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39)
시간의 여행(39)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2.3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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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철학과 신학, 그 여정의 교수
① 부부기숙사에서 윤삼열, 마르타, 미리암(1985. 2. 15.) ② 메리휴(Richard & Shirley Marrihew) 부부(1985. 2. 15.) ③ 더뷰크 제일장로교회에서 아침 예배 후(1985. 2. 17.) ④ 더뷰크대학교 본관 앞(1985. 2. 18.)
① 부부기숙사에서 윤삼열, 마르타, 미리암(1985. 2. 15.) ② 메리휴(Richard & Shirley Marrihew) 부부(1985. 2. 15.) ③ 더뷰크 제일장로교회에서 아침 예배 후(1985. 2. 17.) ④ 더뷰크대학교 본관 앞(1985. 2. 18.)

윤삼열과 마르타

   윤삼열은 내가 있는 곳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부부용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그의 부친 윤응오 목사는 앞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연합신학대학원 때 내 룸메이트가 되어 한 학기 동안 아주 친하게 지냈다. 우리 집에 초대하여 대접도 해드리고, 방학 땐 재일 교포 김신환 목사님과 여행 중에 들러 같이 지내기도 했던 퍽 친한 사이였다. 이제는 내가 그분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며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세상은 베푸는 만큼 되돌려받으며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삼열 아내(Martha, 윤경임)는 가끔 저녁에 같이 식사하자며 데리러 온다. 한 주일에 한 번 정도 장 보러 시내로 내려가는 데 갈 때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하여 나도 그때마다 필요한 식품을 사야 해서 동행하고 점심때는 고마운 마음을 식사로 표하곤 했다.
   나는 여기에 있는 동안 거의 매주 위스콘신주 리위(Rewey)에 있는 작은 농촌교회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삼열이가 매주 설교를 했다. 화창한 날에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몇 곳을 드라이브하며 주말을 보내곤 했다.

   그 당시 미국 농촌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빠져나가 노인과 유소년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이곳의 사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회에는 강대상과 낡은 피아노 한 대, 8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장의자 십여 개와 석유 난로 하나만 놓여있었다. 매주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20명 내외의 교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성가대가 없어 삼열이 부부가 찬송가 한 곡씩을 부르곤 했다. 그 분위기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원 수십 명의 세련된 찬양이 있는 대형교회보다 오히려 경건했다.

⑤ 위스콘신주 리위의 농촌교회에서 예배 후 기념사진(1985. 3. 10.) ⑥ 교환교수 사택에서 케리휴 가족과 삼열 부부(1985. 3. 30.) ⑦ 교환교수 사택에서(1985. 3. 30.)
⑤ 위스콘신주 리위의 농촌교회에서 예배 후 기념사진(1985. 3. 10.) ⑥ 교환교수 사택에서 케리휴 가족과 삼열 부부(1985. 3. 30.) ⑦ 교환교수 사택에서(1985. 3. 30.) ⑧ 마르타와 첫딸 미리암(1985. 4. 26.)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롤(Rolle) 부부가 자기 집에서 점심 식사하자며 즉석에서 초대했다. 집에 들어가니 식탁에 음식이 준비되어있었다. 검소한 식사로 차려진 식탁이었다. 깜짝 초대에 궁금하여 오늘(3월 17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함께 식사하고 싶어 갑자기 준비한 것이란다. 매주 보면 이 부부는 아이 두 명과 늘 정해진 좌석에 앉아 예배를 드리곤 하는데 교회 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부인 조이(Joy)는 매주 피아노 반주를 했다. 여기에서는 그 부인이 유일한 피아니스트인 셈이다.

   삼열이 부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야 지금도 변함없지만, 특히 마르타의 경우 신혼에 돌이 되어오는 아기(Miriam)까지 돌봐야 하는데 시아버지 친구의 잔일에 신경까지 써야 하는 그 마음씨는 절로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참 싹싹하고,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여인이었다.    더뷰크는 위스콘신주와 일리노이주와 접하고 있는 미국 중북부 도시로서 1980년대 당시 그 주변 인구까지 합쳐 6만 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미시시피강 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수차(水車)로 움직이는 기선(유람선)이 몇 대 다니고 있을 뿐 조용하고 적막하기도 한 곳이다. 지역의 영향인지 3월에도 가끔 눈이 내렸다.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자주 내렸다고 한다. 그런 날에는 이 부부가 저녁을 먹고 내게 놀러 와서 1층 응접실 벽난로에 불을 지펴놓고 불가에서 다과를 들며 지내곤 했다. 어느 날에는 밤이 아주 깊을 때까지 환담하며 보내기도 했다.

⑧ 마르타와 첫딸 미리암(1985. 4. 26.) ⑨ 아이오와 시티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 후 ⑩ 메리휴 집에서(1985. 5. 4.)
⑨ 아이오와 시티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 후 ⑩ 메리휴 집에서(1985. 5. 4.) ⑪ 1985년 5월 어느 날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한국 학생 3명과 뒷줄 왼쪽 칼)

삼열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매우 사교적이었다. 내가 그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더뷰크에 있는 한국 의사에게 내 이야기를 하여 3월 2일(토) 그분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집은 최신식 건축 양식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시카고 예술가가 설계한 집이라고 한다. 약간 언덕 위에 지어졌는데 응접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정원 앞의 널게 펼쳐져 있는 잔디밭과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분은 한국 전쟁 후에 미군을 따라와서 의대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오래 있다 제대하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부인은 스웨덴 분인데 특별음식으로 스웨덴 요리를 마련해 대접해주었다.

   어느 주말에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분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교포 부부 두 가정도 와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모두 한국 정세, 한국의 학생 소요 사태 등을 물으며 걱정을 많이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밤이 깊었다. 부인들도 직장에 나가는데 주말이라 여유가 있단다.
   3월 마지막 토요일 늦은 저녁에 삼열이 부부가 메리휴(Merrihew) 부부와 예고도 없이 놀러 왔다. 이 부부도 더뷰크(Richie Dr)에 사는데 삼열이 집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날이 쌀쌀하여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환담하며 지내기도 했다. 남편은 미소만 약간 지을 뿐 거의 말이 없었고 부인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퍽 친절했다. 헤어질 때 5월 4일(토)에 집으로 초대하겠다며 꼭 오라는 말을 남기도 떠났다.
   4월 1일(월)에는 아이오와 시티에서 목회하는 배현찬 목사 가족이 일박이일 일정으로 방문하여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지내고 다음 날 돌아갔다. 배 목사는 삼열이를 통해 내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알고 문안 전화를 자주 하며 선배 대접을 깍듯이 했다. 주일 설교를 부탁하여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과 식사하며 교제를 나눈 적도 있는데 삼열이와 동기생으로 나와는 16년 선후배 사이다.

⑪ 1985년 5월 어느 날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한국 학생 3명과 뒷줄 왼쪽 칼)  ⑫ 1937년 9월 14일 개통된 갑문과 댐(Lock&Dam#11) (1985. 5. 10.) 사진 #1. ⑬ 갑문과 댐 사진과 선박박물관 사진 #2. ⑭ 수차 유람선 상에서(1985월 5월)
⑫ 1937년 9월 14일 개통된 갑문과 댐(Lock&Dam#11) (1985. 5. 10.) 사진 #1. ⑬ 갑문과 댐 사진과 선박박물관 사진 #2. ⑭ 수차 유람선 상에서(1985월 5월) ⑮ 유람선 선미의 수차

배 목사는 더뷰크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안수받은 후에 곧바로 한인연합감리교회를 개척하여 크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그의 걸어온 길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에 정착하며 겪은 고생담을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밤 3시경에 경찰 여러 명이 총을 겨냥하며 들이닥쳐 학생비자로 와서 공부를 마치고 일하고 있다며 가택을 수색하고 여권을 압수하며 소동을 벌여 임신 8개월째 되는 부인이 공포에 떨다 졸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내년에는 미국 동북부로 가려고 하는데 교인들이 놔주질 않으려고 한다며 젊었을 때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 성공했으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리치먼드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5월 11일(토)에 윤삼열은 신대원(M.A.R, 종교학)을 졸업했다. 아들 졸업식에 참석하러 윤 목사가 몇 주 전에 이곳에 왔다. 나는 졸업식에도 참석했고 다음 날에는 이 가정을 시내 음식점에 초대하여 축하연을 베풀었다.

   

⑭ 수차 유람선 상에서(1985월 5월) ⑮ 유람선 선미의 수차 ⑯ 히드만(Hidmann) 목사님 댁에서 점심 초대받고 집 앞에서(1985. 5. 10.) ⑰ 윤삼열 졸업(1985. 5. 11.)
⑯ 히드만(Hidmann) 목사님 댁에서 점심 초대받고 집 앞에서(1985. 5. 10.) ⑰ 윤삼열 졸업(1985. 5. 11.) ⑱ 시카고 젤다 메리휴 집에서(1985. 5. 15.) ⑲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정에서(1985. 5. 16.) ⑳ 시카고신학대학 도서관에서 만난 교수와 딸 사진(1985. 5. 17.)

윤 목사가 이곳에 있는 동안 우리는 몇 군데 같이 다니며 관광을 했고, 미시시피강에서 수차 기선도 타고 갑문과 독(Lock&Dam #11)을 지나며 강변 경치도 감상하고 사람들도 만났다. 이러다 보니 윤 목사는 옛날 같이 지내던 때가 그리웠는지 아들 가족이 보스턴으로 옮겨가려고 하는데 나도 같이 가자고 몇 번이고 간청했다. 나는 시카고까지만 동행하고 거기서 헤어지자며 정중히 사양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이사 가는데 끼어가는 모양새도 안 좋고, 나로서는 워싱턴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거기에서 곧바로 귀국할 예정으로 비행기 표까지 그렇게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워싱턴행 비행기는 시카고에서 직항이 있으므로 5월 15일(수) 오전 7시 30분 우리는 시카고로 떠났다. 시카고에는 메리휴의 딸 젤다(Zelda) 집이 있는데, 메리휴 부부가 미리 연락해 두어 우리는 그곳에 머물며 첫날에는 시어즈 타워와 자연사박물관(Field Museum), 둘째 날에는 노스웨스턴대학을 찾아가 캠퍼스 구경을 하고 오후에는 시카고 시내와 미시간호숫가를 드라이브며 보냈다. 17일에는 시카고 대학 캠퍼스와 구내 서점을 둘러보고 신학도서관에 들렀는데 어느 분이 무슨 책을 찾느냐며 본인은 교수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곤 헤어졌다. 그날 오후 4시 30분 나는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다.
더뷰크에서의 90일은 많은 만남과 사귐, 즐거운 추억과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진, 내 생애에 아주 깊이 인상된 역사가 되었다.

   윤 목사와의 인연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그다음 해에 윤 목사 딸이 장신대 교회 음악과에 입학해서 내게서 몇 과목 배웠다. 어느 날은 윤 목사가 서울에 친척 결혼식에 올라왔다가 내 생각이 난다며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들러 환담을 하며 옛 우정을 나누다 밤늦게 돌아간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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