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38)
시간의 여행(38)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2.2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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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철학과 신학, 그 여정의 교수
① 교환교수 사택(421 McCormick Street, Dubuque)② 학생들과 기념사진(1985. 4. 20.): 앞줄 오른쪽이 윤삼열, 둘째 줄 오른쪽이 칼(E. D. Kahl) ③ 「철학적 신학」 세미나 수업 사진(1985. 4. 20.)
① 교환교수 사택(421 McCormick Street, Dubuque)② 학생들과 기념사진(1985. 4. 20.): 앞줄 오른쪽이 윤삼열, 둘째 줄 오른쪽이 칼(E. D. Kahl) ③ 「철학적 신학」 세미나 수업 사진(1985. 4. 20.)

더뷰크대학교 신학대학 교환교수

   1980년 교수 청빙을 시작으로 매년 두세 명씩 새로 교수들이 채용되었다. 본교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마친 동문이 대다수였다. 삼사 년 지나면서 10여 여명의 교수가 증원되었고 건물도 신축되면서 학교는 빠르게 발전했다. 학사제도나 학교 규정도 젊은 교수들이 안을 내고 청원하여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출판부에서는 학술연구비를 지원하며 교수의 학술도서 출판을 도왔고 교수의 연구를 돕기 위하여 학술 논문 연구비 신청을 받아 지원하고 완성된 논문을 수합하여 교수연구논문집 『교회와 신학』에 게재하며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 당시 신학대학 가운데 연구 학기 제도가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신학대 교수들은 연구 학기 때마다 신학의 최근 동향을 섭렵하기 위하여 해외 대학으로 떠나거나 전공 서적 집필에 박차를 가하며 그 기간을 알차게 보내는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장신대는 1984년에 신학대학 가운데 제일 먼저 연구 학기 제도를 시작했다. 6학기 이상 교수해야 신청할 수 있도록 명문화되어있었는데 9학기째 강의하고 있던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1985년 2월 14일(목) 나는 미국 더뷰크대학교 신학대학(The University of Dubuque Theological Seminary)과 장신대 간에 맺은 교환교수협정의 첫 번째 교수로 가게 되었다. 김포 공항으로 가려는 찰나에 박창환 학장의 전화를 받았는데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학교사태가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어 교무처장이 사퇴했다며 내게 교무처장으로 일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더뷰크신학대학과 여러 차례 서신과 전화로 연락했고, 그곳 초청장으로 비자도 받고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내 과목 수강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차후 교환교수 프로그램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러면 가서 이번 학기 마치는 대로 곧바로 귀국하라고 하여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했다.

   도쿄를 거쳐 시카고에 도착해서, 국내선으로 더뷰크 공항에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땅은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트랩에서 내리자 듀바(Arlo Duba) 학장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 학생 한 명도 그 곁에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 학생은 윤삼열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윤응오 목사 아들이라고 했다. “교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학장님과 마중 나왔어요.”라고 인사말을 하곤 짐을 찾아 학장 차에 실었다.

   교환교수 사택은 2층으로 된 단독 주택이었다. 식사는 학교 식당에 비치해 놓은 교수명단에 본인이 사인하면 되었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철학적 신학」(3학점) 세미나 한 과목을 맡겼다. 그 조건으로 내겐 숙식이 무료로 제공된 것이다. 내게 청구되는 것은 전화 요금뿐이었다. 학생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내게 와서 배웠는데, 행사가 있을 때는 시간 조정을 해 가며 수업했다.

   이들 가운데 칼(Edward Dan Kahl)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1년 전에 한남대에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와서 영어를 가르치다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는데 귀국해서도 전화로 연락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이 두 사람은 한국에서부터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내 방 침대 옆 협탁에 전화기가 있는데, 칼은 한 주일에 한두 번 늦은 저녁에 내게 와서 잠깐 전화해도 되느냐고 묻곤 잠깐이 3분, 4분으로 이어지더니 며칠 지나서부터는 10분이 넘게 통화하곤 했다. 그러고 나선 그 여학생과 있었던 연애사를 이야기하며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자신의 감정과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순진하여―대도시 출신이 아니리라는 생각에―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털사(Tulsa)라고 한다. 전화 명의자는 내 이름으로 되어있어 요금은 모두 내게 청구되었다.

   나는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더뷰크 대학도서관이나 바르트부르크 신학대학(Wartburg Theological Seminary)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보충하며 『문화종교학』 집필에 착수했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가 「장신학술총서 4」(1987)로 출판되었다.

④ 더뷰크대학교 총장 부부와 기념사진(1985. 3. 1.): 총장공관 초대 만찬 때 ⑤ 듀바 학장 부부⑥ 템플턴 경에 명예박사 수여식(1985. 4. 22.) ⑦ 템플턴 경(사진 왼쪽)과 피터슨 총장 ⑧ 총장 비서(안경 낀 여자)와 템플턴 부인
④ 더뷰크대학교 총장 부부와 기념사진(1985. 3. 1.): 총장공관 초대 만찬 때 ⑤ 듀바 학장 부부⑥ 템플턴 경에 명예박사 수여식(1985. 4. 22.) ⑦ 템플턴 경(사진 왼쪽)과 피터슨 총장 ⑧ 총장 비서(안경 낀 여자)와 템플턴 부인

더뷰크에서 만난 사람들

   더뷰크에 도착하고 한 주일 후인 2월 21일(목) 듀바 학장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7시에 삼열이 부부와 같이 갔는데 식탁 세팅이 예쁘게 되어있었다. 정성스레 차린 음식도 맛있었지만, 사모님의 친절함이 손님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 집안 분위기도 퍽 아늑했다. 거실 한쪽 벽에 매달아 놓은 여러 종류 악기와 곳곳에 놓여있는 장식품들, 가구들은 고풍스러운 작품 같았다. 이 가정의 문화적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학장님은 사택이 맘에 드느냐, 생활하는 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은 없느냐 등등 몇 가지 묻고는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는데 미국 신학과는 어떤 점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미국의 최근 신학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로 이런 내용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한국교회의 신앙 전통 같은 것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장신대에 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고 있었는데 두 학교 간에 교환교수 협정을 맺으며 장신대가 어떤 신학대학인지 알아본 듯하다. 헤어질 때 내일 오후 3시 30분에 회의실(Urbach Launge)에서 정기 교수회가 있는데, 꼭 참석하라고 했다.

   한 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3학점짜리 세미나는 내겐 매우 매력적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도 저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순수함과 자유로운 정신은 그 자체로서 시골 목동의 행태를 연상시키곤 했다. 세미나 준비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지만 한 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미국 젊은이들의 삶의 양식과 의식 상태를 익힐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수확이었다. 수업을 위해 주제별로 수집했던 자료들도 훗날 내가 논문을 쓰거나 저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⑨ ‘골프 & 컨트리클럽’(Golf & Country Club)에 초대된 인사들 ⑩ 맥킴(Donald McKim) 교수와 부인 린다죠(Lindajo) ⑪ 더뷰크신학대학 자문회의 때 힐리 교수(Robert M. Healey) ⑫ 아치발드 교수 초대를 받고 집 앞에서(1985. 4. 26.): 오른쪽 드르몽 교수 부부 ⑬ 대화와 친교 ⑭ 드르몽 부인과 아치발드 교수
⑨ ‘골프 & 컨트리클럽’(Golf & Country Club)에 초대된 인사들 ⑩ 맥킴(Donald McKim) 교수와 부인 린다죠(Lindajo) ⑪ 더뷰크신학대학 자문회의 때 힐리 교수(Robert M. Healey) ⑫ 아치발드 교수 초대를 받고 집 앞에서(1985. 4. 26.): 오른쪽 드르몽 교수 부부 ⑬ 대화와 친교 ⑭ 드르몽 부인과 아치발드 교수

3월 1일(금) 오후 7시 30분에 총장 본관에서 만찬이 있었다. 듀바 학장이 부인을 대동하고 나를 데리러 왔다. 피터슨(Walter F. Peterson) 총장 부부가 현관에서 손님들을 맞았는데 총장은 인자한 영감님 같은 분이었다. 아주 조용하고 얼굴에 약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총장이 인사말을 하고 이어서 새 이사 몇 분과 유지들을 소개했다. 뒤이어 듀바 학장이 나를 이번 학기에 한국에서 온 교환교수라고 소개했고, 사무처장인듯한 분이 강사 몇 분을 소개했다. 참석하고 보니 나만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었다. 나는 만찬이 진행되는 내내 이곳이 이 정도로 유색인종에 대하여 배타적인지, 혹은 오늘의 이 경우는 우연이었는지 참 궁금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에는 가끔 집 주변을 산책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한가한 시간은 잠시뿐, 계속 만남이 이어졌다. 계획에도 없었던 모임에 초대되는 일도 많았다. 나는 한 학기 강의하게 되는 교환교수일 뿐인데 학교에서는 교내 모든 행사에 초대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4월 22일(월) 더뷰크대학교는 템플턴(John Marks Templeton)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명예총장으로 추대하는 예식을 치렀다. 저녁 7시에 축하연이 더뷰크 ‘골프 & 컨트리클럽’(Golf & Country Club) 연회장에서 열렸다. 학장 부부가 나를 데리러 와서 동행했다. 나도 모르는데 초대 인사명단에 내 이름도 올려있었다.

   4월 24일(수)에는 더뷰크신학대학 자문회의가 오크룸에서 열렸다. 나는 정식 교직원이 아니기에 참석하는 게 쑥스럽고 회의 안건과 내용도 나와는 상관없어 참석을 안 하려고 했는데, 학장은 꼭 참석하라며 함께 어울리도록 배려해 주었다. 남의 잔치에 객이 끼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회의 후에는 함께 저녁을 하는 게 전통같이 되어있었다. 교수와 자문위원 간에 친교의 시간이었다.
  

⑮ 스위스 밸리 공원에서 피크닉 때 아치발드 교수와(1985. 5. 7.) ⑯ 피크닉 사진 ⑰ 아치발드 교수 연구실에서(1985. 5. 8.)

26일 (금) 오후 3시 30분에는 회의실에서 이번 학기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이웃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신학대학과 공동으로 개최하는데, 이번 학기에는 더뷰크 신학대학이 주체가 되었다. 장신대에서도 개강 교수회 때 교수들이 논문 발표를 하는 데 같은 형식이었다.

   저녁에는 아치발드(Helen Allan Archibald) 교수가 초대했는데 드르몽(Richard Henry Drummond) 교수 부부는 이미 와 있었다. 집은 약간 경사진 초원 위에 있었다. 언덕 아래에서 보면 3층인데 현관이 있는 도로변에서 보면 1층이었다. 지하층이 서재였다. 아치발드 교수는 기독교 교육학 교수였다. 여성학에도 관심을 조금 내비쳤다. 그래서 여성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본인의 주 관심사는 종교교육 이론과 교수-학습 방법론이라며 화제를 돌렸다. 교수는 코우(G. A. Coe)의 종교교육 이론으로 197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드르몽 교수와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오랫동안 일본에 선교사로 있어 한국 기독교에 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곳 학제에 따르면 5월 첫 주일이 사실상 학기 말이었다. 5월 7일(화)에는 학기를 마치며 교직원과 가족들이 더뷰크 남서쪽에 있는 스위스 밸리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교직원 상호 간에 간격을 허물고 단합하려는 성격이 짙었는데 매 학기 말에 하루를 피크닉 날로 정해 모이는 게 전통이란다.

   아치발드 교수는 내 곁에 자리를 잡아 놓곤 가서 음식을 갖고 와서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일 시간이 되냐고 묻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자기 연구실에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고 성적 기록표도 제출했으므로 시간이 있었다. 교수님의 제안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음 날 연구실에 찾아갔더니 기다리고 있었다. 4월에 댁에서 식사 때는 여러 명이 있어 피상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시간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연구 과정 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냈다. 나는 혹시 장신대에 교환교수로 올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즉답을 피했다.

  

⑱ 사은회 사진(1985. 5. 9.) ⑲ 사은회를 마치고 아치발드 교수와 기념사진(1985. 5. 9.) ⑳ 졸업식 후에 피터슨 총장과 기념사진(1985. 5. 11.)

5월 9일(목)은 더뷰크대학교 각 학과 졸업생들이 교수 부부를 초대하여 사은회를 베풀었다. 쥘리앵 인(Julien Inn)에서 차린 잔치에 나도 초대되었는데 졸업생 중에는 내게 배운 학생도 여러 명 있었다. 한 학기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게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데 내 마음이 뭉클했다. 랑거(L. A. Langer), 버지스(P. Burgess), 컬버(C. Culver)는 임지가 정해져 곧 이곳을 떠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의 만남과 가르침이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남을 거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5월 11일(토) 졸업식장에서 다시 만나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가끔 더뷰크 시절, 세미나 수업 시간이 생각날 때면 저들이 그 후에 어떤 목회자가 되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저들도 이미 은퇴할 나이일 텐데.

   5월 13일(월)에는 이번 학기 마지막 교수회의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를 교환교수로 초대한 학교와 듀바 학장께 감사한다는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교수들과 교제의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 등이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는 말도 했다. 내가 체류했던 3개월은 짧은 듯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며 즐겁고 유익하게 지낸 시간이었다.

   더뷰크 신학대학 교수 분위기는 보수적이면서 매우 조용했다. 학생들도 순수하고 맑았다. 그 당시에는 해방신학이나 과격한 사회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불길처럼 일어나던 때인데, 이곳의 분위기는 별천지 같았다.
   15일 나는 이곳을 떠나 시카고에서 이틀을 머물고 17일 워싱턴으로 출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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