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 죽기 전에 한번 다녀가셔
목사님, 저 죽기 전에 한번 다녀가셔
  • 전태규목사(서광교회)
  • 승인 2020.01.3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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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경찰관 재직 중에 사곡성결교회서 집사로 봉사 하던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대전서 온 신학생을 따라 간 것이 감리교 목사의 출발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5남매 에게 나는 열 번 남자로 태어나면 열 번 목사하고, 열 번 여자로 태어나면 열 번 사모하시겠다면서 우리 모두 다 목회하길 원하셨다.

그 중에도 내가 더 목회하길 원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어려운 농촌 목회를 보았던 터라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직 내 목표는 신촌에 있는 연0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 밤을 낮 삼아 후회 없이 공부 하였다.
이즈음 한얼산기도원 이천석 원장님이 우리 화정교회에 오셔 부흥집회를 인도 하셨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은 믿지 않지만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내가 가는 길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만 부흥회를 매달려보자는 생각으로 5일중 3일을 철야하며 기도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나에서 성령의 불을 부어 주셨다. 방언도 받았고 쓸어 지는 경험은 하였으나 입신은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 받은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때 성도들은 이번 집회는 나를 위해 열었다고 하였으니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를 실망시켜 주지 않으심을 다시 깨달았다.
그일 후 1974년 아버님의 인도로 성결교신학교에 입학 하였고 나는 1학년 97명을 대표하는 대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학년 재학 중에는 남영교회에서 봉사하였다. 2학기를 마치고 1974년 11월 31일 아버지가 목회하는 강경지방 성민교회에 첫 부임하여 1975년10월17일 군 입대 하기까지 목회를 하였다.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금 40년을 목회 한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4가정 12명모이던 교회가 떠날 때는 70~80명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 실적만 보더라도 우선 강대상을 강경지방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바꾸었고, 풍금을 사고, 청년들 수련회를 처음 도고온천에서 열었다, 심령부흥회를 안 상열 목사님을 초청하여 열었다. 후임자 밥 굶는다고 최재현 목사님 때 사둔 논에 통일벼를 심어 건축헌금으로 적립하였다. 중직 자녀들 엄승용, 이창하, 서철옥, 세 명을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들은 1학년이고 담임자는 2학년에 재학하였다. 그중 엄승용목사는 군목을 마친 후 재능이 많아 좋은 책도 여러 권 저술하였다. 그와 동창이 유명세를 타는 장경동 목사이다. 또한 내 후임자 양영민 목사는 내가 전도한 똑똑한 전영숙 청년을 중매 섰는데 지금 시흥 알곡교회 백영민 목사의 사모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셨다.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는 믿지 아니함으로 이적을 많이 행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신학생 되어 담임전도사를 보았을 때는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군대 제대 후 나는 교육전도사를 거쳐 지금 서울에서 개척하여 41년째 목회하고 있다.

살아오는 동안 가끔씩은 첫 목회지가 문득 문득 생각이 났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강경지방 연합성회 강사로 갔을 때 멀리서 우리 성도들을 바라보니 이산가족들 상봉을 연상하는 장면이었다. 성민교회 성도들이 담임 목사님께 가끔 내 이야기를 하면 별로 좋아하질 않더란다. 나도 목회자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그 후부터 나는 더 멀리 하였다. 나를 자식처럼 사랑해 주신 김배순 권사님이 돌아 가셨을 때는 논산 장례식장만 잠시 다녀왔다. 또한 우 권사님이 대전 병원에 입원중인데 숨을 거두기전 나를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당진에서 저녁집회를 마치고 대전에 찾아가 기도해 주고 돌아와 새벽집회를 인도 하였던 추억이 있다. 그 후 담임목사님이 은퇴를 하시고 젊은 목회자가 부임하여 전화를 나누니 논산 대건 고등학교 후배이고 아버지 감리사시절 강경제일교회 남영우 장로님의 손자임을 알게 되어 기뻤다. 후배인 그는 나에게 편하게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목회 윤리 상 지금껏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세월과 함께 대부분 성도들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장수의복 받으신 박노희 권사님이 생존해 계시다. 처음 목회 나갔을 때 나는 고 배상 권사님과 박 권사님 집에서 식사를 하였기에 더욱 정이 들고 잊지를 못한다. 그는 이대 출신 이상으로 언변에 능하였고 시골에서는 부녀회장 감이었다. 얼마 전 내가 보고 싶다고 하여 천안 내려 갈 때 논산 명숙 따님 집을 찾아가 점심 대접을 잘 받고 사랑담긴 쌀까지 주어 지금까지 잘 먹고 있다.

얼마 전 박 권사님이 또 전화를 하였다. 내용인즉 목사님! 저 죽기 전에 한번 다녀가셔! 우리 목사님은 젊으니까 살짝 다녀가도 괜찮아! 하는 것이다. 나도 목사지만 이런 때는 과연 어떤 것이 옳은가! 나는 늘 부족하여 판단이 서질 않아 고민한다. 그래서 나는 국민일보 박종순 목사님의 상담코너를 즐겨 본다. 이제 나도 목회 종착역이 멀지 않은데 끝까지 목회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무엇보다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 삼가 조심한다. 이것이 그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이며 내 뒤를 잇는 두 아들에게 그나마 체면을 세워주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박 권사님이 주신 말씀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목사님! 저 죽기 전에 한번 다녀가셔! 내가 섬기던 성민교회(성동제일교회)가 농촌이지만 든든히 서가게 하시고 박 권사님과 그의 자손들에게 복에 복을 더 하소서 오늘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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