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41)
시간의 여행(41)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1.0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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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2학년도 학생수첩』. ②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4학년도 학생수첩』, p. 26. ③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4학년도 학생수첩』, p. 27.
①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2학년도 학생수첩』. ②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4학년도 학생수첩』, p. 26. ③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1984학년도 학생수첩』, p. 27.

문교부와 갈등

   장신대 이사회에서는 신입생 모집인원을 어떤 기준에 따라 증원하는지 알 수 없지만 1982학년도 학칙 제1장 총칙 제2조에 명시된 입학정원을 보면(괄호 안 숫자는 졸업정원) 신학과 234(졸업 180), 기독교교육과(이하 “기교과”) 52(40), 교회음악과(이하 “교음과”) 52(40)로 기재되어 있었다.[1982학년도 학생수첩,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참조]. 1983학년도 학칙에도 모집인원과 졸업정원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2년간 이 제도를 시행해 봤으나 폐단이 커서 1984년부터는 졸업정원을 폐지하고 학교가 자율적으로 모집정원을 정하도록 문교부가 정책을 환원했다. 하지만 장신대는 오히려 1984학년도 학칙 제85조 13항에 “본 개정안은 1984년 2월 15일부터 시행한다.”라고 명문화했다. <별표 1-1> ‘1984학년도 졸업정원’ 도표에서 <별표 1-4> ‘1987학년도 졸업정원’ 도표에 이르기까지 정원 338명을 모집하여 260명 졸업시킨다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었다.[1984학년도 학생수첩, 장로회신학대학 학칙 참조]. 1982학년도와 1983학년도에는 학칙 변경 없이 모집인원을 매년 338명씩 뽑은 것이다.

   신입생 338명(신학과 234명, 기교과 52명, 교음과 52명)을 교육한다는 것은 장신대 교육 여건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강의실이 너무 좁아 학생들이 강의실 교단 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기도 하고, 앞뒤 출입문 밖에 서서 입석에서 공연 구경하듯 수강 아닌 청강을 해야 하니 학생들의 불만이 교내 사태로 폭발했다.
   기교과와 음악과 교수들로서 전공 필수과목과 선택 과목만 담당하는 경우는 이런 어려운 교육 현장을 체험할 수 없어 크게 불편함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1학년 교양 필수과목이나 전공 필수과목을 담당해야 하는 교수들의 경우는 주어진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내 경우 신입생 전체에게 교양 필수 두 과목, 그리고 신학과 신입생에게 전공 필수 한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데, 아무리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338명이면 최소 10학급으로 나눠 수업해야 하지만 학교에서는 120명 정도 수업 가능한 교실에 신학과 234명을 가르치도록 시간표와 강의실 배정을 해 놓았다. 기교과와 교음과는 합반하여 104명을 한 강의실에서 가르치도록 했다. 천신만고 끝에 학내 사태를 겨우 잠재웠는데 학생들의 불만이 언제 또다시 폭발할지 위태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교수들의 불만은 더욱더 심했다. 시간 강사를 채용하면 그에 따라 지출되는 강사료가 막대함으로 교수 몇 명에게 수십 명, 수백 명을 한 강의실에서 한 번에 가르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수업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게 그 당시 교내형편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자 박 학장은 나를 불러 1986년 신학과 신입생을 100명만 뽑으라고 지시했다. 교무과장은 ‘신학과 모집인원 234명’이라고 인쇄된 입학 요강을 보고 많이 지원했는데 입학정원을 이렇게 줄여도 되는지 걱정하였다. 하지만 교무처로서는 결정된 사안을 밀고 나갈 수밖에 다른 묘책이 없었다.
   1986년 2월 10일(월) 오후 1시, 학부 신입생 입학사정회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나는 올해부터 신학과 신입생을 100명만 뽑기로 했다며 그 취지를 설명했고, 곧이어 과장과 직원이 사정용 서류 묶음을 각 교수에게 돌렸다.

   합격자 발표가 나면 불합격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문교부와 학교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예상대로 바로 그다음 날(2월 11일) 문교부에서 교무처장을 들어오라고 하여 갔더니 교육국장인지 한 자가 골이 잔뜩 나서 학교가 입학정원을 마음대로 조정하면 되느냐, 지금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며 말투가 거칠었다. 나는 학교 교육시설이 부족하여 부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상황 설명을 곁들여 이해시키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 돌아와서 학장에게 경위를 설명하며, 예상되는 채찍에 미리 잘 대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저녁에 긴급교수회를 열어 문제를 보고하고 의견을 모았는데, 끝까지 싸우며 나가자는 강경파와 문교부와 맞서봐야 득이 될 게 없으니 ‘앞으로는 문교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라고 하며 이 위기를 넘기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만일 강하게 나오면 학교는 거의 마비되고 모든 비정규 과정은 그날로 폐지될 뿐만 아니라 불법 운영으로 고발당하고, 학교에 대한 지원과 평가도 최하위 불량 학교로 공지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정규 과정 학생 수백 명이 지금까지 교육받았으니 학교가 졸업을 책임지라고 거세게 항의할 것이고, 그동안 낸 입학금과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기도 할 텐데, 그뿐만 아니라 신학과에 지원했다 탈락한 학생 134명과 학부모들이 문교부와 학교에 격하게 항의하며 문제가 커질 텐데 이 지경이 되면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몇몇 신문에서 대다수 대학이 정원을 늘리려고 문교부에 로비하고, 청강생을 뽑으며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데, 장신대처럼 교육다운 교육을 하려고 주어진 정원마저도 스스로 줄여 뽑는 것은 한국 교육사상 초유의 모범적 사례라며 장신대 문제를 특별기사로 다뤘다. 이렇게 장신대가 교육의 모범 사례로 기사화되자 문교부는 이 문제를 확대하지 않고 조용히 덮고 넘어갔다.

   이 사태가 벌어지고 한 달 후에 원광대학교에서 3월 6일(목) 2박3일 일정의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열렸다. 주로 초빙된 강사들의 논지는 네오마르크시즘과 뉴레프트, 해방신학 등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대학에서 한 명씩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운영본부 인원까지 200여 명이 숙식을 함께했는데, 대다수 교수는 특강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커피 타임에 불만을 토로(吐露)하기도 했다.
   7월 3일(목)에는 2박3일 동안 제주대학교 주최로 제주도에서 모이는 <교무처장 회의>에 참석했다. 제주대학교 총장의 인사말과 이어서 장관의 축사를 겸한 격려사, 그리고 문교부에서 시달 사항 등을 지시하곤 오후부터 초빙 강사들의 특강이 이어졌다. 주로 국민윤리 교육과 이데올로기 비판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 몇몇 강사들은 이런 모임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교무처장 회의>는 매 학기 말에 모였다. 2학기에는 12월 11일(목) 2박3일 일정으로 유성호텔에서 소집되었다. 이렇게 1986년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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