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5)
시간의 여행(5)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0.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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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의 전환점

신학, 그게 뭔데

 

  신학이란 개념을 우리 가족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교회에 안 나가셨지만, 건축헌금이나 특별 헌금 등은 늘 많이 내셨다. 그렇지만 목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되는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관심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며 집사로 권사로 봉사를 많이 하셨지만, 신학교라는 게 있다는 정도만 알 뿐 신학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는 전혀 모르셨다. 나 역시 신학이란 낱말, 연세대학교에 신과대학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고3 겨울 방학이 되어 진학할 대학에 입학원서를 접수해야 하는데, 사람이 무엇인지 관심이 많았기에 인류학과에 지원하려다 포기했다.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대학교라 장애 학생도 받으리라 생각하고 어머니와 눈이 쏟아지는 날이었는데도 연세대 정문 수위실에 가서 원서를 사 왔다. 연대 영문과나 철학과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김재호 목사님을 찾아가서 내가 어느 과를 가는 게 좋겠냐고 의논하셨는데, 목사님은 나의 중학교 입학과정도 잘 알고 계셨던 터라, 영문학이나 철학은 나중에 해도 된다며 먼저 신학을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는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을 내게 전하며 의논했다. 사실 그때는 우선 학교에 입학하는 게 더 중요했다. 고민 끝에 가족회의를 하고 나는 연세대 신과대학 신학과에─당시 신과대학에는 종교음악과도 있었음─, 동생은 이화여대 교육학과에 원서를 써서 접수 시켰다.
   이대는 연대보다 하루 앞서 합격자 발표를 했다. 여동생은 뛰어들어와 합격 소식을 전하며 기뻐했다. 가족들 모두가 축하했다. 친척들의 문의 전화도 이어졌다. 훗날 어머니가 그날을 회고하시면서 내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기도하며 밤을 새우셨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합격자 명단을 확인해오라고 회사 직원을 학교에 보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정작 나는 무덤덤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기뻐하셨다. 친척들과 동네 친지들이 소식을 듣고 “사이다 집─아버지가 협성사이다 공장을 하셔서 친지들이 그렇게 부름─에 겹경사가 났다.”며 축하해 주었다.

410322

  신학과에서는 내 문제로 교수회를 열어 합격 여부를 논의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신학과 교수진은 서양인 교수(Charles Goodwin 신부와 Peter van Lierop 선교사) 두 분과 일본 동경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신 지동식 교수,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신 한태동 교수, 그리곤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에 유학 갔다 온 네 분으로 구성되어있었고, 모두 목사님이셨다.

 

‘한숭홍 학생증 번호 410322’가 찍힌 학생증과 학교 배지, 교과서를 받으니 연대생이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3월 20일 9시에 개강을 하고, 12시에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며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며 선배들 도움으로 수강신청을 마쳤다. 강의하시는 교수님들 모습은 권위가 있으시며 훌륭하셨다. 어떤 교수님은 대학 생활에 관해 지도해 주시며 길 안내를 잘 해주셨고, 어떤 교수님은 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신학의 용어와 학문성, 타 학문과 연계성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솔직히 말해서 겁먹은 아이처럼 부동자세로 듣기만 했을 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업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주판알과 공병우 타자기 치는 소리, 속기, 단식과 복식 장부, 전표정리 등만 머리에 꽉 찼으니 이런 말씀이 너무 생소하고 난해했다. 대다수 학생은 신학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 궁금해하였는데, 교수님마다 각자 전공과 연관하여 설명해주셨다. 한 주일이 이렇게 지나갔다. 얼마 후에는 2학년 선배들이 신입생 축하를 해준다며 다과 준비를 하여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낯을 익혔다. 이런 관행이 당시 신학과 전통이라고 했다.

SCA

학교 게시판이나 건물 내의 공간, 심지어 백양로 나무에도 학생 동아리마다 내붙인 안내장과 초대 포스터가 붙여졌다. 나는 SCA(= Student Christian Association)라는 「기독학생회」 내에서 영어예배와 토론을 한다는 동아리, 월드펠로우십(The World Fellowship)에 가입했다. 지도 교수는 교목으로 계셨던 제임스 레이니(James Laney) 목사였는데, 후에 연대를 떠나서 미국 에모리대학교 총장을 지내셨고,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하여 4년간 다시 한국에 있었다. 성탄 때는 그 댁에서 전축에 성탄 캐럴을 틀고 파티를 하며 선물을 나누기도 하고, 밖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눈길을 걸어 교정을 돌기도 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학교 내 서양식 사택에서 살았는데, 집들이 모두 숲속에 있어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가끔 신과대학 교수(선교사)로 계시는 van Lierop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해 주시기도 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7:30-19:30 서대문 정동교회 교육관인 「젠센홀」(Jensen Hall)에서 모였으며,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철저히 영어만 써야 하는 규칙 때문에 신학기에는 100여 명이 가입했다가 매주 줄어들어 몇 주 지나면 30여 명이 계속 모였다. 매주 몇 명이 빠져나가고 새로 들어오곤 했다. 시간이 되면 먼저 예배를 드리고 30분 정도 다과 시간을 가지는 데, 그때 서로 친목을 나누며 이렇게 저렇게 영어로 이야기하곤 한다. 사실 문법적으로 짜 맞춰 가는 영어였기에 발음도 이상했지만 어쨌든 콩글리쉬는 콩글리쉬와 통했다. 정확한 영어는 아니었어도 서로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6월 18일에는 회원 24명이 서오릉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고 놀이를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는데, 한 학기 동안 서로 매주 만나다 보니 모두 학과 친구보다 더 가까워졌다. 이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영어 두려움도 사라지고, 각 학과 친구들과도 친해져 학교생활이 즐거워졌고, 다음 주가 기다려지곤 했다. 어느 학기에는 목요일 수업이 없는 날인데도 모임에 참석하러 저녁에 「젠센홀」에 가기도 했다.

  나도 준비해서 주제발표를 하곤 했다. 10여 분 발표하기 위해 한 주일 내내 쓰고 고쳐 쓰면서 원고를 만들어 읽고 또 읽고 하여 가서 발표하곤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선배도 여러 명 있었는데, 특히 영문과 4학년 여학생은 참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주제발표가 끝나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서로 말을 하려 하지 않기에 회장이 지적해서 질문하게 하는 형식의 토론이었다. 7시 30분에는 끝나는데, 끝날 때는 회장이 다음 주 주제와 발표자를 지정해 주고, 광고 후에 기도로 마친다.

 

영어를 배우려는 목적으로 각 학과에서 모인 학생으로 4년간 참여하며 나는 이공계 친구들과 정법대, 문과대, 상과대 등 거의 각 학과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회장은 정외과 3학년 김흥수 선배였고, 그 외에도 김형렬(연대교수), 백승기(경원대 부총장), 최연홍(미국 대학교수/시인), 문창배, 노원진, 이정일, 김광렬, 여학생으로는 이원주, 구명자, 한정자(도미), 한명자, 김유진, 김홍자, 천소자, 정태소 등 지금 생각나는 이름들이다. 58년 전의 기억이라 많은 이름이 아물거리지만 내 기억 속 저 친구들의 얼굴과 모습은 아직도 그때 그들 모습으로 아련히 떠오른다. 많은 친구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당시가 그립기도 하다. 일 년에 몇 번 학기 중 공휴일이나 토요일에는 피크닉이나 등산도 했다. 7월 17일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마지막 모임을 우리 집에 가졌다. 캐나다에서 온 캐리(Joan Carey) 양도 와서 24명이 아래층 이 층에서 북적거리며 지냈다. 캐리는 간호사인데 연대 한국어 학당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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