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
김제 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
  • 신형환 이사장(성숙한 사회연구소/경영학 박사)
  • 승인 2022.05.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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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멋 따라 맛 따라

지난해 말 경에 선교사 파송을 받으려고 3박 4일 일정을 전주풍남관광호텔에서 머무르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다녀왔다. 신흥목장회(신흥 출신 목사와 장로 모임), 전성교회 3부 예배와 임직식을 참석하고 중간에 지인을 만나거나 다시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았다. 아내는 여동생이 수술을 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먹고 간호하며 집안 정리를 돕고 있어서 나와 동행하지 못했다. 항상 같이 다니다가 혼자서 여행을 하여서 아쉬웠다. 

김제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에 대하여 글을 쓰려고 한다. 아침 일찍 숙소 근처에 있는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인 삼백집에 가서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삼백 그릇을 준비하여 삼백 그릇만 팔아서 삼백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가 신흥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학교 식당에서 매일 3끼니를 콩나물국밥을 먹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한때는 콩나물국밥을 입에 대지지도 않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어떤 음식보다 콩나물국밥을 잘 먹는다. 

7시에 삼백집에 갔더니 손님들로 붐벼서 주문 후 15분 정도 기다렸다 맛있게 먹었다. 허경만 작가의 『식객』을 보면 삼백집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 내용이 있다. 삼백집에서 석이김치를 얻어가지고 북극 탐험과 히말라야 등반에 가서 잘 먹었다고 나온다. 또한 한 노인 여성이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와서 한 달 이상 콩나물국밥 2인분을 시키며 남편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도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며 식사를 마치고 김제벽골제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저수지인 사적 제111호 벽골제는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국가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코로나 19 발생 이전에는 매년 추수를 하는 시기에 “지평선축제”를 개최하는 장소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나도 전주에 살았을 때에는 가족과 함께 지평선축제를 즐기려고 매년 찾은 추억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 김제평야와 최고의 지평선을 보면서 체험행사에 참여했었다. 이번에는 지평선축제를 볼 수 없어서 벽골제의 역사적 의의를 공부하려고 했다. 벽골제는 오천년 농경사의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고대농업사와 정치경제, 토목공사와 관개수로 축조, 사회현상을 알고 싶었다.

김제시는 1975년 벽골제를 부분적으로 발굴을 시작하여 1980년 유적정화공사, 1990년 개발위원회 구성 및 추진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벽골제단지에는 벽골제와 농경문화를 대주제로 전시 및 자료수집과 연구조사를 진행하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김제를 발원지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 아리랑의 자료를 전시하는 아리랑문학관, 그리고 전북미술계의 거목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나상목선생의 벽천미술관과 김제 우도농악관 등 문화시설과 각종 야외전시물이 있다. 사적 벽골제와 여러 종류의 박물관은 김제의 지역정체성 및 문화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문화공간과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지평선축제는 지방자치단체 축제 중에서 가장 우수한 축제로서 관람객이 가장 많다. 김제평야에서 생산하는 쌀이 강원도 전체에서 생산하는 양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논 두럭에 곱게 핀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어 보기에 심히 좋다. 또한 축제 장소에 조금 떨어진 심포항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을 먹는 즐거움도 정말 좋다.

작가 조정래가 쓴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읽으며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민족의 비극인 일제식민지와 6.25 전쟁의 실상을 소설을 통해 한을 느끼며 약소국가의 서러움을 탄식한 적이 있었다. 나는 오늘 아리랑문학관에 와서 소개해 놓은 글을 보고 인용하여 함께 나누려고 한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 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싶었다.’로 시작 되는 대하소설 ‘아리랑’ 무대는김제, 만주, 하와이, 일본이 있지만 발원은 김제다. 소설이 말하는 넓은 들이란 지평선이 보이는 ‘징게맹갱외에밋들’ 금만평야를 이름하는 것이고, 방영근과 지삼출과 감골댁이 걷는 길은 그 들녘을 가로질러 정읍 화호에서 김제를 거쳐 군산까지 직항하는 제1호 신작로다. 이 기념비적인 소설의 위업을 담은 아리랑문학관은 김제와 화호 사이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했다. 김제시는 폐교를 활용하고 앞부분에 새 건물을 지어 작가 조정래와 그의 문단 지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관 개관식을 가졌다. 그날도 바람이 거세었다. 작가 조정래는 성긴 머리카락이 쉴새없이 나부끼는 것에 개의치 않고 감회에 젖었었다. 바람을 느낄 수 없는 날 조차도 이곳에서는 사뭇 다르다. 봄날 아리랑문학관 여행의 필수품은 목을 감쌀 수 있는 스카프다.

1층 로비에서 직선으로 몇 걸음 내딛으면 제1전시실을 만난다.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육필원고지가 방문자를 압도한다. 2만장의 원고지는 워드 프로세서로는 느낄 수 없는, 작가의 혼에 다름 아니다. 1전시실은 아리랑이 탄생하게 된 구한말의 국내외 정세가 소상하게 설명됐다. 또 김제가 일제강점기 식량수탈의 표적이 됐던 이유를 알게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일인지주 하시모토는 실존인물로 그의 사무실이 최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작가가 아리랑을 쓰기 위해 여행했던 기록과 스케치가 전시됐다. 작가는 10년 넘게 이 소설에 매달렸는데 중국에 2회, 미국에 3회, 동남아 3회, 러시아 2회, 일본 3회 여행하여 지구를 세바퀴 이상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아리랑은 가장 ‘넓은’ 소설이라는 이름도 듣는다. 제2전시실은 소설 아리랑을 위한 공간이다. 매일 집필계획을 세우고 기록한 진척상황을 달력과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앉았던 의자와 탁자, 만년필 등 집필실이 재연됐고 즐겨 입었던 무명한복이 여러 잡동사니와 함께 전시돼 있다. 

3전시실은 그의 사적인 내력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부친 조종현은 순천 선암사에 출가한 승려이자 시조시인이었다. ‘태백산맥’의 남도 묘사는 순천에서 자란 그의 기억이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부인 김초혜시인과의 연애시절 자취도 있다. 연인에게 선물하려고 밤새워 그렸다는 펜화 링컨초상에는 “행여 서러울까하여 지침 없는 하늘을...1964.11”이라는 작가의 사인이 있다.

나는 조정래 작가와의 만남이 전혀 없었지만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통해 충분히 만나고 교감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역사의식이 있고 역사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소화하였다고 생각하며 오전 시간이 아위었다. 부안에서 절친 신영근 원장과 김용수 세무사와의 점심 약속 시간을 지키려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안으로 향하였다.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 올 가을에 지평선축제가 열리길 간절히 소망했다. 농부들이 신명나게 수확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농악에 몰입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아리랑 문학관을 나와 부안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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