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32)
시간의 여행(32)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2.03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본질과 현상
① Georg Leonhard Rabus(1835-1916) 초상화 ②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1)③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2)④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3)
① Georg Leonhard Rabus(1835-1916) 초상화 ②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1) ③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2) ④ 핵심 내용을 정리한 자료 카드(3)

틸 교수님의 논문지도

   1975년 9월 1일(월) 교수님은 사모님과 오셔서 그간의 라부스 준비 과정을 물으시며, 박사학위 논문 제목과 대강의 목차를 보시고 잘 준비하라고 하셨다. 댁이 이웃이다 보니 오가는 길에 수시로 들리셔서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수학과 철학, 수리논리학을 깊이 공부하신 분이라 그런지 매사에 매우 꼼꼼하시고 빈틈이 없으셨다. 퍽 인자하시면서도 논문 내용이나 형식문제에서는 냉철한 분이셨다. 박사학위 지도교수(Doktorvater)로 본인의 이름이 기재되고 학계에서 본인의 지도 능력이 평가되기 때문에 몹시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사모님은 검소하시고 매우 조용하셨다.

   내가 최종적으로 정한 논문 제목은 『게오르그 레온하드 라부스의 과학개념과 과학건축술』(Wissenschaftsbegriff und Wissenschaftsarchitektonik bei Georg Leonhard Rabus)이었다. 목차는 2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라부스 철학의 체계축조」, 2부는 「라부스의 과학개념과 과학건축술」이었다. 모두 8장으로 짜여있으며, 부록으로 「라부스의 과학체계 도식」이 붙여졌다. 교수님은 제목도 목차도 잘 짜였다며 즉석에서 통과해 주시곤, 최고의 논문을 쓴다는 자세로 차근히 작성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벌써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다. 라부스 저서만 가지고 그의 사상을 해석해가며 학문 구조를 축조한다는 것은 독창적인 동시에 모험적이므로 나로서는 매우 긴장되어 있었지만, 교수님은 내가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으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교수님은 1973년 여름 첫 만남에서―사실상 몇 시간에 걸쳐 치른 면접고사―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 내가 교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주어진 과제를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으리라고 믿으셨던 것 같다. 제자가 부족하면 키워주고 능력이 있으면 고무시켜주어 마음껏 학문의 세계에서 비상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게 사부(師傅)란 점에서 내게서는 틸 교수님이 큰 스승이시며 참된 사부(師父)셨다. 튀빙겐에서 큄멜 교수님의 제자 사랑과 학문 능력에 대한 인정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틸 교수님의 가르침과 지도하시는 것에서도 제자 사랑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 점이 고맙기도 하지만 혹여나 실망을 안겨드리면 어쩌나 라는 걱정도 되어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1976년 첫날 나는 올해는 라부스 논문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1월 8일(목) 11시 45분 정해진 상담시간에 틸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서 올해 나의 라부스 작업계획과 논문작성에 관한 기술(記述)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지난번(작년 9월 1일)에 통과된 내용대로 진행해가며 항별로 차근히 써가라고 하셨다.
   교수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고 이렇게 해가고 있는 과정이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매우 고무되었다. 나는 우선 짜놓은 목차에 따라 차근차근 써가며, 초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전체 목차의 각 장은 수집한 자료들을 몇 번씩 정독하며 내용별로 장과 절 번호까지 표기하여 독서카드에 적어놓고 요점과 참고 자료 쪽수도 적어놓은 상태라 이 자료들을 절별로 분류한 다음 다시 항별로 이어놓고 해석해가며 바로 타자했는데, 이렇게 작업하니 어려움이 없었다.

  

⑤ 박사 논문 속표지(1978년 7월 21일 구두시험 통과)⑥ 박사 논문 목차(1)⑦ 박사 논문 목차(2)⑧ 박사 논문 목차(3)⑨ 박사 논문 목차(4)
⑤ 박사 논문 속표지(1978년 7월 21일 구두시험 통과) ⑥ 박사 논문 목차(1) ⑦ 박사 논문 목차(2) ⑧ 박사 논문 목차(3) ⑨ 박사 논문 목차(4)

교수님은 10일(토) 오후 5시 지나가는 길에 들리셨다. 이틀 전에 연구실에서 만났었는데, 내가 라부스에 관한 저서도 학술논문도 한 편 없는 상황에서 그의 사상의 정수를 발췌하여 체계화하고 독창적으로 해석·비판·평가해갈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걱정되셨던 것 같았다. 교수님은 타자 쳐 놓은 초고 몇 쪽을 읽어보신 후 이렇게 하면 된다며 만족해하셨다. 내용에 대한 해석과 학위 논문 수준의 문장력을 인정하신 것이다. 교수님의 이 한마디가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한 항씩 써가다 내가 해석한 내용이나 비판한 요지가 너무 독단적인지 이 정도면 학술 행위의 정석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는 교수님을 찾아가 의논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수님이 들리셨을 때 그간 쓴 원고를 보여드리며 그 자리에서 이런 문제점을 말씀드리곤 했다.

   2월 9일(월) 오후 1시 30분 교수님은 사모님과 지나는 길에 들리셔 내가 써놓은 새 원고를 읽으시며 몇 가지 지적하시곤, 방법론상의 문제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올해 안에 라부스 논문 초고를 완성할 결심을 하고 신학 세미나와 교육학 세미나에 참석할 때 외에는 온종일, 이 작업에 집중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라부스의 생애와 사상, 원서의 구석구석에 있는 내용까지도 정리되어 있었고, 내 나름의 비판점과 주장에 대한 논거가 정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는 간추려 정리해 놓은 독서카드와 자료 노트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이런 준비 과정과 자료들도 중요하지만, 교수가 제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의욕을 북돋워 주는 것, 이것이 학문에 매진하려는 힘과 용기를 솟아나게 하는 원천이었다. 나는 논문을 잘 쓰겠다는 자세로 집필을 해갔지만, 그 근저에는 나를 신뢰하며 내 실력을 믿고 있는 교수님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리지 않겠다는 의식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볼노우 교수는 자기 자신의 사상과 관점을 제자가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일종의 도제식 교육관으로 제자들을 주형 해가며 자신의 관점을 벗어나는 해석은 용납하지 않으시는 스승이지만, 틸 교수는 미국에서도 교수하셨고, 그분 자신도 프레게에 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명성을 얻었던 터라 제자의 독창성을 키워주며, 자기를 따르라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았다. 매우 개방적인 세계관과 학문의 폭을 넓게 보는 열린 분이었다.

아내의 운전면허

   1976년 2월 아내는 독일 운전면허증을 땄다. 우리 부부의 공통점은 되도록 많은 곳을 가보고 많은 사람과 사귀고 많은 시간을 자연과 지내며 거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가 없던 튀빙겐에서도 기차로, 시외버스로 슈트라스부르크, 콜마르, 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마르부르크 등등 여러 곳을 여행했고, 튀빙겐 근처 크고 작은 도시와 시골, 호수와 강, 숲 등등 무척 많은 곳을 여행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신혼 때는 스페인에 12일간 여행하며 바르셀로나-발렌시아-무르시아-그라니다(알람브라)-세비야-마드리드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도시 건축물들, 무르시아 성당과 구시가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과 정원, 왕실박물관, 성당과 건축물, 문화 유적지 등을 관광하기도 했다. 비키는 우리가 스페인으로 여행 간다는 소식을 듣고 오게 되면 세비야에 꼭 들리라고 긴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서 비키는 스페인어 어학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1박 2일을 함께 보내며 저녁에는 플라멩코 공연장(지하 공간에서 40여 명이 관람함)에도 가서 관람했다. 영화에서 가끔 보곤 하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정열적인 춤을 추는 무용수들, 애조띤 가락이 구슬프게 들리는 노래와 역동성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스낵을 먹으며 한 시간 정도 공연을 보았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는 나보다도 여행을 더 좋아해서 나는 가끔 아내에게 역마살이 붙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갓난아이들, 화초 가꾸기, 크리스마스, 아기자기한 소품 모으는 것, 여행이다.
   1976년 아헨에 거주하는 교민은 유학생을 포함하여 40여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20여 명은 유학생 부인이거나 간호사였고, 몇 명은 초·중등학교 학생이었다. 그 당시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여자 교민은 2명뿐이었다. 이 두 분은 10년 전부터 독일에서 생활하며 직장에 다니고 있는 주부였다. 아내는 가깝게 지내던 몇 분과 운전학원(Fahrschule)에 등록하고 몇 주 이론을 배우며 운전 교습도 받았다. 보통 두세 번 만에 필기시험을 통과하는데 아내는 1차에 합격했고 시내 운전 실기도 1차에 합격했다.
   차를 사야 하는데, 이웃에 사는 권이종이 신문광고에서 자동차 매매광고란을 뒤져 기숙사 학생이 폴크스바겐(VW Käfer)을 판다고 하는데, 같이 가보자고 하여 가서 차주를 만났다. 여학생이었는데, 새 차를 사게 되어 기숙사 공터 한구석에 주차해놨다며 열쇠 구멍에 흘러 들어간 물이 얼어 라이터로 열쇠를 달궈 꽂고 돌려 문을 열었다. 눈이 며칠째 계속 나려 차가 눈으로 덮여있었는데 바로 차 시동이 결렸다. 이 겨울 꽁꽁 언 상태에서 10년 된 고물차가 발동이 걸리는데, 나는 놀랐다. 흰색 차였는데, 겉에도 깨끗했고, 안에도 좋았다. 650 마르크를 주고 차와 증서를 넘겨받고 바로 아내가 운전하며 권이종 차 뒤를 따라 아헨교통국(Verkehrsamt)에 가서 등록을 마쳤다. 1976년 2월 11일(수) 드디어 아내는 차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차는 내 발이 되었다.

  

⑩ 라부스 자료와 학술지 약어표(1) ⑪ 라부스 자료와 학술지 약어표(2)
⑩ 라부스 자료와 학술지 약어표(1) ⑪ 라부스 자료와 학술지 약어표(2)

권이종은 자신도 바쁘고 시간이 부족할 텐데 교민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며 누가 어렵다거나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 도움을 준다. 우리 집과는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지척에 살았는데, 가족끼리 자주 어울렸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는 그 집의 명품 요리였다. 항상 싱글거리는 얼굴과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남의 형편을 헤아려 도와줘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어떻게든지 힘이 되려는 마음씨는 그의 인격이었다.

   권이종은 1979년 아헨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전북대학교 교수, 교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했다. 그는 3년간 「한국청소년개발원장」으로 공직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청소년을 위한 사회교육 체계 형성에 일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