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7)
시간의 여행(7)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0.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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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의 전환점

이해의 지평

  연합신학대학원에는 이단에 속하는 신학대학 졸업생이 아니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학생들의 출신 배경이 다양했다. 매 학기 강의도 각 신학 대학교에서 파견된 교수들이 담당했다. 한 학기에 몇 번 외부 전문 학자들의 특강이 있는데, 불교(이기영)나 유교(유승국)에 관한 특강은 신학의 폭을 넓혀주었다.

  세미나 시간에 과제를 가장 많이 내주시는 분은 루터교 신학교 지원용 교수였다. 그분은 조용하면서 깐깐하시며, 정확하셨다. 첫 시간에 이번 학기 세미나를 어떻게 진행해 갈 것인지, 과제와 준비 과정, 논문 등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경청했던 10여 명의 학생 가운데 다음 시간에 수강신청하고 출석한 학생은 5명이었다.

  지 교수는 학생들에게 펠리컨(Jaroslav Pelikan)이 지은 루터의 생애와 신학에 관한 원서 한 권씩을 나눠주고, 루터와 그 당시의 교회와 사회, 시대 상황 등에 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수업을 마칠 때 영어로 타자된 주제발표 목록을 한 장씩 나눠주곤, 다음 시간부터 발표해야 한다며 발표 순서를 즉석에서 정했다. 한 학기에 5번 정도 원서를 읽고 정리해가며 발표해야 하고 토론하며, 학기말에 논문도 제출해야 하므로 부담이 큰 과목이다. 몇 주 후부터는 영어로 타자해 등사한 자료들을 묶어 나눠주시고 그것으로 계속 수업을 했다. 2학년 1학기 교수님의 세미나 과목은 “룬드신학”이었다. 니그렌(A. Nygren)의 『아가페와 에로스』(Agape and Eros)를 중심으로 발제를 시키고, 아울렌(Gustaf Aulén), 빙그렌(Gustaf Wingren) 등 학부에서 들어 본 적이 없는 신학과 신학자들에 관한 세미나였다. 교수님은 한 번도 늦게 오거나 휴강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한숨은 날로 커갔다. 다른 과목에서도 과제가 많았지만, 이 과목만큼 많지는 않았다. 나는 이어서 두 학기 교수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이 세미나는 내게 자신감과 의욕을 북돋아 준 계기가 되었다. 루터의 신학에 관한 신학적 지식에도 도움이 됐다.

  신학은 배워갈수록 신비롭고 재미있었지만, 그 분야에서도 나는 특히 철학적 신학에 관심이 많았다. 철학과에 가서 이규호 교수의 철학 강의를 들으며 철학의 매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교 때 서남동 교수로부터 파울 틸리히의 신학에 관해 배우면서 점점 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원서 강독까지도 틸리히의 저서로 하다 보니 신학을 하는 데 철학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연합신학대학원에는 ‘철학적 신학’이라는 전공 영역이 없어 나는 조직신학을 전공하며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이종성 교수의 “신학 체계론”과 “아우구스티누스 연구”, 서남동 교수의 철학적 신학 세미나는 나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켜주었다. 세미나 준비를 위해 영어원서─1965년도엔 신학 번역서가 거의 없었음─를 읽어가며 발제용 원고를 작성하다 보니 철학적 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갔다.

  나는 이규호 교수가 독일어로 강독하는 교육철학도 수강하면서 독일어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당시까지도 세계신학의 주류는 독일 신학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심지어 영미권 신학자들조차 영역본으로 독일 신학에 접할 수는 있었지만, 당대 신학을 선도했던 대다수 석학은 학생 시절에 몇 학기 정도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신학 과정을 마치는 것을 신학 공부의 정석으로 여겼다. 어떤 학문이든지 그 학문을 태동시킨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상식 수준의 표피성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신학과 철학의 연계성, 그리고 교육학까지 접목한 삼학일체(三學一體)의 학문구조를 어렴풋이 구상하며 나는 대학원 생활을 즐겼다. 신학에서는 이종성, 서남동, 철학과 교육철학에서는 이규호 교수의 인격과 학자적 전문성이 나를 형성시켜가는 동인이었다. 지원용 교수의 루터 세미나와 정하은 교수의 기독교 윤리학, 이장식 교수의 18세기 도덕론 등의 세미나도 신학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꿈과 이상

  그 당시에 나는 꿈을 이루어 나갈 계획을 잠정적으로 구상해 보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어떤 프로그램에 짜 맞추어가며 꿈을 키워간 것은 아니다.
   나는 학문과 이상이 상반되거나 서로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이상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발로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과정에서 학문의 에너지가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을 일장춘몽이라거나 실체와 형체가 없는 허상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 학문에 대한 매력은 이상에 의해 점화될 수도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이다.
   인간에게 꿈이 있다는 것,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이 꿈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붙잡아 보려는 욕망의 힘이 이상을 잉태한다는 것은 진리라 하겠다. 인간은 꿈, 이상, 욕망 등과 관계하고 있을 때만 자신의 삶을 엮어가며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문제는 꿈을 꾸기만 하다 깨어나면 그 꿈은 환상이나 환영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지만, 꿈을 이루려는 의지는 이상을 실현하려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이상의 날개를 퍼덕이며 꿈을 찾아 창공 높이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빈회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신과대학 선배가 나를 불렀다. 정빈회라는 모임에서 나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가입하라는 것이다. 이 모임은 5년간 졸업한 동문 중에 학년별로 한두 명 정도씩 엄선하여 결성된 모임이라며, 내가 마지막 학년 회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5년 선배인 김중기(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Ph.D.) 선생이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었다. 회원으로는 신성종(미국 템플대학교 Ph.D.), 이종윤(영국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 Ph.D.), 남재현(미국 에모리대학교 Ph.D.), 장종철(미국 SMU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민영진(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Ph.D.), 김상일(미국 필립스대학교 Ph.D.), 강사문(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Ph.D.)과 한숭홍(독일 아헨대학교 Dr.phil.), 그리고 특별 회원으로 철학과 출신 김용복(프린스턴 신학대학원 Ph.D.) 선생도 가끔 참석하였다. 어느 회원이 헬렌 윤(Helen Yun)이라는 분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다며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소개했다. 키가 크고 매우 지성적인 여성이었다.

  학기 중에 매월 12명 내외로 모였으며, 식사 후 쉬었다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토론을 마친 후에는 서로 학문과 연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장래 계획 등도 나누곤 했다. 모든 회원이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신학대학 교수로 봉직했고, 대학 총장을 지닌 회원, 초대형 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한 선배, 대학교수로 봉직하다 성서공회에서 총무로 일한 선배 등등 모두 제 자리에서 큰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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