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2)
시간의 여행(2)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0.0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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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의 접점에서

부산

 우리는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갔다. 아버지는 사촌 동생 두 가정과 공동으로 부평동에 이 층으로 된 일본 적산가옥을 사서 우리는 이 층에 살고, 일 층에는 작은아버지 형제 두 가정, 이렇게 세 가정이 함께 지냈다. 

 인민군이 밀려 내려오자 둘째 큰아버지 가족은 공주 고모님 댁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가 큰어머니는 채독에 걸려 돌아가시고 큰아버지는 몇 달을 이리저리 떠돌며 애들 3명을 데리고 부산까지 와서 수소문하여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버지는 큰아버지네 살 집을 구하려 사방으로 다니셨는데 매일 수많은 피난민이 밀려오는 부산에서 빈집을 구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다행히 살림집을 마련해 드렸지만, 큰아버지는 돈벌이가 없어 어머니께서 식량과 생활필수품, 찬거리 등등 계속 대주셨다.

  용두산 위에는 천막으로 비만 가리게 된 남일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피난 온 아이들을 위해 임시로 세원 진 간이 학교였다. 어머니는 나보다 한 살이 좀 넘는 사촌 누나와 몇 달 어린 동갑내기 사촌 동생은 나와 같은 4학년에, 두 살 어린 셋째는 2학년에 입학시켜 우리는 같이 학교에 다녔다. 큰아버지는 늘 동생인 아버지에게 와서 지내며 세월을 보냈다.

  1951년 여름도 더웠다. 어디서나 어른들이 모이면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름방학을 즐겁게 보내는 게 더 중요했다. 방학 숙제를 며칠에 몰아 끝내고는 교회에서 하는 여름 성경학교에 가서 오전에는 성경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나눠주는 빵이나 과자 등도 먹고 놀이도 하며 지내곤 했다. 여동생은 매년 상으로 연필이나 공책을 받아오곤 했다.

  할머니는 방 앞에 돌출되어있는 난간에 앉으셔서 바람을 쐬며, 바느질도 하셨다. 할머니는 너무 연세하시고 기력도 없으셔서 방에 늘 계시다 보니 답답하셨던 게다.
   밑에 층에 사는 6촌 동생이 하모니카를 부는 게 부러웠었는데, 아버지가 내가 부러워하는 걸 눈치채셨는지 며칠 후 하모니카(Tombo)를 사다 주셨다. 그게 나의 보물 1호였다. 너무 신이나 매일 이렇게 저렇게 불다 보니 차츰 간단한 노래를 불 수 있게 되었고 한참 지나서는 세계 민요 몇 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매일 오전에는 숙제하고, 점심 먹고는 송도에 놀러 가거나 대신동 위쪽 개울에도 가서 지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얼굴은 구릿빛이 되었고 몸은 허옇게 껍질이 벗겨지곤 했다. 여름에는 몇 차례 할머니와 밑에 층의 작은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친척 20여 명이 여객용으로 개조된 LST를 타고 송도에 가서 소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지내며 피서를 했다. 

  어머니는 여름이면 소다를 넣어 찐빵을 만들어 쪄주시거나 밀대로 밀어 칼국수를 해 주시고 강냉이도 쪄주시곤 하셨다. 어느 해는 구포에서 멀리 들어간 시골로 피난 온 어머니 육촌 언니네 집에 우리 형제들이 가서 열흘 정도 지내기도 했다. 장성한 오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곳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이모님께서 방학이니 조카들 보내라며 큰 누나를 보내와 어머니는 우리를 보내며 이모님께 드리라며 돈도 주셨고, 쌀이랑 잡곡, 건어물 등 찬거리도 넉넉히 챙겨 주셨다. 형과 누나들은 낙동강에서 다슬기도 잡으며 물놀이를 했다. 형은 시골 이곳저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못 같은 것을 박아 만든 꼬챙이로 뱀을 잡기도 했다. 정호는 나와 동갑인데 형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서울

   정전이 된 해 늦가을에 아버지와 나는 트럭에 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길이 제대로 없고 시골길을 돌아가며 오다 보니 3일이나 걸렸다. 가족들은 기차로 떠나와서 일찍 도착하다. 서울로 환도한 후 아버지는 양복점을 다시 여셨는데, 반공포로로 부산 우리 집을 찾아왔던 동향인 송 씨에게 양복점을 맡겼고, 송 씨와 포로수용소에서 친하게 지냈다는 함경도 출신 박 씨에게도 새로 양복점을 차려 맡겼다. 사실상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 송 씨를 장가보내 우리 집 건너편에 집을 사서 살림을 차려주었다. 박 씨도 장가들여 살림을 차려주었다. 어머니는 양장점을 시작하셨는데 구포에서 올라오신 큰이모님 댁 둘째, 셋째 누나에게 일을 맡겨 그 집이 자립할 수 있게 해 줬다. 몇 년 후에는 양복점 두 곳과 양장점을 모두 저들에게 넘겨주고, 아버지는 1957년 「협성청량음료회사」를 세웠다. 협성사이다, 협성콜라, 주스를 생산하셨다. 그 당시 칠성사이다, 서울사이다와 더불어 3대 회사였다.

  부산에서 동생 한 명이 더 생겨 우리 가족은 일곱 명이 되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그해 나와 두 살 어린 여동생은 창신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갔는데, 겨울바람과 추위로 겹겹이 옷을 입고 떨며 공부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던 기억이 난다. 한강이 온통 얼어붙었다. 썰매를 타는 아이들, 굵은 강철선을 길게 붙여 만든 널판 스케이트를 신발 바닥에 끈으로 묶어 지치는 아이들, 군고구마나 호떡, 풀빵 등을 파는 리어카들... 서울의 겨울 풍경은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 냄새가 물씬물씬 배어나던 그리움의 샘이었다. 물론 어른들은 생활전선에서 힘들게 지내셨겠지만 그래도 서울은 차츰 폐허 속에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화의 흔적은 사방에 널렸고,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피란 가지 못한 우리는 인천 상륙작전 때 서울 쪽으로 밤새껏 쏟아지던 포탄과 포성, 섬광의 불빛을 보며 공포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을 새웠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했기에 허물어지고 불탄 건물 잔해들을 보며 그 참상을 알 수 있었다. 가마니를 덮은 시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6학년 2학기부터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대비하여 밤늦도록 수업을 했다. 그때까지도 전기사정이 안 좋아 저녁에는 각자 촛불을 켜 책상에 붙여놓고 시험문제를 풀었다. 우리 반을 담임하신 최관순 선생님의 열성은 대단했다. 다른 반과 비교해서 중간고사나 모의시험에 뒤지지 않으려고 참으로 열심히 가르치셨고, 9시가 넘어 공부를 마칠 때까지 우리 곁에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점심을 토해내며 배를 움켜쥐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최 선생님은 택시를 잡아 옆 반 여동생을 불러 집으로 데려가게 하곤 집에 전화로 연락했다. 동네 의원이 왕진 와선 얼음찜질하면 된다고 하곤 돌아갔는데, 밤새 통증은 더 심해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몸에선 열과 식은 땅이 흐르고 몸이 차츰 떨려왔다. 그렇게 고통스레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동네 외과의원에 갔다. 원장은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고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해 보고는 고통스러워하는 내 비명에 복막염 같다며 당장 수술해야 한단다. 전쟁 직후라 마취제를 준비할 수 없던 동네 의원에서 나는 마루타 아닌 마루타가 되었다. 부모님과 원장부인 등 여러 명이 내 팔과 다리를 내리눌러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생 배를 가른 것이다. 봉합할 때까지 나는 너무 아파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어른 여러 명이 누르고 있어 몸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봉합이 끝나고 거즈를 넣은 상태로 일단 수습을 했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8cm 정도 깊고 긴 상처가 기념비로 내 배에 남아있다. 가끔 수술 부위를 보며 전쟁 중에 부상병이 넘치다 보면 마취 없이 수술할 수도 있을 텐데, 그 끔찍한 고통은 총상보다 더하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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