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31)
시간의 여행(31)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28 1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본질과 현상
Christian Thiel 교수님 근영,                   아파트 정원에서 필자

박사학위 과정 신청   

   나는 이번 학기(WS 1973/74) 4과목을 신청했다. 틸 교수 세미나, 가체마이어(Matthias Gatzemeier) 교수 세미나, 로테르트(Hans-Joachim Rothert) 교수의 루터세미나, 교육학자 비르켄바일(Edward Jack Birkenbeil) 교수의 교육학 세미나, 이렇게 신청하고 세미나에 참석했다. 틸 교수는 내게 박사학위 과정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며 본인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박사학위 과정 신청하며 첫째, 전공 둘을 하든지, 둘째, 주전공 하나와 부전공 둘을 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하는데, 나로서는 철학과 신학, 두 분야를 하는 게 쉬울 수 있고 왕도일 수도 있지만, 교육학(일반 교육학, 교육철학, 기독교 교육학)도 하려는 욕심에 두 번째 안을 택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 시절에 여동생의 교육학 교과서와 관련 서적을 방학 때마다 읽으며 재미를 붙였고 그래서 2학년 2학기 때는 교육학과에서 몇 과목은 청강하고 「교육사회학」(김선호)은 수강했다. 대학원 때는 이규호 교수에게서 교육철학 독일어 원서 강독을 그리고 튀빙겐에서는 볼노우 교수의 교육철학 세미나에서 교육과 철학의 관계에 관해 배우면서 교육학에 차츰 매료되었다.  
   아헨에서는 틸 교수의 세미나에서 학문의 형성과 논리 구조에 관한 이론, 기호논리학의 새로운 형식, 틸 교수가 교수 자료로 본인이 쓴 타자 원고(그때는 책으로 출판되지 않은 원고 상태)로 기호논리학을 공부했다. 엄밀히 보면 틸 교수의 기호논리학은 일반적인 기호논리학과는 접근하는 방식도 사용하는 기호도 달랐다. 콰인(W.V.O. Quine)이나 불(G. Boole)과도 구별되었다. 프레게(Gottlob Frege)의 수리논리학에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가체마이어 교수는 신학의 학문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순수 철학자이며 틸 교수와 더불어 에를랑겐 학파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데 신학을 깊이 연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진행하는 세미나의 주류는 과학이론을 구조하는 방법론이었다.
   로테르트 교수는 본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며 아헨 공과대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루터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연합신학대학원 때 지원용 교수에게서 루터에 관해 철저하게 교육받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루터 자료를 독일어 원서로 읽는다는 점이다. 로테르트 교수는 어떤 학기에는 틸리히에 관한 세미나도 했는데, 그의 전공이 틸리히의 신학이었다. 그는 틸리히 전기를 쓰기도 했다. 우연인가 행운인가, 내가 틸리히의 역사철학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준비하며 공부했던 게 여기서 맞부닥쳤으니 나로서는 그 세미나에서도 많은 것을 얻었지만, 이해가 쉬웠다.

   비르켄바일 교수는 교육학과 교육철학, 특히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한 분인데, 강의 폭이 넓고, 교육학자로서 신학적 깊이도 상당했다. 내가 교수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학문 세계를 눈여겨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기독교 교육철학은 가톨릭 신학의 바탕에서 이론화되었기에 나로서는 개신교 관점에서 가톨릭의 교육학을 접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큰 수확을 걷은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아헨에서는 나의 공부 습관이 바뀌었다. 튀빙겐에서는 도서관이 나의 서재며 공부방이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내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나는 도서관보다는 집에서 전공 서적을 읽고 간추려가며 공부했다. 도서관에 가면 계속 사람을 만나게 되어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없었다. 내게는 집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되었다. 아헨 아파트의 내 서재는 침실을 겸하고 있다. 창가에 책상을 놓고 왼쪽으로 서가가 있는데, 햇빛도 잘 들어와 방이 퍽 밝았다. 혼자 조용히 독서 하다 쉴 때는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되새기고 장별로 요점을 정리해 머릿속에 담으며 매일 그렇게 공부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때, 한 번에 대출 최대 권수까지 빌려와선 빨리 읽곤 논문에 필요한 부분은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가끔 대출도서 반납 기간을 놓쳐 독촉장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독촉장마저 추억으로 채워져 있다.

박사학위 과정 승인 신청서

   1975년 3월 7일(금)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했는데, 교수님은 제목과 목차를 우선 짜오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라부스의 주저를 몇 번씩 정독했고, 그의 논문들과 소책자들도 완독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있었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논문 구성에 맞는 제목을 정하고 목차를 만들어 갈 계획을 세웠다.
   13일(목) 교수님은 가시는 길에 우리 아파트─교수님 댁은 이곳을 지나 10분 정도 가서 숲속에 있었다─에 들리셔서 라부스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시며,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지 등을 물으시며 빨리 쓰는 것보다 라부스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며, 더욱이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이므로 잘 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말씀하시고 새 학기부터는 부전공 과목에도 관심을 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한 달 후 여름학기(SS 1975)가 시작되었다. 나는 4월 17일(목)에 등록을 마쳤다. 19일(토) 틸 교수는 지나시다가 잠깐 들리셔서 구체적으로 박사학위 논문 과정과 계획, 진행 정도 등을 말씀하시며 신학 교수와 교육학 교수와도 부심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라고 충고해 주셨다. 22일(화) 나는 로테르트 교수가 세미나를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 다가가 잠깐 말씀드릴 게 있다며 “지금 나는 틸 교수님 지도를 받으며 박사 논문을 쓰고 있으며 신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려 하는데 교수님이 부심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정중하게 드리고 내 학력과 그동안 공부해 왔던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내가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질의에도 적극적이었던 인상 때문인지 즉석에서 승낙해 주셨다. 다음날 나는 비르켄바일 교수님에게도 부심 문제를 말씀드렸고 교수님도 승낙해 주셨다. 세미나 참여도와 과제, 학기 말 논문 등이 교수님 두 분께서 나를 평가하는데 크게 작용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두 교수님의 세미나에는 거의 매 학기 참석했다.
   7월 4일(금) 나는 총장본부(Rektoramt)─사실상 대학본부─에 박사학위 과정 승인 신청서(Antrag auf Promotionszulassung)와 철학을 주전공으로, 신학과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하려는데 승인해달라는 신청서(Antrag auf Genehmigung mit Fachverbindung)와 세 교수의 승낙서가 첨부된 서류를 제출했다. 내 청원은 심사를 거쳐 모두 통과되었다는 총장본부 공문을 여름방학 전에 받았다.

나의 학문의 길: 기적이냐 숙명이냐

   나는 가끔 나에게선 기적이 현실이 된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보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들이 내게서, 내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하나씩 실현되었고, 많은 힘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름다운 친구들을 만나고, 성스러운 만남이 나에게서 실현되어 오늘의 나로 이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혼자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어 온종일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지내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초등학교까지만이라도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슴 에이는 나날은 보내셨다. 그런 내 삶이 유학으로까지 이어졌고, 철학의 본고장에서 내가 꿈꾸던 학문을 마음껏 접하며 독립된 유기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대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틸리히의 신학과 철학적 신학에 관해 서남동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것, 연신원 때 지원용 교수에게서 루터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 이종성 교수로부터 신학 체계론에 관한 틀과 흐름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교육학에 관한 관심과 공부, 신과대학에서 기독교교육학(반피득 교수), 대학원에서 종교교육학 원론(김형태 교수, 후에 연동교회 목사로 옮겨감)을 수강하며 배웠던 것, 튀빙겐대학교에서 큄멜 교수의 그리스 철학 원전강독, 볼노우 교수에게서 삶의 철학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독단적 관점으로 해석하여 나와 갈등이 있었지만), 발터 슐츠 교수의 철학사를 빠짐없이 수강(Vorlesung)하며 거의 통달할 정도로 서양철학의 흐름을 익혀둘 수 있게 된 것 등이 아헨 공과대학교에서 세 학과를 연결하고 부전공으로 택하는 데 기대 이상의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숙명론자는 아니지만, 내 삶의 한 과정을 되돌아보며 1961년부터 한 단계씩 걸어 올라갔던 결과가 박사학위 과정에 직접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리 계획하고 준비했던 것처럼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아무런 차질없이 꼭 들어맞는 게 기적 같았고 너무나 신기했다. 이게 내게 주어진 숙명인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