 셋째, 성령은 우리가 성령의 뜻을 거스르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 이 세 가지에서 우리는 여자가 어떻게 남자를 도와야 하는지 짐작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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