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서 공간으로(2)
시간에서 공간으로(2)
  •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시인)
  • 승인 2022.07.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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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여름의 열기 속으로

알리는 말씀: 이 여행기는 1965년 7월 26일(월)부터 8월 30일(월)까지 재일교포 김신환 목사님과 함께 한국을 일주하며 기록한 여행기입니다. 기록물 일부를 분실하여 며칠 분의 여행기가 빠졌습니다.

7월 27일 화, 흐림-비-흐림-맑음/ 설악산 신흥사 한일여관

 

여행하며 사용한 지도 (대한여행사, 1965.3.20. 발행)
여행하며 사용한 지도 (대한여행사, 1965.3.20. 발행)

새벽을 여는 예배당 종소리

  여인숙 창호지 문으로 동틀 녘의 불그레 한 빛이 슬그미 들어오고 있었다. 붉은 벽돌 이 층으로 된 대진 감리교회의 종탑에서 낭랑히 퍼져가는 맑은 종소리, 새벽 기도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자리를 벗어났다.
  오늘의 여행 일정을 생각하며 서둘러 어촌의 풍경을 보러 김신환 목사님과 함께 바닷가로 나갔더니, 벌써 포구에는 오징어잡이 나갔던 배들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싱싱한 오징어 거래가 빈번하다. 두름 단위로 거래하는 부둣가 선창 마당의 정취에 젖어 한참 동안 저들의 생태를 주시해 보았다.
  저들에겐 바다가 삶의 터전이므로 바다에 대한 경외심은 일상생활 속에 신앙으로 자리잡혀있었다.

초도리의 여름 바다와 하늘

  아침 밥상을 물리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동네 어린아이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고, 그를 따라 초도리를 향해 걸어갔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한참을 걸어 닿은 곳이 초도리 해변이었다. 그 앞으로는 갯물이 고인 듯한 넓고 잔잔한 바다가 바람결에 일렁이며 반짝이고 있었다. 모래언덕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풀잎 그림자와 솜구름이 맑고 푸른 물결 위에 그려가고 있는 한 폭의 수채화는 인적이 끊겨 적막한 이곳에 자연의 순수한 숨결을 덧칠해가고 있었다. 물가 숲에는 폐선인 듯한 쪽배 한 척이 얹혀 있었고, 한 척은 물가에 외로이 서 있는 노송에 묶여 흔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주변을 끼고 바닷가 바위 밑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야영객이 쳐놓은 것으로 보이는 A형 텐트만 하나 있을 뿐, 인적이 끊겨 쓸쓸함만 고적히 잠겨있었다. 맑고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벌과 파란 하늘이 서로 맞닿은 곳, 천연의 순결한 멋을 드러내고 있는 듯한 이곳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 아름다움에 잠겨있는 것은 고독과 그리움과 내일에 대한 빛 속의 꿈같은 미묘한 어떤 것이며 태고의 예술적 감성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초도리에는 이화여자대학교 하계휴양소(이대 별장으로 불리기도 함)가 있는데, 아직 학생들이 도착하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적막에 휩싸인 숙소는 괴괴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료한 시간의 꼬리를 이어가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듯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7월 27일 여행기(1-3쪽)
7월 27일 여행기(1-3쪽)

화진포 해변에서

  초도리 해변 남쪽 어촌, 화진포는 가슴에 호수를 품고 있는 지형이다. 거기에 경계초소 같기도 하고, 휴양시설 같기도 한 군부대 막사가 송림에 가려져 있었는데, 그곳으로 군용차량과 병사들이 가끔 드나들 뿐 눈에 띌만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 앞 돌기 된 산등성 허리에 한 채의 건물이 외로이 버티어 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개조되어 관람객을 받고 있으나 6·25 전쟁 이전에는 김일성 별장이었다고 한다. 그 마주 보이는 곳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민족 분단을 가시화한 상징물 같은 이 두 건물을 보며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3개월 동안 인민군 치하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8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집 근처와 동대문, 종로 거리에서 많은 시체와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주검에 대한 무서움에 몸서리를 치곤 했었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해변에 민족의 아픈 역사가 잔흔처럼 남겨져 있다니…

화진포 해변에서
화진포 해변에서

영랑호에서 배를 저으며

  날씨는 또 변하여 비가 내린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우리는 빗줄기에 몸과 마음을 얹혀가며 한길 가에서 속초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차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은 비에 젖어 초췌하게 보였겠으나 기분은 새로운 곳으로의 동경에 벅찼다.

  오후엔 속초에 내려와 시내 구경을 한 후 근처 보광사(普光寺) 경내를 둘러보고, 영랑호에서 뱃놀이하며 여유로운 짬 시간을 즐겼다. 소나기가 걷힌 하늘은 맑고 바다는 더욱 푸르렀다. 호수의 잔물결에 저녁 햇살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녁 8시 막차로 속초를 떠나 설악산에 내리니 밤공기가 차가웠다. 한일여관에 여장을 풀고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정조흥, 김용화, 이종헌, 김은동에게 엽서를 보내려고 몇 자씩 쓰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밖이 소란하여 깨어났다. 옆방에서는 밤이 깊었는데도 기타 반주로 떠들썩하다. (196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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