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3]
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3]
  •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 승인 2020.12.11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교회예배 회복의 긴급성

지난회에 이어서..

2. 개혁교회 예배의 특징

  개혁교회(Reformierte Kirche)는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종교개혁자 칼빈과 츠빙글리의 신학적인 입장을 추종하고 지키는 전통에 선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영국에서의 개혁신학의 전통은 장로교회로 형성되었다. 이들의 후예들이 신대륙인 미국에 건너가서 미국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전통을 형성하였고, 또한 미국 장로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19세기 말엽(1884-1885) 선교사의 파송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와 뿌리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개혁교회는 그 신학에 있어서 몇 가지 특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학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학적인 배경에 근거하여 개혁교회의 예배를 특징짓게 하고 있다.

  (1) 말씀 중심 예배

  개혁교회는 기본적으로 말씀 중심으로 예배를 전제한다. 말씀 중심이란 기록된 성경 말씀을 근거한 것이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안에서 그의 뜻을 나타내신 그 말씀을 전제하여 예배를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강조되고 제시된 예배의 성격이다. 그들은 예배의 근거를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었다. 그러한 전제에서 시도된 것이 예배에서의 설교의 부활이었다.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설교를 예배의 중심에다 두었다. 그 때문에 말씀 중심 예배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에서 설교되고 전파되는 말씀의 역사를 전제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말씀 중심의 예배는 설교 하나에만 한정하지 않고, 예배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예배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성육신 사건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게 된 중요한 예배신학적인 의미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의 예배에서 성경말씀은 모든 예배순서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배의 모든 순서들은 말씀의 직접적인 표현이거나 간접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례까지도 성경말씀의 전제에서 사용되어야 할 의식이지, 말씀 없이 독자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혁교회의 예배로서 그 특징은 역시 말씀 중심 예배이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중심의 예배로서 개혁교회의 예배는 설교 하나만을 생각하던 역사적인 이해에서 예배 전체가 말씀에 기초하는 예배신학적인 관점의 새로운 통찰이 요구된다.

  (2)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

  이것은 예배에서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 주는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즉,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예배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삼위의 하나님을 부르고 높이며 찬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혁교회의 예배는 예배가 진행되는 시간에 개인적인 행동을 삼가고, 진지한 태도와 공동적인 모습으로 예배의식을 따라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인지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리는 태도를 가진다. 즉, 예배에서 인간을 찬양하는 일이나 인간 개인을 높이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표현하는 일을 신중하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구미 지역의 개혁교회 예배 순서에는 예배가 시작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삼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나 찬송을 부르고, 그 다음에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라고 찬양하며 기원한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예배의 모습은 개혁교회만이 취하는 태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기본적으로 삼위의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을 그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처음부터 잘 지켜온 교회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을 높인다는 것은 예배의 시작 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전체, 즉 모든 순서진행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한 태도로 삼위 하나님의 주권(다스림)이 인정되고 높여지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열린 예배’, ‘찬양과 경배’란 새로운 예배형식의 도입되어 전통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보다는 예배참여자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려는 의도로 예배가 기획되고 실천되는 모습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주권을 찬양하는 모습을 간과한다면 이것은 예배의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라 할 것이다. 물론 기존의 예배가 하나님만을 높이고 경배하는 일이 지나치게 예배인도자에 의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배참여자들의 주님을 향한 감정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던 점이 예배 표현방식과 관련하여 개선점으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의 개선이 기도와 찬송 부르기와 음악적인 도구 적용에 집중되고 있는 모습은 또 하나의 질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예배의 자유적 성격

  예배의 자유적 성격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예배의 순서를 법적인 의미를 전제하여 변경 불가한 것으로 강조한 것에 비하여, 기독교의 예배는 불변적인 법의 의미로 보지 않고, 변화 가능성을 전제하여 그 특징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말하면 예배의 자유적 성격은 예배의 내용을 담아 표현하는 예배 형식과 의식에 의존하되 그 의식에 전적으로 매이지 아니하는 자유적 성격을 지닌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예배가 의식 중심인 데 비하여 우리의 예배는 복음에 근거하고 있음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에 예배순서의 개혁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였는데, ‘오르디나리움’(ordinarium)과 ‘프로프리움’(proprium)의 원칙에 근거하여 로마 가톨릭의 예전의 순서를 부분적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오르디나리움’이란 예배의 순서에 반드시 있어야 할 변경할 수 없는 순서를 뜻하며, ‘프로프리움’이란 그 어떤 목적을 위하여 변경할 수 있는 순서를 말한다. 이러한 원칙 적용 때문에 루터의 예배 개혁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배의식적인 면에서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것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성찬신학에 있어서도 루터의 공재설(共在說)은 화체설(化體說)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칼빈이나 츠빙글리는 완전히 가톨릭교회의 예배의식을 초월하면서도 역시 형식을 중히 여기는 예배로서 비교적 자유적인 예배의 실현을 관철시켰다고 본다. 더욱이 로마 가톨릭교회가 예배의 순서를 불변의 법칙으로 보는 시각에서 예배의 순서는 법적인 의미보다는 언제나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예배형식에 있어서 자유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예배의 자유적 특성은 결코 예배순서를 무시한 무질서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바른 예배의 실천

  (1) 예배의 공동체성

  예배의 공동성은 혼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교회란 원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이 모여 공동체를 이룸을 그 본질로 한다. 그와 같이 교회의 예배는 공동체와의 만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만남은 이제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에로 나아간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공적이며, 공동적인 만남을 진행하는 예배에는 예배 인도자에서부터 예배의 참여자인 회중, 사회자, 설교자, 성례인도자, 기도자, 찬양대 지휘자, 반주자, 예배 안내자, 헌금 위원 등 여러 봉사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그 역할들이 어우러질 때 예배의 공동성은 거기서 들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순서에 따라 예배가 진행될 때에 참여한 회중은 순서 담당자들의 역할과 함께 행동하고 함께 움직이는 일치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이러한 공동적인 행위가 일치된 모습으로 진행되는 시간에 개인적인 행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때, 예배의 공동성은 흐트러지게 된다.
  현재 우리의 예배 가운데 예배의 공동성이 상실되거나 균형을 잃을 때가 있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행동해야 하는 시간에 개인의 행동이 두드러지게 반영됨으로 문제가 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회중들은 정한 예배의 시간 전에 예배의 자리에 와서 예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예배가 시작된 후, 한참 진행되는 시간에 예배실에 들어오는 일, 또한 예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미리 예배실을 나가는 행위, 예배 인도자의 지나친 강대상 앞에서의 역할(시작에서 끝까지 서 있는 모습), 특별히 회중이 ‘다같이’ 찬송 부르는 시간에 사회자는 혼자 마이크를 사용함으로 회중의 찬송소리를 능가하는 모습 등은 공동성의 균형을 깨트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헌금한 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소위 축복기도를 행하는 모습, 대표 기도자의 역할에서 지나친 개인적인 것이거나, 감정적인 내용을 기도하는 모습 등도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개인의 역할에 있어서 필요 이상의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 외에 예배 중에 성도 개인간의 인사를 나누는 일은 예배의 공동성을 방해하는 일로 여겨진다. 최근에 한국교회에는 예배가 한참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방향을 인간과 인간에게로 향하게 되는데 이것은 예배의 근본에 맞지 않다. 이러한 모습도 실제로는 예배의 공동성,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시키는 모습으로 판단한다. 예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며, 진지하게 하나님과의 대화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
  만일 회중 간에 친밀감을 더하기 위하여 서로 인사를 해야 한다면 예배 시작 전이나 끝마친 후에 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개인의 행동이 예배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예배의 공동성을 방해하는 일은 지양하도록 해야 한다.

  (2) 예배의 조화성

  예배의 공동성과 말씀 중심 예배에서 밝혔던 것처럼 예배 순서 각각은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며, 그의 인자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며,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회중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행위로서 그 전체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순서가 더 기치 있고, 덜 가치 있다는 통속적인 의미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예배순서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의 직․간접적인 표현으로써 통일성을 이루면서도 개개의 순서는 독립성을 가진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화음처럼 표현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Doxologie)을 드러내는 조화로움을 뜻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역할이 잘 준비되고 다듬어진 모습으로 진행될 때,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의 조화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예배의 순서 가운데 한 순서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른 모든 순서들을 한 순서에 종속시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설교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설교 전에 모든 다른 순서를 다 진행하고, 설교를 마지막 부분에 두어 찬송과 축도로 예배를 마치게 하는 예배이다. 이것은 예배의 한 순서를 중히 여기고 다른 순서들을 거기에다 종속시키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예배의 조화성은 그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지배하여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역할들이 서로 균형 있게 진행되어 예배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과 거룩함의 질서가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뜻에서 예배사회자나 교회예배의 책임자는 예배가 더욱 준비되고 다듬어진 신적인 품위를 지닌 것으로 하나의 놀이나 극의 재현처럼 각자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 예배를 실제화 하도록 기획해야 할 것이다.

  (3) 바른 예배의 이해

  예배(禮拜)란 한자로 표기하여 ‘예를 갖추어 하나님께 절 한다’는 말로 이해한다. 구미교회의 표현을 빌리면, 영어에서 God’s Worship-Service로 명명되며, 독일어에서는 Gottesdienst로 불려진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경배-하나님의 봉사’(섬김)란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질문되는 것은 구미교회가 예배를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는 인간의 섬김, 또는 인간의 봉사, 인간의 일 등으로 부르지 않고, 왜 그 반대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예배의 본질적인 의미 때문으로 여겨진다. 예배는 인간의 신을 향한 그 어떤 행위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그 중심에 두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행위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행위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섬겨주신 ‘하나님의 일’(Opus Dei)로 보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행위에 인간들이 예배에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를 찬양하는 인간의 반응이 예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는 인간이 예배에 나아가 하나님을 높이고, 그를 찬양하는 행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인간의 봉사(섬김)나,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행위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일(Opus Dei)로 부르게 된 것이 기독교 예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적인 이해는 인간들의 정성과 노력을 통하여 신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이방제사나, 유대교의 제사와도 다름을 보여주는 독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Opus Dei)’로 이해된 기독교 예배는 초대교회에서부터 말씀과 성찬의 두 가지 내용을 예배의 중심 요소로 삼았다. 말씀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구약성경과의 관계에서 밝히는 일로써 증거가 중심이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구속사건(십자가의 사건)의 실제적인 모습으로써 성찬은 일상에서의 제자들과 나누었던 식탁의 교제, 최후의 만찬의 모습을 그 전형으로 삼아 예배의 중심적인 사건이 되게 하였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성찬의 모습을 예배의 중심에 가져오면서 리투르기(Liturgie)란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말은 공동체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공적인 직무수행을 가리키는 말로, 특별히 수행된 종교적인 제사의식과 관련하여 고대 그리스의 언어 사용에서 빌려온 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70인경(Septuaginta)에서 예전적인 의미는 강화되었고, 리투르기는 제의적인 숭배행위에 대한 전문용어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지역의 교회에서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는 감사의 만찬(Eucharistiefeier)을 표현하는데 도입하여 사용하였다(눅 1:23).
  한국교회는 요한복음 4장 23절, 또는 24절에 표현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 예배는 예배자들이 정성을 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모두 동반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인간적인 최대의 노력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 정성과 노력을 수반해야하는 인간적인 행위를 말한 것인지는 성경해석상 질문된다. 왜냐하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한 말은 원문과 대조하면 부적절한 번역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예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예배의 주도권은 결코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때문에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이 행하신 주권적인 구원행위를 전제하여 하나님의 일(Opus Dei)로 표현하였고, 그 개념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봉사(섬김)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예배 이해는 이 점에 있어서 개념적으로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