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50)
시간의 여행(50)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3.0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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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그네의 마지막 여로
96.8.19 Mount Rainier ⑥ 숙소 전경 ⑦ 레이니어산 ⑧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⑨ 산장호텔 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⑩ 눈 덮인 산자락 공원에서
96.8.18 세인트헬렌스산 사진 ① Mount St. Helens 안내판 앞에서(1996.8.18) ② 노스포크터틀강 ③ 화산재에 묻힌 마을과 주택들 ④ 복원되어가는 자연 ⑤ 존스턴 리지 전망대

샌디에이고에서 밴쿠버까지

   8월 말이면 귀국해야 한다. 미국 일주 여행에서 돌아와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귀국 전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밴쿠버 여행 일정을 짰다. 4월 부활절 방학 때 그랜드캐니언 일주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샌디에이고에 들려 관광하며 하루를 보낸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 밴쿠버까지 보여주고 오면 미국 서부를 남쪽 끝에서 북쪽 끝에 이르기까지 다 보여주게 되는 셈이다.

세인트헬렌스산
   8월 18일(일) 아침 일찍 버클리에서 출발하여 I-5N로 포틀랜드를 거쳐 북상하다 캐슬락(Castle Rock)에서 좌회전하여 WA-504 도로를 타고 동진하여 세인트헬렌스산(Mount St. Helens)에 도착했다. 이 산이 유명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치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산이 명성을 얻게 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1980년 5월 18일 아침에 화산이 폭발하여 엄청난 유황과 재를 뿜어내며 산과 마을을 덮어버린 화산의 위력 때문이다. 높이 2,950m 되는 산의 정상을 400m나 잘라버려 산이 낮아졌는데 이 정도의 폭발력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도로 좌측으로 흐르는 노스포크터틀강(North Fork Toutle River)은 그때까지도 잿빛 물결을 넘실대며 계곡 사이를 흘러가고 있었고 마을과 평원 등은 여전히 화산재로 야산을 이루거나 덮여있었다. 타버린 나무들과 숲은 그 당시 화산의 참상을 기념비로 남겨두려는 듯 죽음의 흔적을 간직한 채 평온했다.

   자연의 생명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푸른 숲으로 덮여가기 시작했고 타버린 나무들 옆에서는 어린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16년간의 시간적 간격(1980년~1996년)이 많이 좁혀진 듯하지만, 아직도 상처 입은 산하의 비참했던 모습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아마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리라. 자연의 복원력이 새로운 생명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 산에 머물며 산책을 하고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산과 건너편 먼 곳의 산등성이가 빠르게 변해가는 저녁 풍경을 감상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곳을 떠나 레이니어산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96.8.18 세인트헬렌스산 사진 ① Mount St. Helens 안내판 앞에서(1996.8.18)  ② 노스포크터틀강 ③ 화산재에 묻힌 마을과 주택들  ④ 복원되어가는 자연 ⑤ 존스턴 리지 전망대
96.8.19 Mount Rainier ⑥ 숙소 전경 ⑦ 레이니어산 ⑧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⑨ 산장호텔 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⑩ 눈 덮인 산자락 공원에서

레이니어산

   19일(월)은 레이니어산에서 산 절경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쉬곤 하며 휴식 시간을 보내고 그곳을 떠나 US-101N으로 북진하여 포트 엔젤레스에서 저녁을 맞았다. 오늘 밤을 보내고 내일은 빅토리아로 건너가 버차트 가든으로 갈 예정이다.  

밴쿠버에서 짧고 긴 시간

   20일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은 밴쿠버까지 가야 해서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빅토리아를 거쳐 버차트 가든에 가서 그 넓은 꽃 정원 곳곳을 구경하고 밴쿠버로 가기 위해 저녁 식사를 하고 스털디스 베이(Sturdies Bay)에서 페리로 트소와센(Tsawwassen) 터미널에 도착하여 밴쿠버로 달렸다. 교통표지판을 보며 어느 작은 도시를 통과해 2시간이 넘도록 달렸는데 산길 같은 곳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교통표지판이 없어 방향을 찾을 수 없었고 밤중이라 오가는 차도 없었다. 인적이 없는 숲길을 좀 더 가다 보니 삼거리에 도달했다. 산길인데 여기서 길을 잘 못 택하면 헤매며 다니다 길에서 밤을 새워야 할 판이다.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생각 중인데, 마침 지나가는 차가 있어 경적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깜박여 차를 세웠더니 중년 신사 부부였다. 우리 사정을 듣더니 차를 돌려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여 30분 정도 따라가니 이제 이 길로 계속 가면 작은 도시가 나오고 거기서부터는 길 안내 교통표지판도 있어 찾아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곤, 행운을 빈다고 인사하고 차를 돌려 오던 길로 돌아갔다. 우리 때문에 1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아이들과 이런 에피소드를 말할 때마다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21일(수) 아침부터 밴쿠버 북쪽 지역과 남쪽 지역의 거리 관광을 하고 시청 등 명소를 찾아다니며 보여주었다. 다음 날은 스탠리 파크에서 휴식하며 지냈다. 버클리에서 만난 어느 교환교수가 밴프가 아름답다며 밴쿠버에 가면 꼭 들려보라고 권하여 23일(금) 그곳으로 출발했다. 몇 시간째 달려가다 평원지대에 들어섰더니 오른쪽으로 프레이저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점점 산악지대가 되어 중간쯤 갔었지만 포기하고 날이 저물어 그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밴쿠버로 돌아왔다.

시애틀

   다음 날(24일) 아침에 시애틀에 도착하여 도시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니들(184m)에 올라가서 멀리 레이니어산 정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애틀 시내 전경과 주변 도시들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하였다. 경치는 가까이에서 볼 때보다 때로는 원경에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이 자연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느껴올 때가 있다. 그곳에서 북서쪽 해변의 마리나 비치와 주변의 부촌 주택가 등을 차로 돌며 구경하고 시내로 달려 해변 식당에서 식사한 후 버클리로 출발했다.

96.8.20 포트 엔젤레스 ⑪ 올뷰 모텔을 출발하여  ⑫ 스털디스에서 트소와센으로 가는 페리에서
96.8.20 포트 엔젤레스 ⑪ 올뷰 모텔을 출발하여 ⑫ 스털디스에서 트소와센으로 가는 페리에서

105달러짜리 추억

   우리는 집에 빨리 갈 생각에 100마일이 넘는 속도로 달렸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주 멀리서 차가 한 대 달려오는데 10여 분 후에 우리 차 바로 뒤에 따라붙어 차 지붕에 고정되어있는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스피커로 서라는 명령을 했다. 두 명이 다가와 앞뒤에 서서 신분증을 내라고 했다.
   조 선생이 미국에서 경찰에 걸리면 함부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손을 들고 있었더니 저들은 플래시로 우리 차 안쪽을 샅샅이 비춰보며 뒤에 아이 세 명이 있는 것을 보고, 증명서를 내라고 하여 그때 주머니에서 꺼내주었다. 아내의 운전면허증과 우리 여권이었다. 차에 가서 한참 후에 와서 여권을 돌려주며 105달러짜리 벌금 딱지를 끊어주었다. 왜 이러냐고 했더니 과속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밤중에 이상한 차가 따라붙어 범죄자들이 따라오는 줄 알고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이제는 이 한 토막의 사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된다.

미국 여행지도
미국 여행지도

에필로그

   나는 미국에 두 번째 교환교수로 와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얻었다. 첫째로 나의 세계관이 역사와 전통, 문화와 지성의 우월의식에 노예화되어있는 서구 중심의 교과서적 편견에서 세계의 또 다른 면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어느 정도 평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삶의 자리에 들어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습득한 것이므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나마 세계는 다양성 속에서 독창적으로 개성화되며 진화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두 번째로 미국에는 장구한 역사를 이어오며 세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진시황제, 칭기즈 칸 등등 이런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웅이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역사적 의미를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조금만 두드러져도 대단한 인간으로 영웅화하거나 신화화하여 추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물이 좀 두드러지면 곧바로 흠잡아 제거하고, 작품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인정받게 되면 표절로 몰아가서 국제적으로 망신주는 심보,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우면 집단 매도하여 매장하는 그런 잠재된 버릇 등이 없는 게 미국이며 미국 정신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미국 위인전의 대다수가 흠을 숨기거나 삭제하고 감상적 문장으로 작품화되어 탄생한 만들어진 인물상임을 미국에서 나는 직접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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