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43)
시간의 여행(43)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1.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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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철학과 신학, 그 여정의 교수
① 『기독교교육철학 사상』(저자 한숭홍. 장신대 출판부, 1991)
① 『기독교교육철학 사상』(저자 한숭홍. 장신대 출판부, 1991)

미래를 여는 젊은이들

   1980년대 한국 내 모든 신학대학 가운데 ‘기독교교육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나는 1981년에 이미 “기독교 교육철학에 관한 소고.”라는 소논문을 『신학춘추』(1981.8.21)에 그리고 “기독교 교육학의 철학적 이론형성.”이란 논문을 『교회와 신학』 제14집(1982.5.)에 발표했으며 이어서『신학사상』 제38집(1982 가을)에 “기독교 교육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방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계속 교육과 철학, 교육과 신학, 신학과 철학 등의 상호관계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기독교 교육학계에서 기독교교육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88년 2월 12일(금) 서울신학대학 이정효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기독교 교육학회 모임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대화하는데, 이 교수는 서울신대 ‘기독교교육학과 석사과정’(MACE) 학생들에게 「기독교교육철학 및 사상」에 관한 세미나(3학점)를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신대까지 가서 가르쳐야 하는 게 부담되어 약간 망설이고 있는 순간, 교수님은 학생들을 내 연구실로 보내 배우게 하려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서로 덕담으로 대화를 마쳤다.
   며칠 후 서울신대 대학원장으로부터 강의 맡은 데 대한 감사 편지와 강의계획표(Syllabus) 용지와 여러 가지 안내사항이 동봉된 우편물을 받았다. 나는 이틀 후에 강의계획표에 필요사항을 상세히 적어 발송했다.

   서울신대가 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 교과과정(curriculum)에 불모지나 다름없는 기독교교육철학을 공부하도록 한, 이 개척자적 결단에 경탄(驚歎)을 금할 수 없었다. 과목은 개설했지만, 그 당시 이 분야를 가르치는 대학원이 어디에도 없으므로 이 교수가 내 논문들을 읽으시고 자극을 받아 학생들을 내게 가서 배워오도록 했다는데 기독교 교육학 영역을 폭넓게 전망하는 학자의 모습이 새삼 돋보였다. 그분은 기독교 교육학이 학문으로서 위상을 갖추려면 철학에서 구조와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는 거시적 안목의 학자였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나의 지론인 기독교교육철학 및 사상을 가르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지만 멀리서 와서 배우고 오후에는 다시 본교로 돌아가서 수업받는 이 학생들과 매주 만나는 것 자체가 매우 행복했고 즐거웠다. 배우겠다고 나를 찾아온 게 고맙기도 하고.

   서울신대가 기독교 교육학에서 철학에 비중을 두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교육'(Christian Education)의 울타리를 넘어 '기독교 교육학'(Wissenschaft von der Christlichen Erziehung)의 지평으로 학문성을 농축해가고 있다는 인상은 그 후 많은 신학대학의 기독교교육과에서 본받아가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 대다수 신학대학에서는 ‘기독교교육’, ‘기독교교육과’ 등의 용어가 통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교과과정은 거의 주일학교 교사교육, 성경공부 방법과 교재개발, 계절마다 절기별로 주일학교에서 사용할 놀이도구와 공작 형식, 인형극, 성극 등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짜여있었다. 한마디로 기독교교육이 예배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교 초기부터 이런 정체성이 관행으로 이어져 왔기에 독립 과학으로서의 ‘기독교 교육학’이란 용어조차 생소했다.
   3월 11일(금) 9시 30분 내 연구실에서 서울신대 대학원생 9명을 맞았다. 낯선 환경 때문에 그런지 내게 인사를 하는 데 모두 긴장해 있었다. 곧이어 한 명씩 본인 소개를 할 때 내가 긴장을 풀어주려 몇 마디씩 말을 섞었더니 간간이 웃음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생들은 순수하고 밝았다. 학생들의 학기 차수는 1차, 2차, 3차로 서로 선후배 사이인데 오가는 대화나 언어 표현에서 인간성이 맑고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② 도표1-신학-교육학-철학의 학문 내용과 형식들,   도표2-기독교교육철학의 구조
② 도표1-신학-교육학-철학의 학문 내용과 형식들, 도표2-기독교교육철학의 구조

나는 우선 수업 진행 과정과 방식, 과제 등에 관해 자세하게 안내했다. 그리고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 학교 행사 때 휴강하지 않고 12주 집중적으로 수업하기로 했다.
   세미나 수업이지만 이 과목 자체에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기에 처음 6주 동안은 철학, 교육학, 철학적 신학에 관한 강의로 방향을 잡아주며 이끌어갔다. 첫 시간에 현대철학(19C~ 20C)을 주제와 동인별로 강의했고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아니므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가며 강의했는데 모두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질문도 몇 번 받았는데 현대철학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5번째 주에는 교육철학 사상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6번째 주에는 “기독교교육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읽어오게 했고 그 핵심과 방법론, 구조 등을 풀이해 가르쳐주며 기독교교육철학의 학문적 기틀을 설명했다. 6주 동안 집중적인 강의를 하며 기독교(신학)-교육-철학 간의 삼각형식의 관계론을 본질론으로 설명해주었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학생들은 기독교교육철학이 어떻게 구조되어있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7~10번째 주부터는 학생들에게 주제 발표를 시켰고 토론해가며 접근방법과 문제점을 찾아내도록 유도했다. 11~14번째 주부터는 기말 논문 주제 14개 중에 하나씩을 선택하게 한 후 각자 발표하게 했고 모두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했다. 8주 동안 매주 2명이 주제 발표를 했다. 발표 30분, 토론 20분, 그리고 내가 발표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하고 논평한 후 마무리하곤 했다. 첫 번째 발표가 끝나면 차나 커피를 마시며 쉬곤 두 번째 발표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2번 주제 발표를 해야 했고 토론에 참여해야 했으며 기말에는 A4(10pt) 10매 이상의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1990년 2월 14일(수) 이정효 교수가 이번 학기에도 「기독교교육철학 및 사상」 세미나를 맡아 달라며 전화를 했다. 2년 전부터 장신대는 학생들의 소요로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학생들을 보내겠다는 게 감사했다.
   2월 22일(목) 오후 1시에는 미스바 광장에서 총학생회가 학교의 공식적인 졸업식을 거부하며 자칭 ‘민주 졸업식’을 했다. 일종의 퍼포먼스였지만 학사(學事) 운영에 대한 도전이었고 저항이었다. 학교에서는 졸업식과 학위수여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개학을 앞두고 학사 일정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3월 7일(수) 내 연구실에서 서울신대 대학원(MACE)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학기에는 매주 오후 3:50~6:20에 수업하도록 시간표를 짜서 보내주어 그에 맞춰 진행했다. 나는 서울신대에 제출한 1990학년도 1학기 강의계획표에 “종교교육 혹은 기독교교육이란 대범주체계는 1. 기독교 교육학, 2. 교육신학, 3. 기독교교육철학이라는 3가지 학문영역으로 분류된다. 기독교교육철학은 기독교 교육학의 지류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교육신학의 아류도 아니다. 「기독교교육철학 및 사상」이란 과목은 기독교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교 사상(Theologie)을 교육학적 방법론(Didaktik)과 철학적 접근 태도(Philosophieren)를 통해서 이론화하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다.”라고 과목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번에도 1988년 때처럼 강의와 세미나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수업 계획을 짰다. 하지만 수업 내용과 형식은 완전히 달랐다. 3월에는 철학과 교육학을 집중적으로 교수했고, 4월에는 교육학의 학문성과 기독교교육철학의 본질과 현상, 내용과 방법에 관한 강의를 했다. 5월에는 기독교교육철학에 접근하는 방법과 이론을 심화하도록 주제를 주어 발표시켰고, 6월에는 기독교교육 사상에 대한 기독교교육철학적 이해에 역점을 두고 그런 논제로 발표하도록 했으며, 마지막 주에는 이번 학기에 배운 내용을 총정리해주고 종합평가하며 학기를 마쳤다. 기말 논문은 별도 주제를 주어 역시 A4(10pt) 10매 이상의 논문을 요구했다. 성적 산출은 ‘출석 20% + 발제(2번) 40% + 기말 논문 40% =100%’ 이렇게 하며 3번 결석하면 "F" 처리한다고 첫 시간에 통보했다. 이 성적 산출방식은 나의 교수 생활 27년 동안 모든 과정, 모든 과목에 항상 똑같이 적용되었다.  

③ 서울신대 대학원 「기독교교육철학 및 사상」 1988-1, 1990-1 성적 보고서

수강생 중에는 김 목사라는 군목 한 분도 있었는데, 후배 9명과 잘 어울리며 한 번도 늦거나 결석하지 않고 과정을 우수하게 마쳤다. 사실 군에 매인 몸이라 매주 참석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도. 나는 2005년 5월 27일 연세대학교 신학관 준공 기념 학술심포지엄에 특강 강사로 초빙되어 “한국교회 분열과 신학적 논쟁”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강연회가 끝나고 교수식당에서 만찬이 차려져 이동하고 있는데 김 목사가 찾아와 인사를 하며 반가워했다. 15년 만에 만나는 것인데, 제대 후 목회를 하며 연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 이후에도 나는 서울신대 신학박사 후보생인 교수 한 분과 기독교 교육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을 이어서 지도했고,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 후 한 분은 모교 총장까지 지내고 은퇴했고, 다른 한 분은 모교 교수가 되어 ‘기독교교육철학’을 가르치며 성결교 총회 본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크게 활동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내 시집 『유리온실』을 읽으며 내게 배우던 시절이 떠올라 전화로 인사드린다며 자신도 올해 은퇴한다고 했다.
   서울신대 학생들과의 사제관계는 내 교수 생활 중에 매우 깊게 인상된 그리운 추억 가운데 하나로서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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