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해 파장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인 측면보다 경제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장사꾼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 중인 영국 런던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비핵화 문제에 관해 얘기하던 중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한반도 미군 주둔을 지속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에 "그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나는 (주둔이든 철수든)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I can go either way)"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발언했다.
주한미군 병력은 2만8500명 수준이고 이들은 평택 험프리스 미 육군 기지, 오산 공군 기지, 대구 통합 기지, 군산 공군 기지 등에 배치돼있다.
여러 기지들 중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가 핵심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세계 각 국에 있는 해외 주둔 미군기지 중 최대 규모다.
6·25전쟁 후 128만평(4.23㎢) 규모로 조성됐던 험프리스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과 함께 435만6800여평(14.40㎢)의 최대 미군 기지로 거듭났다. 자동차를 이용해도 전체를 둘러보려면 40분 이상이 걸린다. 기지 안에 655개 건물이 세워졌고 비행 활주로와 철도차량 기지도 갖춰졌다.
캠프 험프리스 일대는 원래 저지대 논이었다. 미군은 기지 내 침수를 막아야 한다며 3m 높이의 복토(흙덮기) 작업을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 50여개를 메울 흙이 동원됐다.
이 기지는 최대 8만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2022년까지 미군과 가족 등 3만6000여명이 험프리스로 집결한다. 여기에 한국군과 그 가족까지 포함할 경우 거주 인원은 4만3000여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출고일자 2019.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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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캠프 험프리스 전경. 2019.12.04. (사진=주한미군 제공) |
캠프 험프리스에는 용산에 있던 미 8군과 경기 북부에 있던 미 제2보병사단을 비롯해 주한미군 사령부, 한미연합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 등 주한미군 수뇌부가 집결해 있다. 미군 정찰위성이 수집한 각종 대북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최첨단 지휘통제시설도 이곳에 있다.
우리 정부는 캠프 험프리스 조성 공사에 9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캠프 험프리스는 10년의 시간과 10조8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대한민국은 비용의 90% 이상을 부담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캠프 험프리스의 전략적 중요성 역시 매우 크다. 미국은 중국의 확장을 막겠다며 인도, 일본, 호주 등을 주요 거점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기지는 바로 캠프 험프리스다. 캠프 험프리스를 포기한다면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략적인 중요성과 천문학적인 매몰 비용을 알고도 트럼프 대통령은 캠프 험프리스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이란 점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주한미군 철수라는 의외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일반적인 상식이나 미국 관료들의 생각대로라면 주한미군 철수는 가능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어떻게 할지 모른다"며 "트럼프가 어떻게 할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출고일자 2019.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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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평택 험프리스 주한미군기지에 세워진 한미동맹 상징조형물. (국방부 제공) |
우 센터장은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를 주장해왔다"며 "트럼프라면 당장 철수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주한미군 감축을 감행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는 대외 안보 전략을 모르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며 "트럼프가 2017년에 한국에 처음 와서 평택 미군 기지를 방문한 뒤 처음 한 말이 '나는 미국의 일자리를 위해 여기에 왔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미국의 주류 전략가들의 생각과 트럼프의 생각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는 주한미군을 뺄 수 있다"며 "미 의회는 만류할 것이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만류하겠지만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의 설명 대로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 하원의 엘리엇 엥겔 외교위원장과 애덤 스미스 군사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폼페이오와 에스퍼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약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은 한국을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실제로 미군이 주둔하는 주요 목적은 미국의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반대를 극복하고 주한미군을 실제로 감축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는 대외신인도 측면에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현행(2만8500명)에서 3000~4000명 줄이는 정도겠지만 실제로 줄였을 때 미국이 바라보는 한국,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바라보는 한미 동맹이 달라질 수 있다"며 "안보 인식 측면에서 우리에게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