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가시=향기
모기=가시=향기
  • 피러한(한억만)목사
  • 승인 2019.10.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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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때를 모르고 모기가 날 괴롭히고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여름보다 더 극성스런 모기에 물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모기는 해충인데 왜 생겨났을까?” 그 말을 듣자 나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모기는 꼭 있어야 할 벌레였다. 모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김새는 그렇다 해도 앵앵 거릴 때부터 신경 쓰이고, 물리면 얄밉도록 가렵다. 게다가 치명적인 질병을 퍼트리고 있다.  모기는 3,000종 넘게 분포되어 질병을 통해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생물이다. 일본뇌염, 황열, 사상충증, 뎅기열 등을 옮기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말라리아인데 연간 45만 명이나 죽어간다.     

그런데 이런 지긋지긋한 모기를 간단하게 없앨 수 있다. 모기 몇 마리만 잡아다 유전자 변형만 시키면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살충제를 뿌려 죽이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를 유발시킨다.  그것은 생태계 교란과 직결되어 있다. 모기를 먹고사는 동물들이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변형에 또 다른 변형이 생기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아니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일은 식물에서 수정이다. 알을 밴 암모기는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을 먹지만 평소 암모기와 숫모기는  식물의 꿀을 먹고 산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기는 나비나 벌처럼 식물 수정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모기는 이렇게 존재이유가 있음에도 피해를 보는 사람에겐 백해무익한 존재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 하면서 불가피하게 만나는 대인관계 속에서 꿀벌 같은 사람과 함께 공공의 적인 모기 같은 사람이 도처에 깔려 있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기에 남 가르치려하고 남의 것 쉽게 생각하고 대화 속에 자랑을 일삼고 또 뒤 담화는 보너스고 스토커처럼 관심에 목마른 사람...등등이다.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가을 모기는 기후변화 영향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꿀벌까진 기대도 하지 않지만 모든 정황상 이제 모기 짓 할 때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때를 잊고 주어진 사명처럼 윙윙거리며 민폐를 끼치는 이가 있다.     

모기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어쩔 수 없는 동거라 하더라도  사람은 모기나 꿀벌 이전에 인간관계 상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인간사회는 다양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관계 망이다.  내가 좋아하는 A그룹, 그냥 공동체로서의 B그룹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C그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인생엔 정답이 없다. A그룹이 영원히 A가 될 수 없다. 한 순간에 그 A가 C가 되거나, C가 A도 될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를 수학공식처럼 표준화할 수도 없고 정형화 할 수 없기에 모기 같은 존재를 피하기보다는 공존 속에 지혜가 요구되어진다. 그 지혜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고 말을 한다. 그런 이유로 무슨 일에서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상대를 내가 지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난은 바보라도 할 수 있지만 지혜로운 자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곧 상대의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에 내가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비난을 줄이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B그룹이든 C그룹이든 그 사람 입장에 서서 판단할 줄 안다면 그는 이미 지혜자의 문에 선 것이다.   어찌 보면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내가 상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대하면 결국 나도 그런 마음으로 대접받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무는 모기가 없어진다면 그 땐 편할지 몰라도 나중엔 더 큰 화가 세상에 초래된다.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모기 같은 사람이 사라진다면 잠시 동안은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무너질 수 있기에  나는 그들을 더 신중하게 대해야만 한다. 가시가 없다면  장미 존재 이유가 없듯이 인생도 어쩜 수많은 가시들을 통해 진정한 내가 조성되어가고 또한 그로 인해 내가 알지 못하는 복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예쁜 꽃에 가시가 있어요?’ 라고 말 하지만 그 보다는 ‘가시나무에서 이런 아름다운 꽃이 피네요!’ 라고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던가. 내게 고통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인생의 꽃들을 피울 수 있었겠는가.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기를 찍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는 루오의 말대로 삶의 가시들은 꽃과 향기를 만들어주는 고마운 자원이었다.     

오래 전 12월 31일 저녁에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다.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에 가서 가시를 빼냈는데 가시가 너무 큰지라 식도에 구멍이 생겨 한 해 마지막 날 병원에 있었다.  그 때 내 목구멍에 걸린 큰 가시 같은 어떤 존재로 인해 난 원형탈모까지 생길 때였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는 고민할 것도 없이 빼내야 하겠지만 가시 같은 사람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다.  적과의 동거는 필요악이면서도 더불어 삶의 필요지혜가 되고 있다.  생선가시야 조심하든지 아예 안 먹으면 위험에 빠지지 않지만,  가시 같은 사람은 피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씨름하므로 진정한 내가 만들어진다.      ‘브레단’은  강하고 교만하고 화를 잘 낸다. 그의 지도하에 있던 사제가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브레단’은 바다로 나가 참회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고행의 길에서 자신을 도와줄 사제로 비열하고 심보가 고약한 ‘말로’를 선택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말로’는 도움은커녕 끊임없이 대선배인 ‘브레단’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알았다. 못된 ‘말로’를 품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요, 그토록 갈구했던 겸손한 마음을 기르도록 자극하는 치료제라는 것을.  

인간은 너무 무지하므로 스스로 가시 같은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이걸 아시고 그는 기가 막히게 거시기 같은 사람을 붙여주신다.  나를 힘들게 하고 정말 사랑할 수 없을 때 수없이 질책하면서 비로써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며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겸허한 마음을 조금씩 소유하게 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해 한나는 브닌나를 통해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했던 마음이 산산이 부수어졌다.  영원한 복을 담을 그릇을 만들려 그는 지금도 줄줄이 대기시켜 놓고 있다.   일부러 내가 그런 사람을 택하진 못해도 그가 보내주신 모기나 가시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유통기한이 있기에 때가 되면 없어지고 더 좋게 회복된다는 것이다.   조창인 [가시고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몸을 주어도 좋을 지구상에서 부성애가 가장 강한 ‘가시고기’로 비유했다.  그 ‘가시고기’처럼 그들과 동거를 통해서 나도 모르게 부성애같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능력 그리고 근신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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