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23)
시간의 여행(23)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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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남의 여운
마틴과 마리온의 초대(마틴 생일)      스잔느(루포)와 하네로레(우)
마틴과 마리온의 초대(마틴 생일)             스잔느(루포)와 하네로레(우)

1971년 여름학기: 창조적 진화

  4월 15일이면 여름학기가 시작되는데, 나는 여행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서서히 개학 준비를 했다. 도서관 일도 다시 하면서 수강하려는 세미나에 관련될 것 같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독일 대학교의 수업 형식은 강의(순환 강의도 포함), 초급세미나, 중급세미나, 고급세미나, 콜로퀴움 등 다섯 단계로 나뉜다. 세미나 단계에서는 대체로 발제와 토론, 그리고 학기말 논문을 제출하여 평가를 받는다. 세미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과제가 많고, 독서량도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기 시작 전에 미리 자료를 눈여겨 두지 않으면 학기 내내 그 세미나에서는 뒤처지기 때문에 특히 외국 학생 경우에는 사전 준비가 많은 도움이 된다.

  개학을 앞두고 지그린데가 한 달 넘게 못 봤다며 야외로 드라이브 가자고 해서 레나테, 경숙, 영근, 나 이렇게 튀빙겐 근처 어느 숲을 드라이브하고 그곳에서 식사하며 오후 한때를 보냈다. 그녀는 레나테 친구인데 튀빙겐 근처 어느 작은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4월 22(목)일 오후 8시에 볼노우 교수의 콜로퀴움 첫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전에 교수님을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이번 학기도 내게는 땀나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텐데….
   솔직히 말해서 볼노우 교수의 콜로퀴움에서 발표되는 주제들은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시간 있을 때마다 철학 학술지들을 보며, 최근의 세계철학 경향과 학자들을 익혀가며 지식을 축적해 가곤 했다. 내가 관심 있게 눈여겨보곤 하는 것은 과학철학, 과학이론(Wissenschaftstheorie)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튀빙겐대학교 철학부에서는 이런 분야를 담당하는 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한때 나는 실존주의 철학과 삶의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내게서는 새로운 철학 사조를 찾아가려는 의욕과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모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헐적으로 솟구쳤다.

   그즈음 유럽의 대학가에는 ML(마르크스-레닌)계통의 학생 운동권과 적군파, 네오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일파, 반전·반핵을 기치로 운동하는 그룹 등등 다양한 집단이 학생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우선 나는 무엇이 젊은이들을 자극하여 이런 지경으로까지 올 수 있게 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 초석은 마르크스라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마침 튀빙겐대학교에서 「소외이론」세미나가 있어 나는 참석해서 주어진 과제를 읽어가며 배워갔다. 일반적으로 문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던 소외 개념이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에서는 사회구조와 그 틈바구니에서 밀려난 하부구조의 삶의 이면을 파헤쳐 그 비극성을 증폭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서 경제적 차원에서의 사회와 사상, 인간의 삶이 계층화되어가는 과정과 그 구조를 읽어가며, 사회학적 기저에서 철학의 기초를 다져야 하겠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우선은 ‘소외’라는 주제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원시 시대부터 어느 집단이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삶의 한 형식으로 생성되었다는 것을 왜 마르크스의 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모르고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았다. 나는 소외란 계급 간의 차이에서 오는 필연성이라고 주장했고,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 인용하며 비판적 결론을 내렸다. 교수의 반은 참신하다는 것이었고, 이렇게 마르크스의 소외론에 관한 철학적-정치·경제학적 논증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볼노우는 이번 학기에도 계속 니체에 관한 과제를 내주었다. 이미 나는 니체의 영원회귀설과 초인의 도래에 의한 순환적 삶의 숙명적 고리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교수님의 시각으로는 나의 논점이 수용 불가능이었다. 이미 나는 니체의 저서를 정독하며 시간 개념, 역사철학, ‘아폴로와 디오니소수’ 신화에서 표출된 동인으로 설정된 미학, 힘의 역학적 원리와 사회관계, 예술론 등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의 전기를 숙독하며 그의 삶과 그 삶에서 분출되어 나온 용암까지도 알고 있었다. 볼노우는 야스퍼스, 뢰비트, 오이겐 핑크 등등 이런 철학자의 니체 해석과도 너무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때 볼노우 교수에게 제출했던 니체 논문을 한국에서 번역하여 학술지에 발표했다.

김찬국 교수님의 방문

   한참 강의와 세미나 등에 집중하며 지내던 중, 6월 10일 김찬국 교수님이 오시겠다고 편지를 보내셔서, 슈투트가르트 공항에 마중 나갔다. 비행기(LH945.21.45)가 도착하고 교수님과 3년 만에 상면하니 나를 찾아 일부러 시간 내어 오신 교수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교수님은 내가 신과대학 다닐 때 학생처장을 하셨는데, 매년 여름방학이면 연대 ROTC 학생들이 훈련받는 곳에 위문을 가셨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사이다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내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알브레히트의 성서고고학 원서 50쪽 정도를 주시며, 번역해 개학 때 가져오라고 해서 그 과제도 해드렸는데, 이런 인연으로 교수님은 나를 아껴주셨고, 내가 『연세춘추』와 영어신문(「The Yonsei Annals」)에 시를 발표할 적마다 진심 어린 말씀으로 칭찬해주시곤 했다.

   교수님은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교수와 학생의 피상적 관계에서보다는 스승과 제자, 사부의 도에서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교수님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시고 해직되었는데 미국 동문회에서 초청하여 곳곳에서 설교도 하시고 지내시다 나를 만나러 시간을 내어 찾아오셨다.
   튀빙겐에 도착했을 때 너무 밤이 깊어 우선은 교수님을 호텔로 모셨다. 다음 날 아침 찾아뵈었더니 왜 숙박비를 미리 냈냐며 나무라시고, 아침을 드셨기에 모시고 튀빙겐 구경에 나섰다. 저녁에는 간호사들이 교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모시고 싶다고 해서 기숙사 라운지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이곳 생활의 애로 사항을 물으시고, 고생이 많겠다며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이 자리에 유학생도 여러 명 동석했다. 12일에는 이상우 차로 교수님을 하이델베르크로 모시고 가서 도시 곳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저녁 늦게 튀빙겐에 돌아왔다. 13일(일) 슈투트가르트 공항에서 교수님은 취리히로 떠나셨다.

마리온과 하네로레(사진 위 왼쪽)  스잔느(루포)의 초대(사진 위 오른쪽)#5 하네로레(좌), 스잔느(가운데), 발트라우트(우) (사진아래 왼쪽) 발트라우트 (사진 아래 오른쪽)
마리온과 하네로레(사진 위 왼쪽) 스잔느(루포)의 초대(사진 위 오른쪽) 하네로레(좌), 스잔느(가운데), 발트라우트(우) (사진아래 왼쪽) 발트라우트 (사진 아래 오른쪽)

해방과 자유

   7월 1일(목) 나는 콜로퀴움에서 「니체의 시간성」(Zeitlichkeit bei F. Nietzsche)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내 과제는 이로써 끝난 것이다. 15일에는 오후 3시에 아르헨티나에서 유학 온 마르티누스가 마지막 발표자로 인간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슈베르츠로흐(Schwärzloch)에 있는 식당 마당에서 종강 파티를 하고 방학을 맞았다. 내 경우 과제를 다 제출하고 종강을 맞는 날은 한순간에 긴장감이 풀리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허전함도 밀려온다. 방학 때마다 내게 닥쳐오는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홀가분했다. 이렇게 다섯 번째 학기를 마쳤다.
   볼노우 교수와 19일(월) 오후 3시에 연구실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찾아갔는데, 교수님은 방학 계획을 구체적으로 물으며, 짐멜(G. Simmel)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하셨다. 짐멜은 볼노우 교수의 『삶의 철학』에서 쇼펜하우어, 니체, 딜타이, 베르그송에 이어 많이 다루어진 사회학자이며 철학자다. 나는 이미 그 책을 정독해서 머리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대강의 오리엔테이션은 되어있었다. 연구실을 나오며, 다음 학기에는 짐멜과 씨름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도서관 사무실에서 타자로 도서 카트 찍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주말은 쉬며 친구들이 찾아오면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다 멘자에 가거나 일반 식당에 가곤 했다. 방학 후 열흘 되었는데, 지그린데가 어디 놀러 가자며 찾아왔다. 주일이라 쉰다고 한다. 레나테는 부모님 댁에 올라가서 우리는 둘이서 드라이브를 했다. 튀빙겐 주변 알텐스타이그, 나골드를 돌며 오후를 보냈다. 지그린데의 성격은 털털하고 퍽 씩씩했다. 짧은 머리에 소박한 차림이 그의 매력이다. 우리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 드라이브를 하는데, 레나테, 영근, 경숙이 동행할 때도 많다. 오늘은 영근이도 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다.

   라이프니츠-콜렉에서 지내던 친구들은 한두 명씩,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서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는 크리스토프와 비키, 발트라우트, 하네로레, 마틴과 마리온, 스잔느(루포) 정도이고, 그 외에 레나테, 마렌, 지그린데, 리키와 클라우스를 비롯해 몇 명뿐이었다. 이 친구들은 내가 소년 시절에 꿈꾸던 이상의 세계에 사는 존재 같았고, 그 순수함에서 배어 나오는 푸른빛 순정은 나의 유학 생활을 우정과 애정, 지성과 감성의 교묘한 쌍곡선으로 이어주는 가교 같았다.

   내겐 이 우정이 인생 일대에 가장 순수하게 정제된 사랑(Philia)의 결정체였다. 며칠이 멀다 하고 나를 만나러 도서관에 와서 잠깐씩이라도 이야기하다 가고, 주말에는 내 시간표에 맞추어 산책 계획을 짜거나 바람이나 쌔자며 튀빙겐 근교로 드라이브도 하며 나와 함께하려는 그 마음! 나는 가끔 이 우정이 현실적으로는 종교적 성스러움에 못지않은 절대적 신성함이라고 느끼곤 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생일 때가 아니어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나를 초대하여 친교를 나누며 우정을 이어가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나는 이런 게 나의 유학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유학 생활에서 외국 친구가 많다는 것은 언어를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경우이기는 하지만, 서로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인간적으로 어울리며 함께 ‘인간’을 배워간다는 것이다. 독일 학생들의 자존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거의 유색인종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고, 그래서 외국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내게 독일 친구가 많다는 것, 저들이 나와 친구가 되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학업에서 얻는 성취감과 더불어 사람 내음에 젖어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하며 문화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접근해간다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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