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를 길러야
호연지기를 길러야
  • 한승진 목사 (황등중 교목)
  • 승인 2021.02.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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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浩然之氣). 천지간에 넓게 퍼진 올바른 기운이라는 뜻입니다. 시작은 작은 샘물처럼 미약합니다. 그러나 7월의 장마처럼 일순간 거대한 홍수를 일으키고는 어느새 말라버리는 그런 물줄기는 아닙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의 샘은 땅 속 깊은 물골에서 길러져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그것이 냇가를 이루고 강을 이뤄 마지막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는 생명의 위대함입니다. 호연지기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매시매초 자신 안의 하나님께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에게 벌어지는 은총의 기적입니다.

맹자는 이를 하늘로부터 받은 ‘의로움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쌓아가는(집의(集義)’ 행위를 통해 몸에 익숙해지는 기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사람은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부동심(不動心)입니다. 이는 누가 뭐라 하던 제 멋대로 하는 고집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제 몸으로 살아내서 스스로 욕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결같은 마음, 일심(一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제 욕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욕심이 채워지면 우쭐하고,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울해 합니다. 도무지 제 인생에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짚단에 불이 붙듯, 자기만족의 화염에 열광하다 일순간 타다 남은 재로 끝나는 인생입니다. 뿌리가 약하니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은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게  됩니다. 경외(敬畏)란 공경하여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식한 자들이 하나님께 의탁하는 거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이 어찌 한가할 수 있을까요? 자연히 자신을 살핌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경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질서 지웁니다. 하나님의 소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질서지우는 것. 이것이 바로 예(禮)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를 형식적인 절차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예란 하나님의 소리를 자신의 질서 있는 삶을 통해 표현해 내는 행위입니다.
 
주자(朱子)는 그래서 예를 ‘하나님 뜻을 질서 있게 풀어놓은 무늬, 천리지절문(天理之節文)’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랑은 자연 만물을 통해 언제나 드러나고 또 우리가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위대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응답과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 낼 때 그 위대함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의 사랑 표현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한순간 사랑하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사람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하고 적절할 때 도움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무분별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무늬를 이뤄 예를 갖추는, 그렇게 그 사람을 존중하면서 사랑할 때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仁)이 마땅한 방식(義)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예(禮)입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해 조정하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자신 스스로도 질서가 이뤄지지 않아 인생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을 제단하고 참견하는 것만큼 무례한 것이 또 있을까요? 우선 자기 자신이 세워진 다음, 자신의 삶이 질서 지워진 다음에야 우리는 사랑의 준비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질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표현 방식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외적인 우아함뿐 아니라 우리 안에 샘솟는 하나님의 기운을 지속적으로 끌어냅니다. 이것이 몸에 배면 온 몸에서 그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연지기입니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일에 참견’하려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듯 여겨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오랜 기간의 인내와 실천 없이 그 때 그 때의 정세만을 보고 갑론을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의미를 깊이 통찰하지 않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는 따위의 외적인 모습에 천착합니다. 내면에서 울려오는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은 허무합니다. 아름다운 교회의 외적인 형태에만 감탄한다면 쓰러져 간 잔재 위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나 초라한 최후에 대한 슬픔뿐입니다. 세속의 흥망성쇠에도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맹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매일의 삶에서 믿음에 근거한 의로움을 실천할 때 몸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믿음은 넓게 퍼져 나갈 것이고 우리를 비난하는 자들, 혹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호연지기이며 부동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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