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미학적 지평: 구상과 추상
시의 미학적 지평: 구상과 추상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7.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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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머리말

   미학 논쟁은 모방과 창조의 상반된 주장에서 발단되어 소재의 구체성과 그 구성에 관한 논리로 비약하곤 한다. 시의 미학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특히 시의 경우에는 시심(詩心)의 발단 문제와 대상에 관한 문제가 언제나 쟁점이 되곤 한다. 비록 이를 간과하거나 구속됨이 없이 쓴 시라 할지라도 미학의 논쟁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의식하지 않고 시를 써갔을 뿐이다.
   이 논고는 시문학의 지평에 관하여 진술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1. 시의 대상

    시의 대상은 시 쓰기의 주제가 된다. 그 대상이 산천초목일 수도 있고, 인간사의 흔적일 수도 있으며, 추상적 관념이 시화(詩話)로 표출된 것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된다. 시에서는 이것을 자연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사랑이 시 쓰기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시인마다 자연을 각자의 자연으로 들어낼 수 있다. 시란 일정한 필치로 들어낸 시인 각자의 자연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연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느냐에 문학의 경계 설정이 나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식론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학문이나 문예와 같은 영역에서의 이해와 관심에 의해서도 갈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말한다면 자연의 범주는 ‘자연’이란 개념이 담고 있는 본래성, 즉 ‘스스로 있는’ 모든 것이 자연일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의 의식이나 자아의식 또는 구상이나 추상까지도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자연관에서 창작된 시에는 자유가 본체를 이루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창작한 시에서 시상(詩想)의 세계를 유영하며 풍류를 즐긴다.     

2. 시인과 독자

    시 쓰기에 몰입하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나와 자연의 일체감을 느끼게 되고, 가끔은 몰아의 경지에 빠지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시인의 시상은 시인 자신의 세계를 초월하게 된다. 시가 그 시를 쓴 시인보다 위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인도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만 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는 시인이 읊어놓은 것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한다. 이 말은 독자가 시를 자신의 시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라면, 독자는 시인과 만나는 것이 아니고 시와 만난다. 종종 시인과 만남이나 시 낭송에 참석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인의 시를 해석-이해의 과정을 거쳐 독자 자신의 시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시는 창작되어 발표되는 순간 독자에 의해 독자의 것으로 재탄생된다.

3. 경계의 문제

   시를 쓰기 위해 꼭 체험이나 경험을 해야 하느냐? 즉, 체험하거나 경험한 것만 읊어놓아야 시냐? 이 문제는 시문학에서 늘 찬반의 쟁점이 된다. 낙원을 가본 적이 없어도 낙원에 관한 시를 쓸 수도 있는데, 이것은 시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달에 계수나무가 없는데도 달과 계수나무에 관한 시를 쓸 수 있고, 견우와 직녀, 오작교에 관한 시도 쓸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시도 많다. 이것은 간접체험이나 상상, 또는 환상이나 추상을 통해서도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시인의 문학성이다.
   경험주의 시각으로 시의 문학성을 재단하려 한다면 시는 공학적으로, 때로는 수리논리학의 기호처럼 그려지게 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시의 장르에서 환상과 환희의 경지는 피폐하게 되어 시상은 사막화되어 갈 것이다.
   시는 진솔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자연에 대한 매력을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감성 행위일 뿐, 결코 시인의 체험이나 경험을 기록해가는 일기나 보고서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가 아니고 수필이다.

4. 시심의 지향

   시심은 자연과 맺어지는 관계에서 돋아나는 현상이나 표상을 시인 자신의 감성으로 표출하는 행위다. 시인은 삼라만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육마저도 자연으로 간주한다.
   삼라만상은 시심의 동인이 되는 현상이고, 영·혼·육은 파토스와 에토스, 에로스의 본질이다. 영성만 강조하는 시는 종교성에 제한되고, 혼백만 동인화하면 무속화 될 위험이 있으며, 육욕적인 면만 탐닉하면 외설문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직관과 감정을 시인의 세계관에 따라 엮어가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시인의 의식 속에 잔영으로 남겨져 있는, 언젠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거나 경험했던 것, 환상, 추상, 회상, 또는 구전되어 온 것 등등이 꽃처럼 개화한 것이 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 시인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대화하며 그 관계를 자신의 필치와 감성으로 써갔다.

5. 우상과 광기

   요즘 한국 시 문단에서는 언제, 어느 문예지에서 등단했느냐로 시인의 시성(詩性)을 평가하는 경향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시의 문학성을 규격화하거나 이념화할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시인의 시심을 훼파하는 것이다. 등단 여부와 등단지의 상업성이 시를 평가하는 척도라는 것은 문학의 본래성을 우상화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하면 문단은 점점 게토화되어 서로 이질화된 분파로 분열하게 된다. 이런 행위와 인식이 심화되면 될수록 문학은 독자와 점점 멀어지게 되어 존재감을 잃게 될 것이다. 시의 문학성이나 작품성보다 등단 여부가 작품평가의 척도가 되는 현실, 한국 문단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행위는 편향된 광기로밖에 볼 수 없다.
   원시림 같은 곳에서 하늘, 해, 달, 구름과 강과 수풀과 호수, 온갖 야생의 동식물과 어울리며 자라는 나무와 원예원이나 꽃 시장에서 묘목이나 분재로 만들어 파는 나무는 같은 종의 나무라도 외적인 아름다움과 깊은 멋, 야생미가 없다.
   시심은 선험적인 시성의 창작성이다. 그러므로 시성이 없는 시심은 위선적 말 풀이일 뿐이다. 속된 말로 소질이 없는데 과외하고 보습학원 보내서 그 시심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발상은 시를 속물화하는 행위다.
   시는 시로 평가되어야 한다. 등단 여부로 시의 수준을 등급화하거나 평가하는 행위는 시의 자유를 구속하는 행위다. 바로 말해서, 시는 시를 쓰는 사람의 시성이 분출되어 창작된 것이며, 기름 짜듯 억지로 짜서 담은 것이 아니다.

6. 시의 자유

   시 쓰기에서 형식이나 틀에 박힌 정형성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정형에 시 형식의 초점을 맞추면 시성이 획일화되어 깊은 맛이 없게 된다.
   나는 시 쓰기의 탈형식주의(脫形式主義)를 고집하며 시는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화산처럼 분출되어 쏟아져 흐르는 것, 그런 모습이 참된 시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는 획일화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도 개성이 다르며, 세계관이나 의식 수준이 서로 다르다. 나는 시에서도 이런 개성 있는 시가 참 멋과 맛을 풍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 쓰기의 탈형식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는 시인 자신의 삶은 물론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때─때로는 투박하고 거칠더라도─비로소 시의 순수성을 드러낼 수 있다. 무언가 숨기고 자신의 행복한 모습, 점잖고 고상한 면만 보여주려는 시 쓰기는 독자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다. 이런 의식에 갇힌 시인, 야누스 같은 모습의 시인에서는 결코 참된 시상이 나올 수 없다.
   독자들의 수준이 시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 뿐이다. 시의 표상에는 진실이 묻어나야 한다. 독자들은 시 한 편을 읽지만, 사실 그 시를 쓴 작가의 진실성과 순수함을 읽는 것이다.
  시는 시인 자신을 독자들에게 정직하게 드러내는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삶을 진솔하게 펼쳐 보여주는 자서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시 쓰기 행위를 나체주의(裸體主義)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의 삶과 의식,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관 등등 자신의 종합적인 구조 자체를 모두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야 호소력도 있고 시가 생명력을 갖게 된다. 형식주의나 기교주의, 위선, 허위의식 등은 시문학을 타락시키는 악이라 하겠다.
   같은 의미맥락에서 나는 시 쓰기의 자연주의(自然主義)를 지향한다. 자연을 어떻게 시로 작품화하느냐에 따라 시인의 자리가 매겨질 것이다.

7. 범주와 편견

   시문학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시상을 범주화하는 행위다. 시는 이를 거부한다. 시는 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그림과 같은 것이다. 시상은 이념이 아니다. 이념인 듯 보이는 시도 있으나 시인의 시심에는 시의 자유를 갈망하는 깊은 의식이 깔려있다. 단지 그렇게 보이도록 그려졌을 뿐이다. 독재자를 우상화하며 찬양하는 시 형식의 구호도 있으나, 그런 시는 문학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선전 매체로 이용되다가 폐기되게 된다.
   시에 대한 이해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일정한 의식에 따른 편견만은 지양되어야 한다. 시는 내재적인 동시에 초월적이다. 시에는 시인의 삶에서 발로된 현상이 개재되어 있으며,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세계가 이상향으로 읊어지고 있다.
   시의 자유는 시에 관한 독자의 이해와 해석의 자유도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유가 독자의 편견까지도 수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 문학계에서 편견을 도구로 다른 문인 단체나 시 동우회를 판단하는 것은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한국에서 시인이 커갈 수 있는 풍토를 초토화하게 된다. 시 쓰기에서 독창성을 드러내면, 이방인 취급하거나 평가절하하며 매도해버리는 현상은 결과적으로 서로 매도되어 매장되고 만다. 시인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시상이 타율에 의해 폄훼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8. 시의 미학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인문학의 지평은 미학의 범주에 속한다. 예술이나 문학은 진선미의 지경과 접해있으며, 이런 성향의 내용을 미학은 동인으로 수용한다. 그러므로 미학에서는 어디까지를 미의 실체로 보아야 하느냐를 두고 논쟁을 해왔다.
   예술 행위를 모방으로 볼 것이냐 창조로 볼 것이냐의 논쟁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발단되어 오랫동안 미학의 본질을 규정하는 잣대로 사용되었다.
   문학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시의 경우 어떤 시라도 그 시상의 대부분 요지나 전하려는 감성은 이미 인간의 잠재의식의 한구석에 침잠되어 있던 것의 발로에 불과하므로 독창적이라 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어 시인 자신의 감성과 정서로 가꿔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 간 것이므로 아주 넓은 의미에서는 모방이며 답습이지만, 구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시인의 창작 행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시는 인간의 내재성을 모방하여 표출한 것이며, 동시에 각 시인의 자기의식을 시로 창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의 미학은 역설적이며, 모순 일치로 주형 된 것이다. 비록 순수 미학의 견지에서는 이런 주장 자체가 억설이며, 몰이해의 단면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이 논리를 일견해 본다면, 미학의 본질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수용의 관점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로 미학 논쟁을 점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미학에 대한 이해가 상반된다고 할지라도 미학의 보편적 가치에 편승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시의 미학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모방과 창조의 논쟁으로 시소게임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줄 덧붙인다면, 미학에서 모방이란 개념은 표절을 수용한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맺음말

   문학을 미학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외도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과 잠재의식의 영역을 예술철학의 차원에서 해석할 경우 문학은 분명히 미학이며, 특히 시문학의 경우는 더욱 이에 부합한다. 이런 시각에서 시문학의 본질과 현상을 간략하게 진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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