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51)
시간의 여행(51)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3.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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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날이 저물면 새벽이 오리니
2005.10.26 제488주년 종교개혁기념 학술강좌 ① 제488주년 종교개혁기념 학술강좌 포스터 ② 강연에 앞서 이종성 박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③ 강연하고 있는 중  ④ 강연 후 이 박사님과 ⑤ 교수식당에서 교수들과 총학생회 임원들
2005.10.26 제488주년 종교개혁기념 학술강좌 ① 제488주년 종교개혁기념 학술강좌 포스터 ② 강연에 앞서 이종성 박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③ 강연하고 있는 중 ④ 강연 후 이 박사님과 ⑤ 교수식당에서 교수들과 총학생회 임원들

신학과 신학

   종교개혁 488주년을 맞이하여 장신대 총학생회에서는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1학기 종강 즈음에 학생회장과 임원들이 찾아와서 학술 강연을 부탁했다. 왜 나에게 이런 큰 행사에 강연을 부탁하냐고 물었더니 “교수님의 신학이 무엇인지 배우고 동시에 이종성 박사님의 신학에 관해서도 들으며 두 신학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제안을 선 듯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박사님은 나의 사부(師父)이신데, 감히 어떻게 스승의 이론과 맞서는 나의 사상을 어른 면 전에서 비교 논술할 수 있겠느냐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런 인간적 관계를 차치하고 사제간의 사상적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고 했다. 2005년 10월 26일(수), 오후 1시에 대강당(한경직 예배당)에서 학술 행사가 열렸다.

   춘계(春溪)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統全的) 신학」이 낭랑히 퍼졌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장신신학은 칼뱅 신학이다. 그러다 1980년 즈음부터 “중심의 신학”을 표방했는데, 그렇게 선포했더니 거의 모든 신학대학으로부터 그렇다면 자신들의 신학은 변두리 신학이냐며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표현을 바꾸어 이번엔 “좌와 우를 아우르는 신학”을 표방했는데, 역시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장신대가 실제로 좌파신학을 수용하고 있느냐?” “유물론 신학인 ‘물(物)의 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 민중신학 등등 이런 신학을 수용하고 있느냐?”며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좌우를 아우르는 포괄적 신학의 이상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방황의 시대가 흘러가다 한국신학의 전체 흐름을 간파하고 계셨고 세계 신학의 동향과 사상을 꿰뚫고 계셨던 이종성 박사께서 “장신신학은 통전적 신학이다!” 이렇게 신학 선언을 하면서 오늘까지도 ‘장신신학=통전적 신학’이란 등식이 공인되고 있다. 그 후에 이 신학에 관한 연구가 여러 제자에 의해 전공별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이 박사님께서는 83세의 고령임에도 통전적 신학의 주제와 당위성을 핵심 정리하여 이해하기 쉽게 발표했다. 한국 신학계와 교계 인사들도 많이 참석했다.
   나는 「신토불이(神土不二) 신학」이란 제목의 논문을 한 시간에 걸쳐 발표했다. 이것이 나의 신학이다. 나는 통전적 신학의 대류에 몸을 담그지 않았다. 나의 신학 사상은 통전적 신학의 수평적 유기체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쌓아온 신학 체계, 동인, 구조, 방법 등을 한순간에 폐기하고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 신학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토불이 신학은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에 관한 신학이다. 나는 이 신학을 정립하면서 성서적 전거, 신학으로서의 방법, 구조, 내용 등을 수직적 관계와 그것이 신학으로 구성될 수 있는 수평적 관계를 신토불이 신학의 틀로 제시했다. 이것을 나는 ‘신학의 원형’(theologia archetypa)이라고 규정하는데, 그 논거는 감상적 진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철두철미 성서에 근거하여 체계화된 이론이다.
   신학은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수평적 차원의 수준에 머물며 도그마주의로 전통을 고수해왔다. 이런 타성에 젖은 신학의 기교주의(mannerism)를 나는 부정하며 신학의 참됨은 신학의 근원적 관계에서 형성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날 A4 용지 30쪽에 달하는 강연 워크북에서 나는 이를 주장하며 나의 신학 체계를 진술했다.
   지금까지의 신학은 교회의 존속을 위한 도구처럼 사용되었는데, 신토불이 신학은 신토관계의 신학이다. 이 관계에 따라 신학은 ‘우주적 신학’, ‘신토체계(thegeosystem)의 신학’, ‘원신학’(Urtheologie)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 후에 나는 나의 신학을 두 권의 저서로 압축하여 발표했다.
   2013년에 출판된 『신토불이 신학 논고』(A Treatise on the Sintobul'yi Theology)는 조직신학에 해당하는 저서다. 전체 2부로 구성됐는데, 제1부 ‘신학의 자기비판적 성찰’은 4장으로, 제2부 ‘신토불이 신학의 본질’은 8장으로 분류하여 이론화했다.
   2014년에 출판된 『신토불이 신학의 본질과 현상』(Essence & Phenomenon of Sintobul'yi Theology)은 신토불이 신학의 총론을 10장으로 나누어 체계화한 저서다.

2007.6.25 정년 퇴임 감사예배 및 기념논문집 헌정식⑥ 오인탁 교수의 축사 ⑦ 제자 성악가의 축가 ⑧ 삼양제일교회 목사님과 성도들  ⑨ 제자들 ⑩ 예식 후 교정에서(왼쪽으로부터: 소기천 교수, 홍재구 원로목사님, 오른쪽 심영섭 목사님)
2007.6.25 정년 퇴임 감사예배 및 기념논문집 헌정식⑥ 오인탁 교수의 축사 ⑦ 제자 성악가의 축가 ⑧ 삼양제일교회 목사님과 성도들 ⑨ 제자들 ⑩ 예식 후 교정에서(왼쪽으로부터: 소기천 교수, 홍재구 원로목사님, 오른쪽 심영섭 목사님)

명예교수의 명예

   서른여덟 살에 교단에 서면서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냉철했다. 교수로 청빙 받아 귀국했을 때 어머님은 인사받는 자리에서 “‘교수는 강의도 잘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던 어머니!”(한숭홍 시집1, 『나무에게 배우다』, p. 132). 어머니의 그 말씀이 교수 생활 내내 내겐 향도(嚮導)와 같은 길잡이였다.
   20시간이 넘는 강의 시간으로 심신이 피곤할 때도 많았지만 학생들과 만나고 대화할 때면 가르치는 즐거움에 몇 시간도 한순간처럼 흘러갔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지만, 인연, 지연, 학연 같은 것에 연관하여 맺어가지 않고 오직 제자 사랑, 그 순수함으로 대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은 그런 나의 진심을 느끼며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며 늘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내 곁에 다가오곤 했다.
   나는 교수 생활 27년이 기계적 관계보다는 혈류가 흐르는 생명체 같은 관계로 이어져 온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없는 꽃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을 주고 가꿔주면 예쁜 꽃을 피워 보답한다는데, 제자 사랑의 결과는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결과로 되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점심시간에 언덕 아래 있는 식당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게 불편해서 샌드위치를 싸 와서 점심때 커피나 차를 끓여 마시며 먹곤 했다. 교수들에게는 점심시간이 친교의 시간이며, 정보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다. 식탁공동체란 말이 교수식당에서도 통용된다. 나는 이 친교의 자리에 동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교수들과 거리를 두고 지낸 적도 없다.  
   난 개인적으로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때가 지나면 잊히는 존재처럼 시간의 한 흐름에 묻혀가는 생명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 스스로 실망하지 않도록 행동하며 살아왔고, 가르침이 주어졌을 때 내 역량이 미치는 한에서 정성을 다해 임했다.  

⑪ 교정에서(왼쪽 윤철호 교수, 오른쪽 이길원 전도사) ⑫ 양금희 교수 ⑬ 왼쪽 정성한 교수. 오른쪽 고원석 교수 ⑭ 왼쪽 권영숙 교수, 필자 옆 김영미 과장과 정복자 과장 ⑮ 제자들과 교정에서 ⑯ 교수식당에서(외쪽부터: 오인탁 교수, 이 박사님, 홍재구 목사님, 필자)
⑪ 교정에서(왼쪽 윤철호 교수, 오른쪽 이길원 전도사) ⑫ 양금희 교수 ⑬ 왼쪽 정성한 교수. 오른쪽 고원석 교수 ⑭ 왼쪽 권영숙 교수, 필자 옆 김영미 과장과 정복자 과장 ⑮ 제자들과 교정에서 ⑯ 교수식당에서(외쪽부터: 오인탁 교수, 이 박사님, 홍재구 목사님, 필자)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교단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왔다.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나려는 생각으로 때를 기다렸는데, 제자 교수들이 정년퇴임기념논문집을 만들어 증정하며 출판기념회 겸 퇴임 예배를 아주 멋지게 해주었다. 『한국신학의 지평』이란 제목하에 7편의 ‘신토불이 신학에 대한 학술 논문들과 8편의 일반 논문들이 함께 실렸는데, 나의 신학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평가와 신토불이 신학의 위상, 한국 신학계에서의 위치 등에 관한 체계적 내용이 매우 심도 있게 논술되었다.
   2007년 6월 25일, 장신대 음악관에서 식이 거행되었는데, 축사를 맡은 이종성 박사님께서 나와 얽힌 일화들도 가끔 섞어가며 말씀해 주셨고, 오인탁 교수의 격려사, 여러 제자의 회고담, 축가, 기념품 증정, 홍재구 목사의 축도 등으로 식을 마치고 교수식당에서 축하연이 열렸다. 삼양 교회 성도들도 많이 오셔서 축하해주며 함께 교제의 시간을 나누었다. 물러나면서까지 이렇게 제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교수 연구실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2007.8)
교수 연구실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2007.8)

강사문 교수와 나는 같은 날 은퇴하게 되었다. 2007년 8월 29일(수)에는 학교 차원에서 마련한 합동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한경직 예배당에 자리를 함께한 하객들 앞에서 퇴임 교수 대표로 강연을 했다. 학교에서 마련한 선물과 꽃다발을 받으며 이렇게 식은 끝났다. 27년간 드나들던 교문을 나오며 나는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 한 그루 바윗돌 하나마다 정이 깃들어 있었다. 27년간 아내가 철철이 가꿔 놓은 조경을 스쳐 지나가며 눈시울이 적셔졌다.
   해가 서산에 지고 어둠이 나리면 머잖아 여명의 아침은 새날의 빛으로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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