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52)
시간의 여행(52)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3.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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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철학-신학-교육학의 순환구조
나의 학문적 스승들 (사진 출처·Wikipedia) ① Aristoteles ② St. Augustinus ③ T. Aquinas  ④ W.F. Hegel ⑤ F. Schleiermacher ⑥ S. Kierkegaard
나의 학문적 스승들 (사진 출처·Wikipedia) ① Aristoteles ② St. Augustinus ③ T. Aquinas ④ W.F. Hegel ⑤ F. Schleiermacher ⑥ S. Kierkegaard

학문 간의 관계성

   철학과 신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곁 돌기 때문에 이 둘을 완전히 융합하여 하나의 구조로 연결할 수는 없다. 철학의 이성은 삼라만상을 사변의 대상으로 탐구하며 구명(究明)하려는 행위이므로 그 자체가 의식의 바탕을 이루어가며 세계를 직관하는 행위다. 그 반면에 신학은 이성을 초월한 경지에 접근하는, 비합리주의적 방식이며 초월적 존재를 믿는 학문이다. 이것이 신학의 동인이 되는 신앙이다.
   신학은 믿음으로 존재의 근원을 설명하려 한다. 이런 행위는 원시 시대부터 신화나 토속적 샤머니즘, 의례 등의 양태로 분류(分流)되어 오다가 종교의 형식을 갖춰가기 시작하면서 차츰 학문으로 주형 되었다.
   나는 철학의 합리주의와 신학의 비합리주의, 이 양자 간의 조화·일치에 관심이 많다. 비록 서로는 완전히 융합할 수 없지만, 신학은 철학의 방법론을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철학을 배제한 신학은 무속화 될 수밖에 없다.
   철학의 경우 고대철학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신화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며 탄생했기에 철학의 합리주의에는 비합리주의 요소가 효시로 잠재되어 있다. 나는 이 양자 간의 관계, 즉 철학과 신학의 역설적 관계를 내 관점, 내 학문성(Wissenschftlichkeit)의 본질에 따라 철학과 신학, 철학적 신학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했다.
   나는 교육학에 접근하며 가르침의 본질을 지식이나, 교과과정에 짜여있는 내용의 전달, 학습 과정 등의 의미로만 규정하지 않고,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 교수-학습의 관계, 그 목적과 방법, 그리고 교육 행위의 결과와 영향까지도 포괄하여 인간을 인간화하는 것이란 데 교육함의 궁극성을 두고 있다. 나는 교육학이란 교육함의 합리성이 정립되어야 하는 영역이며, 합리성의 목적에는 방법론이 확고하게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구상으로 교육의 철학화를 정립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교육학을 철학의 도구나 교수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교육학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가르쳐야 하는 행위라는 것을 교육학의 학문성에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신념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 일을 결코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교육학은 이념교육이나 신앙교육의 도구로 전락 될 것이다.
   나는 철학-신학-교육학, 이 세 학문의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개성을 존중하며 상호 유기성을 정립하려 했다.
   그렇다면 나의 학문성을 정립하는데 초석이 된 이 세 학문은 어떤 흐름에 의해 구성되었는가? 아래에서 그 원류를 찾아보도록 할 것이다.

나의 철학의 원류

  나는 철학함(Philosophieren)에 있어서 그 원천을 찾아 거기서부터 그 흐름의 과정을 탐구해가며 시작했다. 서양철학의 경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그 원류를 규명하는 게 철학에 입문하는 정석이다.
   내 사상 저변에는 원소론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영향은 준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나는 그의 철학에 힘입어 철학의 지평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그의 형이상학의 논리적 체계와 구조에 대한 사변의 가능성을 배워가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철학이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부활하며 나는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아퀴나스의 신학 체계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헤겔의 변증법, 셸링의 주객일치의 철학 구조,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과 사회구조론(계급투쟁론) 등의 영향은 내 철학의 방법론을 일층 격상하는 원천이 되었다.
   딜타이의 해석학은 내가 학문의 구조와 내용을 전개해갈 때, 심지어 문학과 미학의 관계를 해석하며 이해해갈 때도 깊이 작용했다. 그것은 체험-표현-이해의 등식이 본질의 현상을 해석해가는 과정과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외에 본질과 현상의 상관성과 환원, 본질직관, 그리고 관계 유보의 구조, 판단정지(epoche)로 철학의 틀을 만들어 가는 후설의 현상학도 수용했다.
   현대철학을 공부하며 삶에 대한 철학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 삶의 주체인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늘 갖고 있었다. 철학하는 주체도 인간이며, 신학 경우에도 신과 인간의 관계를 체계화해가며 신앙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정립하는 주체가 인간이다. 교육학 역시 교육 행위의 주체는 물론 대상까지도 인간이므로 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삶이란 곧 인간의 실존에 연계된 것이므로 실존철학도 삶의 철학이라는 관점이 나의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삶의 철학과 실존철학을 내 사상의 한 축으로 수용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정립된 삶의 개념이 나의 학문구조 곳곳에 깊이 배어있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élan vital), 셸러의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 인간의 개방성, 키르케고르의 시간과 영원의 영원한 질적 차이와 그 관계성, 그리고 니체의 미학에서 아폴로적 동인과 디오니소스적 동인, 그게 나의 미학과 시문학(詩文學)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
   다소 불교적이고 배화교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시간성을 역동적 순환구조로 이론화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하이데거의 실존과 실존성에 대한 존재와 시간의 관계구조 역시 나의 철학의 한 마당을 이루고 있다.
   내 사상 형성의 큰 획은 크리스티안 틸(Christian Thiel) 교수의 과학철학과 수리구조론, 그리고 과학이론(Wissenschftstheorie)이다. 틸 교수의 철학 사상은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써가는데 동기부여의 에너지가 되었다. 이런 몇 가지 흐름은 나의 철학함에 영향을 준 극히 제한적인 일부의 예시일 뿐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내가 영향받은 철학을 모두 나열할 수 없어 극히 일부만을 열거했을 뿐이다.

⑦ W. Dilthey ⑧ F. Nietzsche ⑨ E. Husserl ⑩ G. Simmel ⑪ H. Bergson ⑫ P. Tillich ⑬ M. Heidegger
⑦ W. Dilthey ⑧ F. Nietzsche ⑨ E. Husserl ⑩ G. Simmel ⑪ H. Bergson ⑫ P. Tillich ⑬ M. Heidegger

나의 신학의 원류

   나의 신학은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는 시간의 창조로 시작하여 종말로 끝나는 종교다. 이 시간을 신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신학자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시간의 영원성과 영겁의 한순간, 그리고 시간의 체험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지속과 무의 경지를 처음으로 역설했다.     그의 신국론은 시간의 회복과 영원성의 지속을 담보하고 있는 공간적 개념이며, 기독교는 그 공간을 신국, 하나님의 나라라고 믿는다.
   베르그송의 시간론과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은 전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차용(借用)하여 각색한 한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여기에 헤라클레이토스의 과정이론을 혼합하여 자신의 철학으로 정립했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일몰한 후 세계신학을 이끌어갈 군계일학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학은 철학의 새로운 움직임을 따라가며 철학 언어를 신학 용어로 번역하여 새로운 신학으로 소개하곤 해왔다.
   과정 철학은 실재의 고정불변하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부정하고 실재의 지속적인 변화와 생성을 강조하는 데 기존의 존재론 중심의 신학이 이 실재의 유기체적 과정이론을 도입하여 과정 신학이라고 지칭하며 20세기 중엽에 등장했다.
   이 신학은 “과정 중에 있는 신”(God in Process)을 주장하며, 기존의 신을 고정된 존재로 단정한다. 문제는 “역사하는 신”(God in Work), 부단히 창조·섭리·경륜하는 신과 “과정 중에 있는 신”, 창조적 진화 과정에 있는 신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개념에서 신학의 동인을 찾았다. 그의 신학은 감정의 신학으로 고유 명사화되어 있다. 나는 이런 정서주의적 신앙론 때문에 그의 신학을 수용한 것이 아니고, 궁극적 존재로 향하려는, 절대적 존재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신앙 의지론을 수용했다. 이 절대 의존의 감정, 그 신앙의 차원을 기독교의 중심동인으로 나는 해석하며, 그것에서 나의 신학의 동인을 찾았다.

   틸리히는 내가 영향받은 신학자들 가운데 결정적인 동기를 내게 심어주었다. 나는 그의 조직신학 3권과 주요 저서들을 여러 차례 탐독하며 그에게서 방법론을 어떻게 세워가며 그 관계성을 어떻게 엮어야 하는지 ‘방법론의 방법’(method of methodology)을 배웠다.
   그에게서 시간 개념인 카이로스(kairos)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베르그송, 화이트헤드와는 철저하게 다른 점이 나의 시간 이해의 폭을 한층 더 넓혀주었다.
   틸리히에 의하면 카이로스는 종말이 현실의 삶에서 이미 성취된 시간이다. 이 개념이 내겐 퍽 흥미로웠다. 그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종말론에 대한 이해의 또 다른 차원을 인식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신학이 철학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철학과 신학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고, 종래에는 철학적 신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이로스 개념은 그의 역사신학에서 철학적 신학의 원류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원류는 나의 철학적 신학에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남동 교수는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을 60년대 한국에서 최초로 담론화했는데, 나는 서 교수에게서 틸리히 신학을 배웠다. 그 이후 철학과에서 현대철학을 이규호 교수에게서 배우며 신학의 철학화에 관심이 증폭되었다.
   나 스스로 나의 신학을 규정한다면, 나는 주저함이 없이 철학적 신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로테르트(Hans-Joachim Rothert) 교수에게서 틸리히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배웠고, 이런 과정을 거쳐 나의 신학이 정립된 것이다. 나의 신학은 신토불이(神土不二) 신학인데 단적으로 표현하면 철학적 신학이다.
   이종성 교수의 신학 체계론과 그의 신학이 해석하고 있는 플로티노스의 에네아데(Enneade),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체계와 구조 등도 내겐 귀한 자산이 되었다. 이 교수의 영향은 내게 신학의 뼈대를 세워갈 수 있는 형식을 제공했다.
   위에 열거한 신학적 영향과 내게 흘러온 원류를 이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루터 신학, 룬드학파 신학(Lundensian theology),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 토착화신학과 세속화 신학, 해방신학과 종교다원주의 신학 등도 내게 깊은 자극을 주었다. 이 신학들은 신학의 원류로서가 아니고, 여러 갈래의 지류로 내게 영향을 미쳤다.
    
나의 교육학의 원류

나의 교육학은 일반 교육학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나, 교육학의 학문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나는 슈프랑거(Eduard Spranger)의 삶의 형식에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고 체계화해가는 교육의 철학을 수용했다.
   교육은 인간의 삶에 대한 주형(鑄型) 작업이다. 그리고 그 근본 목적은 인간을 인간화하는 것이다. 요컨대 교육함이란 삶의 형식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기초하여 인간을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내게 영향을 준 원류의 하나는 듀이(J. Dewey)의 교육함의 근본 방법론인 “행하므로 배운다”는 실용주의적인 실천성이다. 실천함이 없이 탁상공론으로만 인간을 도야하고 교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볼노우 교수에게서 나는 삶의 철학이 어떻게 교육의 인간화 과정, 교육학적 인간학을 형성할 수 있는지 배웠다.  
   기독교 교육철학의 영역에서는 비르켄바일(E.J. Birkenbeil) 교수의 영향도 받았는데, 나는 그의 교육학을 무조건 수용한 게 아니다. 그의 기독교 교육학은 가톨릭 신학에 정초 되어있으므로 나는 그 내용보다는 교육학을 설정해 가는 방법론을 익혔을 뿐이다.
   이상의 진술은 나의 학문 형성의 직접적인 동인이 된 사상의 원류를 개략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학문화의 과정을 거쳐 가며 나는 철학, 신학, 교육학의 영역을 접목했다. 나의 학문에서는 이런 원류가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며 흐르고 있다. 이 세 학문의 순환구조, 삼학일체(三學一體)의 관계성이 나의 학문의 체계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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