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1]
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1]
  • 강춘오 목사
  • 승인 2020.12.09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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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사태, 정부의 '교회예배금지' 행정명령에 대한 비판

편집자 주: 기독교계를 깨우며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기독언론협회(회장 문병원)가 코로나19에 따른 한국교회의 예배 위기에 대해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1월 30일 ‘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을 주제로 4인의 전문가를 초청 제18회 기독언론포럼을 개최했다. 이에 본보는 이날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전문을 연속해서 전재한다.  

 

코로나사태, 정부의 '교회예배금지' 행정명령에 대한 비판

1. 한국 대형교회들의 삼자교회화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들었다. 조국 사태를 감싸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이후 매주 토요일 대정부 규탄집회는 계속되었다. 일명 '태극기 부대'가 그들이다. 그 중심에는 우파 한국교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소위 전광훈 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갈래의 기독교 우파 조직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마 정부 여당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 말 중국 무한에서 신종 코로나가 발생하였다. 연초 언론과 방역 전문가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국과의 왕래를 통제하지 않아 무한에서 시직된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순식간에 퍼졌다. 그런데 마침 그런 때에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부는 신천지를 모든 코로나19 진원지로 몰고 신천지 교회를 폐쇄했다. 그리고 언론은 신천지를 향해 사회악을 저지르는 집단이라며 규탄했다. 한국교회도 '역시 이단이 문제'라며 이 기회에 신천지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비난 대열에 동조했다.
그런데 8월 15일, 서울 광화문에 다시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광복절 집회가 열렸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그 집회에 참가한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따르고 있는 한국 기독교 전체를 향해 아예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고 교회예배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신천지 때 해 보니 한국교회도 통제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좌파 정부에 길들여진 언론들이 교회를 코로나19 진원지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밖에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안에서는 교인들끼리 서로를 탓하며 갈라졌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대면 예배파'와 '비대면 예배파'로 나뉘어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와중에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삼자 교회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삼자교회화란 말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삼자(三自)가 아니고,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는 중국의 관제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중국의 삼자교회(三自敎會)는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통제 아래 교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허울 좋은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삼자 교회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어떠한 부당한 간섭이나 탄압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 교회가 과연 보편적 기독교 교회론에서 볼 때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교회론과 바른 예배 전통을 담보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2. 정부의 '예배금지' 행정명령은 옳지 않아
 정부 여당은 전국 6만3천여 개에 이르는 한국교회 가운데 극히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을 이유로 교회가 마치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나 되는 양 행정명령을 발동해 교회의 기본 사명인 주일예배를 금지시켰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사실상 그 존재 가치가 없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 하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예배금지를 발동한 정부의 행정명령은 코로나19 정국을 빙자한 기독교에 대한 억압이 분명하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한시적인 문제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 예배 문제를 통제하려면 먼저 교회와 협의를 거쳐서야 옳다. 여기에는 심각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여름에 해수욕장 등을 풀어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자 그 책임을 교회에 전가한 것이다. 전국에 교회 숫자보다 더 많은 매장을 가진 커피숍이나 식당 등에서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같은 업종의 전국 매장들을 모조리 문 닫게 한 일은 없다. 다만 확진자가 발생한 매장이나 식당을 일정 기간 문 닫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정부의 방역지침을 철저히 따르고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전국의 수 많은 교회들까지 모두 일괄적으로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는가 ? 뿐만 아니라 행정당국은 그 명령을 앞세워 교회 예배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주일 날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나서서 무단으로  교회예배를 방해하고 감시한 것이다.
정부는 유독 기독교에만 감시를 강화했다. 우리사회는 다종교사회이다. 다종교사회에서 정부가 어느 한쪽을 두둔하거나 또는 차별화 하는 모습이 드러나면 곧바로 종교 간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 갈등은 정권에 부담이 되고 사회를 분열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자체는 국제사회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교의 자유가 심대히 훼손되고 기독교에 대한 탄압적 '방역정치'가 개입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보수 우파 교회들의 태극기 집회와 광화문의 반정부 시위를 보고 놀란 나머지 행정편의주의로, 마치 교회를 코로나19 진원지로 몰아 일방적으로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지키는가 아닌가를 보기 위해 교회 예배를 감시했다. 이는 독재적 발상에서 오는 교회를 무시하고 탄압하는 행태로 밖에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교회에 대해 예배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일제 강점기나 중국 공산당과 같이 어떤 이유가 생기면 결국 교회 해산명령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일제는 예수 재림사상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성결교와 재림파에 대해 교단해산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계는 교회에 대한 일괄적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지 말고 정부에 대해 한 목소리로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문재인 대통령이 방역을 핑계로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바로 헌법의 기본권과 종교자유에 대한 위협임을 국민들과 교인들에게 각인시켰어야 옳았다. 마치 정부의 방역지침에 이의를 제기하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태도인양 몰아가는 방역정치 간계에 교회지도자들이 입도 벙긋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동안, 한국교회는 국가 명령 통제체제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최소한 예배금지 행정명령이 옳았는가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봐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정부가 일방적으로 '예배금지'를 말할 수는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3. 종교자유의 원칙
우리나라 헌법 제20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종교의 자유는 내가 무엇을 믿는 내심상의 자유와 그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외면상의 종교적 행위의 자유로 구분된다. 내가 무엇을 믿든 내심상의 종교의 자유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이지만, 외면상의 종교적 행위는 예배의 자유, 종교적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선교의 자유 등이 있는데, 이 종교적 행위의 자유는 외부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사회적, 비도덕적, 비종교적 행위로서, 정당한 종교의 자유행사로 볼 수 없을 때 제한될 수 있는 것이지, 정당한 종교행위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가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어떤 특수한 이유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형법 등 일반법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법에 의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제한될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환경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발상 자체가 종교에 대한 억압이고 탄압이 되는 것이다.
인류가 현대사회의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기까지는 간단치 않은 역사를 거쳐왔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연방의회는 국교화나 종교의 자유행사를 금지하는 입법을 할 수 없다"는 선언이 나타날 때까지, 종교는 국가권력에 이용되어 왔고, 또한 수많은 인명이 종교 문제로 희생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에도 종교를 탄압하거나 악용하는 국가권력은 많이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 공산주의를 기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나라나 북한 같은 독재 세습국가는 아예 그 권력이나 이념이 종교를 대신하고 있다.
종교적 자유행위가 공공의 시설을 파괴하거나, 국가에 중대한 손실을 끼치거나, 보안법 등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정부가 행정명령이란 이름으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자유행위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백보 양보하여 정부의 방역지침을 철저히 따랐음에도 어떤 교회에 주일예배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면, 그 교회를 상대로 철저한 방역을 하거나 일정 기간 모임을 제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럴 때라도 정부는 그 종교집단의 입장에서 먼저 협의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일방적인 행정명령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분명한 것이다.


4. 지금 한국교회는 정부 통제체제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 하노니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따르며 기뻐하고 큰 소리로 찬양하며 환호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단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자들을 책망하라는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대해 예수님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요즈음 우리 사회 현실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도 바라고 고대하던 메시야의 현현을 보고도 당시 유대사회의 지도층이요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환영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들의 환호를 단속하라고 요구했다. 그와 같이 작금 우리사회 지도층과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교회에 대한 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키는 커녕, 그래도 '벙어리 개'는 되지 않겠다며 나서는 일부 인사들을 향해 오히려 돌을 던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기독교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전국에 6만 개의 개 교회와 16만여 명의 안수받은 목사, 수 십만 명에 이르는 중직자들이 있다. 여기에 전국 70여 개의 신학대학에 언필칭 신학자만 1천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 받고 헌법상의 종교 자유마저 유린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소위 스스로 정통성을 가졌다는 그 잘난 지도자들은 다 어디 갔는가? 정통성은 고사하고 어디서 무슨 신학을 배웠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일부 목사들이 나서서 소리 지르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돌들이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한국교회의 잘난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교단의 대표성 가진 인물들이 나서고, 대교단들이 나서고, 신학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향한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당당히 국민 앞에 드러내 놓고 항의하고 규탄해야 한다. 
물론 한국교회에도 진보와 보수 간에 정치적 견해가 갈라져 있음을 잘 안다. 이는 분단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건국 후 70년 동안 한국 기독교는 사회적 혼란기마다 중심을 잡는 일에 앞장서 왔다. 국민들 또한 대체로 그러한 한국교회의 활동을 신롸해 왔다. 그런데 작금에는 왜 이 위중한 시기에 교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코로나19 방역을 앞세워 교회의 예배조차 금지시키는 이 무도한 당국을 향해 어떤 소리도 못하는 '벙어리 개'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는 한국교회가  정부의 통제체제에 길들여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교회의 기본사명에 대한 행정당국의 억압에 대해 항거하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종교의 자유는 곧 예배의 자유이다. 중세에 이단으로 몰려 죽은 수많은 순교자들은 모두 예배의 자유를 요구하다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또한 종교개혁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회복에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예배가 당국에 의해 희롱 당하지 않겠끔 한국교회가 적극적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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