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가 목적인 사회, 교육이 목적인 사회
입시가 목적인 사회, 교육이 목적인 사회
  • 한승진목사(황등중 교목)
  • 승인 2020.06.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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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진목사(황등중 교목)
한승진목사(황등중 교목)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자녀는 수시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전형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국 후보의 자녀가 정성적인 입학 전형을 불공정하게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조국 후보자는 위법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민정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게 사실이었습니다. 수시전형·입학사정관제·의전원·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등에는 정성적 평가 요소가 있습니다. 정성적 요소가 있으면 불공정한 입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공정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정량적 시험 위주로 입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시험의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등 불공정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0인 절대적 공정성’을 ‘완전공정성’이라고 해봅시다. 우리나라 학생에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봅시다

“수학능력시험 수석, 서울대학교 수석졸업, 5급 공무원시험 공채 수석합격자, 전문직시험 수석합격자” 등의 답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완전공정 시험을 통한 정량적 점수와 ‘수석’에 의미를 둡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교육이나 업적이 아니라 공정한 입시에 따른 점수 자체에 있습니다. 반면 서구의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해봅시다. 이들은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폰 노이만, 케인즈, 마르크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의 대답이 많을 것입니다. 서구는 점수화가 불가능한 “정성적 업적”에 의미를 둡니다. 정성적 업적은 타인과의 자리 빼앗기 경쟁에서 이겨 더 나은 톱니바퀴에 배치되었다는 함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거나 더 늦어졌을 기술과 인식의 진전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발생시켰음을 의미합니다.

공교육의 최종목적은 사회의 기술과 제도 수준을 상향시키기 위해 연구자를 양성·선발하는 것입니다. “누가 좋은 대학·학과에 진학할지 여부를 완전공정 시험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공교육의 목적은 아닙니다. 시험은 정답이 있는 기존의 지식만으로 이루어집니다. 시험은 스포츠 경기처럼 현실을 단순화하므로 완전공정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 스포츠보다 복잡하듯, 기술과 제도를 실제로 발전시키는 일에는 시험 같이 단순한 정답이 없습니다. 사회는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고안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정교한 사고력을 가진 다수의 연구자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능력의 개발은 완전공정 시험에 고득점할 것을 요구하는 획일적 교육 방식으로 유도하기 어렵습니다.

유소년 축구단 선수 대부분은 훗날 축구선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축구단이 잠재적 축구선수의 자질을 발굴하지 못하는 방식의 체력 단련만 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훗날 연구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잠재적 연구자를 발굴하고 자질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방식의 획일적 교육과 공정한 평가를 반복 하는 것은 부적절한 면이 있습니다. 사회는 학생들이 연구자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험에 맞추어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사고방식을 장기간 요구하는 교육 방식을 유지했습니다. 이 교육이 잠재적 천재들의 재능을 죽여 능력 있는 전문직이나 고위공무원의 삶을 살게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정성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하는지 고민하던 어린 천재와 ‘정량적으로 몇 점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고민하던 어린 천재의 사고방식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서구의 공교육제도 및 대학제도의 평가·선발 방식에는 완전공정성이 없습니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을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사용했던 서구는 빠르게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중국과 조선은 공정한 시험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완전공정 시험을 숭상했습니다. 중국·조선은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해 도태됐습니다. 대학제도를 위시한 근대적 공교육제도는 고도의 기술 발전, 제도 발전을 견인했다고 여겨집니다. 대학제도는 완전공정성을 포기하고 구성원의 평가와 선발에 불공정 소지가 있는 자유로운 재량을 주어 성공했습니다.

설령 일부 불공정한 입학사례가 있더라도, 수시전형·입학사정관제·의전원·로스쿨 입시의 정성적 평가 방식이 처음부터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입학을 막기 위한 투명한 구조가 필요한 따름입니다. 지금의 사회 구성원들은 “누구나 완전공정 시험만 잘  보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한 처우는 완전공정 시험을 잘 보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다”라는 개념 하에, 완전공정 시험의 점수 향상을 위해 반복적으로 몰두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지위를 얻기 위해 완전공정 시험공부만을 반복하는 것은 개인의 지위 성취에는 도움이 되어도 사회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지위를 얻기 위해 정성적인 연구를 반복하는 것은 사회의 기술·제도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지위 취득을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소모적인 자리뺏기식 수험이 아니라 사회의 기술·제도 발전과 연계될 수 있는 연구의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완전공정 시험은 공정하며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통로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완전공정 시험의 장점과 정성평가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고려 가능한 방법 중 하나는 입시에서 전형적인 객관식 시험에 더하여, 비암기식 교양 논술 시험을 주요 평가요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과 과정 이외의 분야의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정성적 평가 요소를 가진 사람은, 교양 논술 시험에 우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논술 시험은 획일적·초인적인 수험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교과과정과 시험과 관련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 바보’를 비웃는 식의 왜곡된 교육 문화가 감소할 것입니다. 논술 능력은 적성 시험과 달리 학습·경험·훈련의 양에 상당한 영향을 받으므로 노력을 통한 계층 이동 통로의 역할도 가능할 것입니다. 또는 평가자 측에 정성 평가의 자유를 폭 넓게 주되,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가진 모든 평가 요소를 익명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입시 정보가 개인 정보로서 완전히 보호되어짐으로 얻는 개인의 이익보다, 투명성이 확보되어 사회가 얻는 이익이 우월하다고 보는 관념일 것입니다. 어떤 방안을 고안하든, 입시 제도를 구성할 때는 공정한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교육이라는 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제도의 발전에 필요한 교육을 유도하는 목적을 위해 입시라는 도구가 있다는 전제에서는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규모가 큰 종교는  우리 기독교(개신교)나 천주교나 불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학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랫동안 대학교란 종교를 신봉하고 추종하고 맹신해왔습니다. 해마다 수능 날엔 온 나라가 초긴장상태에 빠지고 수험생 부모는 어느 종교 신앙인이든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절실한 신앙인이 됩니다. 가정경계의 중요 지출 품목이 자녀의 대입사교육비입니다. 저도 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일에 중고등부가 시험 기간에 출석률이 낮아지고 고3즈음되면 교회출석률이 낮아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 중진들도 자녀를 교회 수련회에 안 보내고 자녀의 주일성수를 유예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우리 신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대입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대입제도에 대해 관심 갖고 함께해야합니다. 그저 내 자식만 잘 되면 되고,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하는 생각은 비신앙적인 자세입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을까요? 적어도 불행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한 방안은 없을까요? 이제는 정말 그런 논의를 진지하게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대학교라는 괴물 앞에, 입시지옥에서 울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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