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감리사가 설교 전 “여자 미니스커트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고 하였다. 본인은 설교를 짧게 한다는 표현 이었지만 그 자리가 성스러운 자리라 분위기는 썰렁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더욱 말에 신경을 쓴다. 잠언서는 “말에 실수가 없으면 곧 완전한 자라 하였다. 말을 잘하기는 쉽지 않다. 말은 긴 것 보다 짧고 알아듣게 표현하면 좋은데 간혹 잘못 전해질수 있어 늘 위험하다.
내 친구 고신일 감독은 설교제목이나 문자를 나눌 때 언제나 짧다 그러나 여운은 길다. 보통 충청도 사람을 향해 말이 느리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말은 느려도 행동은 빨라요 라고 변명한다. 그 예로 마라톤 이 봉주 선수가 충청도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오늘밤 카바레 춤추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오늘밤 “출 껴” 이 두자면 다 알아듣는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남긴 말씀이 “다 이루었다. 다섯 글자였다.
오늘 아침 주보작성을 하려고 성경을 열었다. 눈에 띄는 것은 가장 짧은 설교, “꼬끼오” 이다. “베드로야, 네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있다!” 베드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예수님은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끌려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서 따라갔다. 불을 쬐고 있던 그에게 한 여종이 물었다. “당신, 예수의 제자잖아요?” “난 예수가 누군지 몰라요(1).” 다른 사람이 물었다.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 맞죠?” “아, 아니 예요(2번).” 어떤 사람이 또 물었다. “당신, 갈릴리 사람이죠? 예수를 따라다니는 걸 봤어요.” “무슨 소릴 하쇼? 난 아니오!(3번).” 바로 그때였다. “꼬끼오!” 닭 울음소리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눅22:26), 베드로는 크게 통곡하며 울었다는 내용이다. “꼬끼오”가 중요 포인트다.
얼마 전 밖에 있는데 동기 강성규 목사가 전화를 하였다. 내용은 2월 마지막 주간 여동생 교회 부흥회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 주간은 지방회가 있는데 금년은 한주 앞당겨져서 승낙을 한 후에 기분이 좋았다. 누가 아무나 동생교회를 소개하겠는가! 그동안 늘 가까이 지냈는데 큰 흉은 잡히지 않은듯하여 보람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수첩을 보니 그 주간 화성 “하늘교회” 집회가 잡혀 있다. 나는 실수 한 것이 당황스럽지만 동생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혹 다른 날이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때가 창립11주년이라 꼭 그 주간이라야 한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렇다면 나하고 비슷한 분을 강사로 소개해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급한 소리로 “안돼요! 라고 말할 때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는 내게 그 주간 금 토 일이나 전주간은 가능하냐고 묻는다. 실은 전 주일은 오후에 지방회 성찬보좌를 해야 는데 한번 약속을 못 지킨 죄책감에 바로 된다고 승낙 하였다. 그랬더니 감사하다면서 부흥회를 위해 40일 작정 기도를 시작 하겠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목회시작 할 때 그 열심을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는 듯하였다.
지금도 내 귓가에는 안 돼요! 라는 그 음성이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부족한 종을 높여 주시고 귀히 쓰시는 구나! 생각하니 감사가 넘치었다. 오주님! 주님의 여종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게 하시고 금번 성회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오늘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