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터, 친일의 역사(1)
기억의 터, 친일의 역사(1)
  • 임종권 (프랑스 지성사, 안익태 재단 연구위원)
  • 승인 2019.08.30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들어가는 글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가 직면한 과제는 식민사관 청산과 함께 새로운 한국사를 정립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해방된 한국사회는 과거 일제 식민통치 시기 친일 청산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또 다른 성격을 띠고 격화되었다.
그러나 친일청산 문제는 남북분단과 공산주의 및 자본주의 등 동서 냉전체제의 정치적 이념과 결부되어 역사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사회적 성격을 띠고 격렬한 국가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오늘 날에도 친일청산은 여전히 역사적 기억이 아니라 정치적 혹은 이념적 그리고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된 ‘기억의 터’가 되고 말았다. 역사는 그 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경험하고 살아온 기억의 집합체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민족의 기억을 국민들에게 가르침으로써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준 역할을 했다.1)1) 피에르 노라는 ‘역사의 터’ 란 곧 ‘역사의 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역사는 민족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며 따라서 역사와 기억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 날 역사는 민족의 기억이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상실하고 사적인 영역으로 해방되어 역사는 더 이상 ‘민족의 기억’이 아닌 사적(私的)인 기억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역사의 이러한 현상은 민족과 역사의 결합이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사가의 작업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지니고 있는 과거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민족의 기억들을 다시 끌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는 민족 공동체의 영역에서 개인의 판단과 해석의 영역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진정한 기억 즉, 민족의 역사가 손상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역사학의 과제는 진정한 기존의 민족의 기억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새롭게 다시 민족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있다.

이러한 역사담론에 의한 오늘 날 우리 민족의 기억은 행복과 불행의 사건들이 모두 담겨 있다. 말하자면 친일의 기억은 불행인 반면 독립투사들의 행적에 대한 기억은 해방 이후 민족의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 경우 어두운 역사 즉, 독일 나치점령의 시기의 문학가, 음악가,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의 나치 협력자,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활략 등 두 개의 상반된 기억들이 민족의 역사에서 점차 의미가 없는 역사의 기억들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역사에는 그 민족의 좋고 나쁜 기억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좋은 기억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혹은 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나쁜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것은 진정한 역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일제 식민통치 시기, 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독립투사를 앞세우고 친일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도 진정한 역사가 아니고 또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친일을 부각시키는 것도 진정한 기억의 터가 될 수 없다. 이럴 경우 역사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게 되며 궁극적으로 민족의 기억이 아니라 특정한 계층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탄생시킨 역사에 불과하게 된다.

민족의 정체성은 ‘좋은 기억’만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기억’ 역시 잊지 않아야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내세우며 ‘나쁜 기억’인 친일을 청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분위기 속에서 ‘좋은 기억’조차 얼마나 많이 과장되고 혹은 왜곡되어 왔는지를 오늘 우리 국민들은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친일파와 독립투사 등에 대한 기억들은 해방 이후 남북 분단 그리고 이데올로기 갈등과 정치, 사회, 경제 등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혼란이 지속되어 오면서 궁극적으로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게 되고 말았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역사 그리고 민족의 기억들에 대한 새로운 모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