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34)
시간의 여행(34)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2.0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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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질과 현상
아헨 한국 유학학생회에서 받은 박사학위 축하 메달
아헨 한국 유학학생회에서 받은 박사학위 축하 메달

1978년 별은 빛났다

   1977년 내내 나는 논문 초고를 다듬고 첨삭하며 장별로 정리해가고 있었다. 내 계획은 년 말까지 원고를 완성하고, 1978년에는 부전공 과목 시험 준비에 매진할 계획을 세웠다. 라부스 논문 서론을 틸 교수에게 드리고, 1장부터 차근히 다듬어 정리한 원고를 그때마다 교수님께 드렸고, 지난번에 드린 원고의 지적 사항을 고쳐가며 한 장씩 완성해 갔다. 이런 사이클로 작업해가며 여름방학 때 2차 수정본의 재수정을 끝마쳤다. 이제 3차 수정에 들어가면 거의 완성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페이지별로 철자, 인용부호 확인, 인용한 각주의 쪽수 확인, 전체적으로 각주형식 통일, 참고문헌 정리하고 학교 지정 박사학위 논문작성법 규정에 맞도록 총정리하는 것과 저자의 간단한 프로필을 작성하는 일만 남는다. 올리베티 포터블 타자기를 거의 10년 사용하며 혹사하다 보니 자간이 균일하게 찍히지 않고 활자 높낮이도 고르지 않아 새 타자기를 사서 원고 작업을 했다.    연초에 계획했던 대로 년 말에 논문이 완성되었다. 첫 아이 돌잔치를 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모임 등에 참석하며 두어 주 그렇게 보냈다. 논문 원고는 그대로 서랍에 넣어 두었다. 일단 몇 주 논문에서 해방되어 스트레스를 풀고 어수선한 년 말을 보낸 후에 새로운 정신으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내 경우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렇게 글 쓰는 버릇이 있는데, 원고를 접어 두고 잠시 잊고 있다 다시 읽으면 첨삭할 문구나 개념, 다듬어야 할 문장, 표기법상의 문제 같은 것이 쉽게 발견된다.

   세 교수님께 드려야 하는 최종 완성본은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찾아 고치고 다듬었다. 교수님들께 드리기 전에 틸 교수님 허락을 받았다. 교수님은 며칠 후 그대로 몇 부 제본해서 교수님들께 드리고 구두시험에 관해 교수님들과 상의하며 조언을 잘 들으라고 충고해 주셨다. 나는 바로 제본소에 가서 원고 4부 제본을 해서 교수님들 면회시간에 찾아뵙고 논문을 드렸다. 그리고 구두시험 준비를 위한 주제와 시험 범위 등에 관에 문의했다.     로테르테 교수님은 틸리히의 신학과 사상에 관해 테스트한다면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몇 번씩 말씀하셨다. 아니 틸리히의 그 광범위한 신학과 사상을 어떻게….

   비르켄바일 교수는 교육철학과 기독교 교육학에 관해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며, 관련 서적 여러 권을 추천해 주셨다. 이 깐깐하고, 엄격하신 두 분의 성격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다음 주에 찾아갔을 때 교수님들은 내 논문을 읽으셨는데, 아주 좋다며, 다시 한번 구두시험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큰 홍역을 치르겠다는 느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magna cum laude

   여름학기(SS 78)가 시작되고 나는 바로 총장본부(대학본부)에 구비서류를 첨부하여 구두시험(Rigorosum) 신청을 했다. 학교에서는 7월 21일 시험 일자를 정해주며, 전공 1시간, 부전공 각 30분씩 치른다고 서신으로 통보해 주었다. 참석자는 학과장, 전공과 부전공 교수, 심사관 교수 1명이 합석하고 조교 한 명이 방문 옆에 앉아 교수님들을 돕고 있었다.
   시험장 밖 의자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조교가 들어오란다. 교수님들과 맞은편에 착석하자, 학과장이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긴장을 풀고 심사원들에게 아는 대로만 대답하면 된다며 주의 사항도 일러주었다. 하지만 나는 6개월간 부전공 시험과목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읽어가며 요점 정리하여 암기하고 있었고, 그 내용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어 학과장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험 전까지 나는 전공 시험보다는 부전공 시험에 몹시 긴장했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주심 교수가 질문을 시작했다. 철학 문제에 대하여 현대철학의 몇 사조에 관한 진술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이유와 그런 철학의 흐름의 원천을 어디서부터 보아야 하느냐, 그 이유는 무엇이냐 등등 정말 예상 밖의 질문들이었다. 나는 이때처럼 튀빙겐대학교 슐츠 교수가 고마울 수가 없었다. 슐츠 교수 철학사 강의를 몇 번씩 반복해서 들으며 큰 흐름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 그대로 적중했다. 이어서 라부스의 철학이 19세기 말의 독일 철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의 철학과 맞서는 경우의 철학을 진술하라는 것이 큰 주제였다. 어떻게 보면 라부스에 관한 박사 논문 요지를 철학사적 관점으로 체계화하여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6가지 정도의 시험이 치러졌는데, 나는 질문마다 주저함이 없이 대답했고, 교수님은 반박이나 그런 대답의 오류 같은 것은 지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나는 아, 잘하고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밖에서 대기할 때 긴장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예정된 1시간이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잠시 쉬고 신학 교수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틸리히 신학에 관한 질문일 줄 알고 철저히 조직신학 3권을 비롯하여 몇 권을 다시 읽었었는데, 질문은 엉뚱하게 틸리히가 20세기 신학의 흐름에서 독자적인 신학으로 독창성을 보였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며, 그 영향에 관해 진술하며 그 논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도 내가 틸리히의 역사철학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쓰며 그의 영향에 관해 여러 가지 지적했던 적이 있고, 틸리히 전기를 감명 깊게 읽어 두었던 적이 있어 곧바로 대답했다. 교수님은 신학계 일각에서는 틸리히를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보는데 그의 신학의 주제가 현대 개신교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요구하셨다. 나는 그 문제 역시, 그의 신정통주의의 관점과 극보수주의 신학의 대립 상황을 언급하며 그의 신학이 구체적으로 교회 예식이나 신앙 노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신학은 20세기 개신교의 큰 흐름을 이루어갔다며 구체적 사례를 외국교회의 현상과 급변하는 신학의 운동성과 관련시켜가며 대답했다. 시카고 종교학파와 하버드의 사례까지도 들어가며 차근차근 대답했다.

   신학 시험을 마치고 교육철학 시험이 시작되었다. 첫 질문은 현대 교육철학이 교육현장에서 구현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가부의 논거를 진술하라는 것이다. 이건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는 독일 경우 교육학의 철학화 과정은 현재 진행 중이며, 교육학이 철학에서 분리되어 독립학문이 된 것이 19세기 말엽이므로 교육철학은 교육의 철학함, 교육함의 철학으로 서서히 형성되어 가고 있는 도상의 학문’이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의 기대했던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 대답에 질문을 이어 하지 않고 다음번 질문을 했다.

   기독교 교육학의 학문성을 논하고, 기독교교육철학의 본질에 관해 역사적 논거를 대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독교 교육학에 접근할 때 늘 ‘기독교와 교육’의 정체성과 개성의 합류를 염두에 두고 그 학문성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관점에서 대답을 시작했다. ‘기독교 교육학이란 용어는 최근에 쓰기 시작한 것이며 학문(Wissenschaft)으로서의 기독교교육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기독교교육」이라는 과목명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교육의 edcare, erziehen, bilden, ausbilden 등의 개념을 학문화하려는 교육학자들의 지속적 이론화 작업으로 교육의 학문(Wissenschaft der Erziehung)이라는, 즉 「교육학」이라는 새 개념이 생겨났고, 기독교+교육+학문의 합성어로 「기독교 교육학」이 탄생했다. 그리고 기독교 교육학의 철학화를 통해 「기독교교육철학」이 생겨났는데, 아직 기독교 교육학계에서 기독교교육철학을 학과목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대답했다. 30분이 넘었다. 교육학 교수님과는 질문-대답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논쟁한 것이 되었다. 나는 다분히 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교육을 보았고, 교수님은 가톨릭의 교육 개념으로 기독교교육에 접근하고 있어 이렇게 이견이 충돌한 것이다.

   학과장이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여 조교가 문을 열어 내보냈다. 나는 밖에서 대기하며 내 대답이 교수님들의 기대했던 대답인지, 특히 기독교 교육학 교수님의 질문에 내가 너무 저돌적으로―기독교교육철학에 관한 질문에서― 내 주장을 역설했던 것은 아닌지, 그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5분쯤 지나 조교가 들어오라고 하여 문안으로 들어서는데, 교수님들이 모두 일어서서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모두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시험 결과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재시험을 치르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학과장이 시험 결과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설명해주었다. 논문 점수는 최고 점수를 받았고, 구두시험(mündliche Prüfung)은 우수하게 통과되었으며, 박사 논문 종합점수(das Gesamturteil)는 “Sehr gut”이라며, 아시아권 학생으로 박사학위를 이렇게 우수하게 마친 경우는 드물다며 다시 한번 축하의 말을 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학위증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박사 칭호를 써서는 안 되고, 그 이후부터 사용해야 한다는 당부 말씀도 해 주었다. 이렇게 독일에서의 내 꿈은 이루어졌다. 그 순간 나는 힘이 빠지며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1978년 8월 10일 자로 등록된 철학박사(Dr. phil.) 학위증을 등기 우편으로 받았다. 열흘 후 둘째 딸이 태어났다. 나는 그 아이한테, “너도 복덩이구나. 아빠 박사학위도 받게 되고….”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첫딸이 태어나며 박사후보생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둘째 딸은 박사학위를 받게 하며 태어났으니 효녀들이라고 말하며 서로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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