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8)
시간의 여행(8)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0.11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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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의 전환점
연신원 기숙사 앞에서(좌)  1965.10.3, 광릉에서/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교회 야유예배(뒷줄 왼쪽 3번째가 필자, 우)
연신원 기숙사 앞에서(사진 왼쪽) 1965.10.3, 광릉에서/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교회 야유예배(뒷줄 왼쪽 3번째가 필자) (사진 오른쪽)

던져짐과 추스름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나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집을 떠나 한 번도 혼자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생소한 분위기와 낯선 얼굴들과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퍽 어색했다. 외로움도 아니고, 두려움이나 공포감도 아니고 어쩌면 소외된 이방인의 심정 같은 것이 내 속에서 용솟음치는 것 같은... 어쨌든 학교에서 마련한 환영식에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한 주일 정도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숙식을 같이하며 매일 보는 얼굴들이다 보니 빨리 친하게 되어 내 방에서는 주말마다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니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목사님들은 금요일 오후만 되면 집에 가셨다 월요일 오후에 올라오신다. 이때가 되면 기숙사엔 10여 명만 남아있어, 매우 조용하고 적막하다.

  대학원 시절 가까이 지내던 친구로는 일본 동경신학교를 마치고 연신원에 유학 온 이태우(조직신학), 한신대 출신 이종헌(기독교 윤리학), 감신대 출신 김용화(구약학)와 황효남(기독교 윤리학), 최승제(기독교 교육학), 도병일(기독교 교육학)이었다. 윤현(기독교 윤리학), 박송(기독교 교육학)은 우리보다 10년 정도 위였기에 동석해도 조심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매우 개방적으로 어울리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갔다.

  이종헌 군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며 늘 웃는 얼굴이다. 제주도 토박인데 가끔 제주도 방언도 가르쳐주고, 제주도 민요도 부르며 언제나 분위기를 주도했다. 종헌이는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교회에 출석했는데 그 당시 정하은 교수가 그 교회에서 가끔 설교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 교수는 종헌이 주임교수로서 한신 출신이며 제주도 토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9월 어느 날, 종헌이는 내 방에 와서 “10월 첫 주일 수도 사대 부속교회 야유예배에 가자”며 기도를 맡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30분 정도 예배를 드리곤 점심을 먹고 저녁때까지 젊은이들이 발랄하게 놀았다. 종헌이는 그 당시 미술 교사를 희망하는 여학생과 교제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해 결혼했다. 나는 수십 명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시 형식으로 기도 원고를 작성해 몇 번 음을 넣어 읽으며 연습을 하고 갔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낭송했다. 옛 원고 뭉치에서 그날 적어 두었던 기도 시 원고를 찾았다.

주의 동산에서
한숭홍

주여!
세상 젊은이들과 성별 된 자녀들이
주의 동산에서 주일을 경건하게 맞나이다
가을빛 짙어가는 이 하루를 온전히
당신께 봉헌하오니 받아주소서

주여!
아름다운 자연에서 주의 솜씨를 찬양하며
죄의 역사에서 구속의 섭리를 보나이다
자연의 산천초목에서 주를 만나며
주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주여!
어린양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셨듯이
이들의 갈급한 심령에 생명수를 채워주소서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가 이 자녀들에게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소서

아멘

(1965. 10. 3, 광릉에서/ 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교회 야유예배)  
   
애니의 추억    

  2학기부터 장종철 형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나보다 4학년 위 선배인데, 늦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동급생이 되었다. 나를 많이 생각해주고 배려심이 많은 형이었다. 1학기까지는 소설가이신 곽학송 선생님 댁에서 하숙  생활을 했는데, 2학기에 기숙사로 옮겨 온 것이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지내면서도 가끔 곽 선생님 댁에 가서 지냈다. 어떤 때는 나를 데리고 가서 식사도 하고 곽 선생님 사모님과 다과를 하며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곽 선생님은 작가 모임에 나가시곤 해서 주로 사모님과 환담을 하며 지냈다.

  사모님은 매우 인자하셨고, 미인이셨다. 처음 간 날 식사 후 다과를 하며, 나는 느닷없이, “아, 사모님! 참 미인이시네요. 기생 같으세요.”라고 말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는데, 사모님은 살며시 웃으시기만 할 뿐 말씀이 없으셨다. 그때 나는 ‘미인=기생’이라는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에, 그저 아름답다, 예쁘다는 의미로 표현하려 했는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정중히 사과했다. 그분은 내 얼굴을 보시며 “한 선생,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라며, 차를 따라 주셨다. 그 후 그 집에 초대되면, 사모님 얼굴을 잘 쳐다볼 수 없었는데, 몇 번 그런 초대를 받으며 지내다 보니 부끄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어느 날 장 형이 곽 선생님 댁에 가서 저녁 식사나 하자고 해서 함께 갔다. 그런데 키가 늘씬한 짙은 갈색 머리 서양 소녀가 있었다.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곽 선생댁에 잠시 와서 지내고 있었다. 그 애는 낯선 사람 앞이라 수줍었던지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그 집에선 애니(Anny)라고 불렀다.

  그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어느 주말, 곽 선생 사모님과 애니가 “오랫동안 한 선생 얼굴 못 봐 보고 싶어 왔어요.”라며 찾아왔다. 서로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며 환담하다 보니 저녁때가 되었다. 적적하고 적막한 주말이었는 데 예상치 않았던 방문으로 오래간만에 식사도 같이하고 커피도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날 장 형은 인천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애니가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와서 놀다 갔는데, 들어오는 것을 본 몇몇 기숙사생이 궁금했던지 저녁때 내 방에 몰려왔다. 나는 아는 분과 친분 있는 여자라는 정도로 이야기하며 얼버무려버렸다. 우리 관계는 내가 독일로 떠날 때까지 아름답게 이어졌다. 아직도 나는 애니가 왜 곽 선생님 댁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기에. 귀국해서 장 형에게 물어보니 미국에 갔다고 한다.

야유예배 후(앞에 이종헌, 뒷줄 필자, 가운데 이태우)(위 오른쪽 사진)  Anny(위 왼쪽 사진)  왼쪽부터 필자, Anny, 장종철 선배 (아래사진)
야유예배 후(앞에 이종헌, 뒷줄 필자, 가운데 이태우)(위 왼쪽 사진) Anny(위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필자, Anny, 장종철 선배 (아래사진)

추억 속의 그때

  1966년 5월 30일(월) 연신원 주최 「제1회 전국신학대학생 연구회」가 여러 신학교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나는 신학 분과를 맡아 최근 세계신학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 죽음의 신학”에 관해 발표했다. 학생 3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를 마치고 모두 「평화의 집」에서 만찬을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6월 11일(토) 연대 재단 사무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갔더니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려주는 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서, “토요일인 데...”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이미 그녀는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이름을 물었더니 서진순 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학기말 논문 한 편을 한글로 타자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랬더니 가져오라며 퇴근 후 쳐서 연락하겠단다. 6월 14일(화) 나는 지원용 교수에게 제출할 룬트파 신학에 관한 원고를 가져다주었다. 그 이틀 후 받아 교수님께 제출했다. 이렇게 데이트가 시작되었고 만남이 이어졌다. 6월 18일(토) 7시 진순 양과 광화문 리버티 다방에서 만나 자이언츠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고, 코나 하우스에서 스파게티로 저녁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늦게까지 있다가 서강에 있는 집까지 데려다주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진순 양은 퍽 친절하고 명랑하다. 이야기할 때는 웃으며 재미있게 말을 이어갔다.

  6월은 참 바쁘게 보냈다. 27일(월)은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음산한 날이었다. 용화가 내일 오후 2시에 여자친구가 파독 간호사로 떠난다며 적십자병원 근처 중국요리점에서 약혼식을 하니 꼭 참석하라고 전화를 했다. 용화 선배, 황효남, 나 이렇게 다섯이 둘러앉아 선배의 주례로 몇 분 만에 약혼식을 마쳤다.

  문전섭

   2학년 2학기, 11월 14일(월) 1학년에 입학한 장신대 출신 문전섭과 신학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교제를 시작했다. 그 당시 장신대는 신학 풍조가 보수적이었다.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등은 별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문전섭은 현대신학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며 퍽 조용했다. 10여 년간 연락이 끊어져 서로 생사를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날 문 목사가 내게 소식을 알려와 다시 옛 우정을 되살렸다.
   그 당시 그는 총회 교육부 총무로 있었다. 우리는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과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 목사는 목회하다 대전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신학-교육-선교의 세 궤를 잇는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 선교 관련 저서를 여러 권 번역·편집하여 출판한 그에게는 기독교 자체가 선교로 정해져 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스크바, 싱가포르 등지에서 선교사역을 하다 지금은 은퇴하여 광주에서 글을 쓰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 가정의 특이한 것은 2남 2녀와 사위 두 명을 포함하여 일곱 명이 모두 장신대 동문이며, 사모님도 한일신학교를 졸업했으니 한 가족 8명이 신학을 전공한 가정이다. 딸 두 명은 직접 내게 배웠는데 그 집 부녀와 나의 인연이 대를 이어 나와 엮어진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문 목사 사모님은 시인이며 수필가인데 첫 수필집을 낼 때 내가 축하하며 추천의 글을 써주었다. 50년이 넘는 요즘도 우리의 만남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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