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28)
시간의 여행(28)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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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남의 여운

마지막 만찬

   1973년 여름학기는 내게 중요한 학기가 될 거라는 느낌이 내 마음에서 솟구쳤다. 슐츠 교수의 철학사 강의는 거의 매 학기 수강했고, 볼노우 교수의 콜로퀴움은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어떤 묘한 중압감 때문에 계속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내겐 그 어떤 발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내가 철학의 어느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 아니라, 발표자들의 발표 주제가 몇 학기씩 반복되기 때문에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볼노우 교수의 콜로퀴움은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한 학기에 한 번씩 자기가 쓰고 있는 주제를 장별로 발표하고 참석자들에게서 비평과 수정할 점을 지적받고 다음에 다시 고쳐서 발표하곤 한다.

   나는 희랍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큄멜 교수의 그리스 철학 희랍어 원서 강독을 수강했다. 수강생은 4명이었는데 내가 유일한 외국 학생이었다. 수강생이 돌아가며 몇 단원씩 해석하고 나면 교수님이 해석한 문장을 정정해주시고 그 내용에 관한 철학사상과 연관된 일화 같은 것도 곁들여 설명해주신다. 나는 텍스트를 읽어가며 독일어로 바로 직역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꼈다. 큄멜 교수는 인품이 조용하고, 말이 별로 없으며, 매우 진지한 분이었다. 어떤 땐 좀 외롭고 쓸쓸해 보일 때도 있었다. 내가 희랍어 강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게 인상적이었든지 어느 날 점심에 집에 오라고 하여 식사하며 공부 이야기 등을 물었다. 사모님은 직접 빚으신 크뇌델(knödel)과 슈바이네브라텐, 사우어크라우트, 과일 등으로 점심을 차리셨다. 사모님은 매우 친절하시고 수수하셨다. 촌부 같은 수수함이 물씬 배어 나왔다. 교수님 댁에서 대접받은 이 격식 없이 차려진 소박한 식사가 내겐 튀빙겐을 떠나며 가정집에서 먹은 마지막 만찬이 되었다.

튀빙겐을 떠나며

   결혼하며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려는 결단은 학기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곳의 학문 매너리즘으로 무력감과 슬럼프에 빠져들어 갈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분야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가르침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에는 도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질 게 명약관화함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동안 나는 신세계로 가는 항로를 찾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대양을 누비며 4년의 세월을 파도와 폭풍에 휩쓸리며 보내야 했던가. 항해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정착지에서 멈추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튀빙겐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튀빙겐은 내 품에 감성을 채워준 곳이며, 많은 만남으로 나의 인생관에 큰 빛으로 다가왔던 메카였다. 넥카 강변 젊음의 쉼터는 자유와 낭만, 사랑과 우정이 혼재하며 생명의 경외감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나의 젊음을 마음껏 불태우며 인생의 극치를 체험했는데 이 아름다운 곳, 그 시간이 나의 삶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나를 세계로 향해 열린 삶으로 형성해 갈 수 있었다. 이 멋진 공간, 튀빙겐 그리고 그곳에서 엮어진 수많은 추억을 나는 결코 망각의 늪에 묻어 버릴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대학 캠퍼스 같고, 대학생들의 아지트, 사랑의 공간, 사상의 좌와 우가 극단의 이념으로 채색되어 역동하면서도 공존하는 놀이마당 같은 곳,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무풍지대, 자신들만의 시간과 공간에 채워진 다락방 같은 곳, 소시지와 브레첼을 곁들여 맥주 마시며 밤늦도록 토론하고 지껄이며 젊음을 발산하는 이 풍류 문화에서 대학의 자유와 학문의 개방성이 물씬 풍겨 나왔다. 붉은 지붕과 흰색 건물의 조화,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한 것 같은 아름다운 정취, 저녁놀이 질 무렵부터 수많은 비어슈투베(Bierstube)와 식당, 옛길 좁은 골목 주변의 어렴풋한 가로등, 온통 젊음을 불태우는 열기가 넘치는 곳, 이곳에서 대학도시 튀빙겐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내 어찌 이 도시, 나의 학문과 사랑이 꽃피었고 농익어가며 영글었던 이곳을 잊을 수 있으랴.

신세계로 비상

   여름학기가 한창이던 5월에 나는 아헨대학교(RWTH, Aachen) 크리스티안 틸(Christian Thiel) 교수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공부한 것과 튀빙겐에서 9학기 공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동봉했다. 한 주일쯤 지나서 답장을 받았는데, 학업증명서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수강한 강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학업과정 등등 여러 서류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류 준비를 하여 바로 보내드렸는데, 우선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방학하면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와 나의 학문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나는 긴장하며 아내와 같이 찾아갔다. 식사하며 나 개인에 관하여 몇 가지 물으시곤 어떻게 자기를 알았느냐는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교수님의 논문과 과학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그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철학계에서는 실존철학과 삶의 철학, 해석학, 윤리학, 인간학, 실용주의 등이 서양 현대철학이란 이름으로 흐름을 이끌어갔다. 철학과가 개설되어있는 대학교도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서양철학의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지명도가 좀 있는 교수들은 젊은 세대의 꿈을 수필을 통해 사색의 감성으로 충족시켜주었고, 시니어 교수들은 일본에서 철학과 재학 중에 해방을 맞자 귀국하며 갖고 온 교과서와 참고서로 신생 철학과에서 교수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그 당시 아무도 손대고 있지 않은 철학의 불모지대를 들어가 보려는 욕망으로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연구하려 했다. 서양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동양에서도 과학의 기원은 철학에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원소론, 원자론, 수의 공간성과 구조 등등 여러 방향에서 질료가 어떻게 정신과 관계하고 있는지, 그 질료 자체가 무엇이며 그 구조는 어떻게 만물의 생성-변화-발전을 가능하게 했는지 규명하려 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철학은 과학철학이었다. 철학이 과학 발전의 촉진제였다는 말이다. 예컨대 탈레스는 우주의 생성 기원에 관하여 증명하려 했으며, 피타고라스는 수의 개념을 존재론으로 정립하려 했다. 오늘의 개념으로 확대해석해보면, 물론 좀 지나친 주장일 수 있을 텐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철학적 수학, 수리철학을 시도한 선구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의 과학 지배는 중세 때까지 이어져 온 것을 과학사나, 철학사, 서양 문명사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중세 신학에서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지 간에 입증할 수 있다. 나는 틸 교수의 철학에서 이런 점을 배우고 싶었고, 한국 철학계에서 아직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 철학의 한 분야를 다루고 싶었다.
   교수님과 오랜 이야기 끝에 교수님은 어느 분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고 하느냐, 주제가 무엇이냐, 그 이유는 무엇이냐 등등 여러 질문을 하시고,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몇 가지 주제를 줄 텐데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그렇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불교의 과학이론, 중국의 과학철학, 수리논리학 등등 몇 가지 주제를 제안했다. 나는 인도 고전이나 중국 고전을 읽을 수도 없고, 독일에서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된 제2 자료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는 것도 유학의 목적과는 맞지 않고, 내 본래 의욕에 충족하지도 않아 약간 머뭇거렸더니, 틸 교수는 나의 그런 속내를 감지하셨는지, 그러면 게오르그 라부스(Georg Leonhard Rabus)의 과학이론에 관해 연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솔직히 라부스가 누구며, 어느 시대 사람인지, 그의 철학의 주류는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인도나 중국에 관해 연구하는 것보다는 독일철학을 배우러 독일에 왔는데 독일 철학자를 연구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굳은 각오를 했다.
   튀빙겐에 돌아와서 우선 아헨대학교 본부에 전학 신청을 했다.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갖추어 보내고 동시에 부부용 기숙사를 신청했다. 학교에서는 전학허가서를 보내주며, 숙소는 개인적으로 알아보란다.

   아내도 아헨에 있는 병원에 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우선 나는 아헨 대학병원과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루이젠 호스피탈, 두 군데에 편지를 보냈는데, 대학병원에서 먼저 답장이 왔다. 곧 올 수 있냐는 것이다. 아내는 튀빙겐 대학병원에 사표를 내고 아헨대학병원에서 요구하는 필요서류(재직증명서, 병원 측의 근무 평가서, 급여명세서 등)를 발급받고, 퇴직 일자를 조정했다. 8월부터 근무하도록 아헨 대학병원과 협의하고 짐을 꾸렸다. 우선 숙소를 알아봤는데, 병원 근처의 작은 기숙사(Weberstr.)였다. 1층 큰 방인데, 침대 하나를 더 넣어 주었다. 열흘 후에는 방 주인이 돌아온다고 한다.

   방학 때가 되면 멘자 게시판에 목적지가 같거나 같은 방향으로 갈 동행자를 찾는 카풀 쪽지가 수십 개씩 붙여진다. 나는 함부르크로 올라간다는 파오베버스(VW-bus) 카풀 쪽지를 보고 차주에게 연락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차가 튀빙겐을 벗어날 때까지 나는 뒤를 돌아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새벽 4시 튀빙겐! 석별의 시간은 어둠 속 침묵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졌다. 아아, 튀빙겐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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