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26)
시간의 여행(26)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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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남의 여운
① 친구 부부들과 오후 한때 ② 즐거운 오후  ③ 프라이부르크 대학 본관에서 ④ 프라이부르크 차표와 티티제 유람선 배표
① 친구 부부들과 오후 한때 ② 즐거운 오후 ③ 프라이부르크 대학 본관에서 ④ 프라이부르크 차표와 티티제 유람선 배표

경숙: 쯔비팔텐에서 튀빙겐으로

   겨울학기(WS 1971/72)가 시작되어 한참 강의와 세미나 준비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쯔비팔텐 정신병원 여의사 나우만 박사가 만나자는 전화를 주고 약속한 날에 경숙이를 데리고 왔다. 넥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경숙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매일 접촉하는 사람들이 정신병원 요양환자들인데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 기숙사로 질려 오는 숲길 가에 있는 오래된 공동묘지, 영화관이나 오락 시설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조용하고 단조로운 시골 마을에서, 비록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라지만, 젊은이들이 3년을 지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우리라. 여기에서 일 한지 일 년도 채 안 되었는데 환경을 극복하는 게 얼마나 버거웠으면 귀국하려고 할 가라는 생각을 하며, 경숙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경숙의 심정과 한 말을 나우만에게 그대로 설명했더니,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경숙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나우만은 한참 생각하더니 자기가 힘써 볼 테니 나에게 우선 튀빙겐 대학병원에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하여 일단 그렇게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나는 튀빙겐 대학병원 행정실에 편지를 보냈는데 한 주일 후쯤 되는 어느 날 답장을 받았다. 고용 관계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휴가 중이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몇 번 편지가 오가고 이비인후과 과장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곧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쯔비팔텐 병원에서는 근무계약 기간이 3년이라 계약 파기는 힘들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나우만 박사가 어떻게 사정했는지 1년 6개월 채우고, 병원에 항공료와 초청경비 일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내년 5월 말에 해약해 준다는 것이었다. 튀빙겐 대학병원에서는 늦어도 4월까지는 왔으면 좋겠다며 시한을 정해주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1972년 6월에야 경숙이 튀빙겐 대학병원으로 옮겨와 간호사기숙사(Geissweg Schwesternheim)에 방을 배정받았다. 한국 간호사들은 모두 같은 층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나는 경숙과 약혼하고, 튀빙겐 시청에 결혼식 신청을 했다. 시청에서는 1972년 10월 28일 오전에 날을 잡아주고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용화가 내려왔다. 결혼했어도 각자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집을 구해 나가야 했지만, 튀빙겐에서 집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따로 지내기로 했다.

   경숙은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결혼식 날짜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불현듯 새로운 환경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학문 영역도 내가 원하는 분야 쪽으로 바꿔보려는 생각, 모험일 수도 있고 도박일 수도 있는 이런 일을 감행하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결혼한 후부터 나는 몇 대학에 내가 전공하려는 분야의 교수들과 집중적으로 접촉했다. 그러던 중에 크리스티안 틸(Christian Thiel) 교수님의 초대를 받으며 아헨이 새로운 정착지가 되었다. 경숙과의 인연이 내 결심을 감행하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와 인연이 맺어졌느냐, 누구와 만났느냐에 따라 한 인생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외에는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⑤ 티티제 유람선에서 경숙 ⑥ 티티제 호수 주변 경치 ⑦ 티티제 호수 선착장 ⑧ 티티제 기념품 가게(1) ⑨ 티티제 기념품 가게(2) ⑩ 노상 카페에서 경숙
⑤ 티티제 유람선에서 경숙 ⑥ 티티제 호수 주변 경치 ⑦ 티티제 호수 선착장 ⑧ 티티제 기념품 가게(1) ⑨ 티티제 기념품 가게(2) ⑩ 노상 카페에서 경숙

문화와 자연에서의 배움

   경숙은 튀빙겐에 옮겨와서 비교적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며 많은 배려를 했다. 병원 근무가 3부제로 되어 돌아가며 야근도 해야 하는데 한번 야근하고 녹초가 되어 다음날 오후 근무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간호사들이 야근 당번을 빼줄 정도로 사랑을 베풀었다. 그만큼 자신들이 야근할 날 수가 늘어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친구들 모임에 언제나 경숙을 데리고 가서 소개하고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마련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쯔비팔텐에 있는 동안 독일의 자연과 환경, 문화와 생활에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기에 우선 나는 튀빙겐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도시의 분위기를 익혀갈 수 있도록 했고 대학문화에 스며있는 자유 의식을 알게 해주려 했다. 주말 저녁에는 가끔 학생 카페, 학생들이 모이는 식당 등에서 식사하며, 저들의 생활 행태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냈다. 내 친구들도 경숙을 많이 좋아했으며, 같이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종종 나는 경숙을 데리고 기차나 버스로 튀빙겐 근교 유적지나 유서 깊은 곳에 가서 옛 건축물이나 성, 교회나 성당, 시청 근처 도심 등을 구경하고 숲속을 걷거나 개울가를 거닐며 조금씩 독일을 배워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었다. 데이트가 문화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게 했던 학습의 기회였던 셈이다. 어느 주말에는 지그린데가 날이 화창한데 교외로 드라이브 가자며 데리러 오기도 하는데 이때도 나는 경숙에게 그곳의 간략한 지리적 특색과 역사를 설명해주며 독일 생활에 즐거움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이따금 대학교 탐방을 하기도 했다. 프라이부르크, 마르부르크, 괴팅겐, 뮌스터 등에서 그곳 대학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학습기회를 만들었다. 대학문화에서 자유와 낭만, 젊음이 뿜어내는 학문에 대한 욕구와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972녀 7월 9일에는 티티제로 하루짜리 여행을 떠났다. 아침 일찍 튀빙겐을 출발해서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하며 관광이 시작됐다. 먼저 대학교를 둘러본 후에 시계탑 성문(Martinstor)이 있는 곳까지 다니며 구경하고 멘자에서 점심을 먹고 티티제로 출발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단선철도로 40분 정도 걸리는 관광지다. 티티제에 도착하여 호숫가에 도착했을 때 호수를 일주하는 유람선이 곧 출발한다고 하여 배표를 사서 승선하니 몇 분 후에 배는 물살을 가르며 시원하게 내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티티제는 작은 호수라 일주하는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호수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군데군데 예쁜 집들이 숲사이로 보였다. 거의 동화세계 같은 분위기였으며 현대식 건물이나 고층 건물은 별로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곳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아녔으므로 프라이부르크에 왔던 차에 잠깐 들러보고 가거나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스키어들이 스키 타러 오는 곳이었다. 티티제 주변 전경을 둘러보고 선착장 근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튀빙겐으로 돌아갈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⑪ 노이슈타트-티티제 기차표 ⑫ 프랑크푸르트-마르부르크 기차표
⑪ 노이슈타트-티티제 기차표 ⑫ 프랑크푸르트-마르부르크 기차표

밀수하다 잡힌 간호사

   1972년에도 내게 참 많은 일이 생겼다. 5월 어는 날 유학생학생처에서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나는 무슨 일이 이리 급하기에 이렇게 서두르나 생각하며 찾아갔더니, 작년 1월에 내게 헤렌베르크 종합병원 한국 간호사들에게 독일어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알선해 주었던 여자직원이었다. 반갑다며 몇 마디 인사하곤, 튀빙겐 한국 간호사 한 분이 밀수에 걸려 세관에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데, 세관에서 통역할 학생을 찾는다며 하겠냐는 것이다. 나는 통역은 큰 문제가 없고 몇 번만 하면 될 것 같이 승낙했다. 그분은 다른 방에 가서 한참 있다 나오더니, 내일 오후 한 시에 슈투트가르트 세관원들이 그 여자를 데리고 오는 데 간호사기숙사 로비에 가서 만나라는 것이다.

   압수된 물품 목록을 보니 양담배, 청바지, 양주, 여러 종류 옷들, 잡화 등등 다양했다. 통역하며 세관원들의 심문에 대답하는 그분 얼굴을 보니 사색이 되어있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한국 부인과 접촉하며 PX 물건을 빼돌린 것이다. 세관원 여러 명이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기숙사 방을 수색하고 조서와 자술서(통역하는 내용을 바로 타자 쳐 작성)를 포함하여 서류 몇 장에 사인을 받은 후에 저녁 늦게 세관원들은 돌아갔다. 한 주일쯤 후에 미국에 있다는 남동생(본인 말로는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이라고 함)이 튀빙겐에 왔다. 누나가 이곳에서 몇 년이나 감옥에 있게 될지, 벌금을 얼마나 내게 될지 걱정이 되어 몹시 긴장되어 있었다. 남동생이 와서 사나흘 지난 어느 날부터 그 여자는 튀빙겐에서 볼 수 없었다. 몇 달 후 나는 LA에서 보내온, 발신자 주소가 없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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