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서 공간으로(6)
시간에서 공간으로(6)
  • 한숭홍 (장신대 명예교수/ 시인)
  • 승인 2022.07.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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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여름의 열기 속으로
경포대-강릉-월정사로 가는 지도
경포대-강릉-월정사로 가는 지도

7월 31일 토, 맑음/ 월정사, 절에서

월정사로 가는 산길 굽이굽이

  오전에는 경포호와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뜨거운 열기에 몸과 마음을 섞으며 인상을 몇 장 스케치했다. 오늘 여정의 종점은 오대산 월정사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강릉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월정사로 들어가는 마지막 버스가 오후 4시에 있다고 행상하는 할머니가 알려준다. 그때까지 3시간의 공백 시간을 강릉에서 보내야 했다. 날이 무더워 빙과점을 찾아다니다 골목 구석진 곳에서 빙수 가게를 발견하니 사막의 대상들 생각이 문득 난다.

  대관령으로 가는 차가 산허리를 굽이돌아 올라갈 적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초장 같은 밭과 초가 몇 채씩 간간이 스쳐 지나가곤 하는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풍경, 내겐 낙원인 듯 평화로워 보인다.
  차가 한참을 달려 꽤 높은 곳에 이르렀는데, 맥주회사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표시한 안내판이며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스키어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험준한 산악지대이면서도 능선이 완만히 흘러내려 밭과 이어져 있고, 능선과 능선 사이도 평탄하게 이어져 있어 외국 잡지나 포스트 카드에서 보곤 했던, 설원의 스키장을 연상케 한다. 

❶필자와 차장 아가씨 ❷경포대 누각에서 ❸경포대 누각에서 스케치
❶필자와 차장 아가씨 ❷경포대 누각에서 ❸경포대 누각에서 스케치

   차가 진부령에서 다리도 없는 개울을 몇 번 가르며 건너더니 숲이 무성한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산에서 벌목한 아름드리 목재들이 트럭에 실려 있었다. 그 옆에는 목피(木皮)가 벗겨진 나무들이 쌓여 있었다. 개울 앞까지 다다르니 그 이상 차가 올라가지 못한다고 목재를 실은 트럭 운전사가 알려준다. 이번 장마로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기념품 가계가 하나 있고 그 뒤로 너와집 몇 채가 있다. 앞으로 흘러가는 개울에는 장마로 불어난 물이 넘실거리며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사방은 적적할 만큼 고요하다. 개울물 소리와 새소리만 생명의 숨소리를 들려준다. 

5) 경포 바다 풍경 스케치
경포 바다 풍경 스케치

  차도가 끊긴 산길을 2km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숨이 막힌다. 월정사 가는 길을 동네 어린아이에게 묻고 강행군했다.
  깊은 산속이라 해가 빨리 떨어져 낙조에 금강연 바위 위에 위태롭게 솟아있는 아름드리 고목 사진 몇 장을 찍고 계곡 아래 개울가를 거슬러 올라가니 해는 벌써 지고 발아래로 어둠이 다가선다. 이곳이 지난달 고려대학교 학생 여러 명이 장마로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비애의 현장, 수목도 눈물을 지었을 곳. 그러나 지금 그 물은 그 청춘의 혼을 위로라도 하듯 바위 사이로 흘러가고 있다.

❶ 월정사 선재길 ❷월정사 들어가는 어귀에서 ❸월정사 8각9층 석탑
❶ 월정사 선재길 ❷월정사 들어가는 어귀에서 ❸월정사 8각9층 석탑

석존 진신사리 봉안한 8각9층 석탑

  월정사 경내에 들어서니 왼쪽에 두텁게 켜놓은 목재가 키를 넘게 쌓여 있고, 앞으로 가서 계단을 몇 개 올라가니 정면에 신라 선덕 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불사리 37매를 봉안하고 사리탑을 건립하였다고 하는 설명문과 15m의 화강암 8각9층 석탑이 우리를 맞는다. 반석 기단 위에 세워진 이 탑의 특징은 탑신을 철제 찰주(擦柱)로 관통해서 철편으로 고착한 점이다. 국보 제48호라고 한다.
  흰 목책이 둘러쳐진 탑 주위에 탑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높이 1.7m의 공경 좌상의 보살상이 빙그레 미소 짓고 있다. 두 손을 모아 무릎에 걸치고. 연대는 신라 선덕 여왕 12년이라고 하니 1,300여 년 전의 조각으로는 너무나 솜씨가 빼어난다. 보물 139호라고 한다.

  법당 자리에는 주춧돌만 몇 개 남아있을 뿐 채소가 심겨있었다. 본래 월정사 정중(庭中)에는 석존(釋尊)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8각9층 석탑과 함께 커다란 법당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사찰 대부분이 전소되어 지금 마당에 쌓아놓은 목재와 개울가 목재소에서 켜고 있는 자재로 정면 50자, 측면 48자 크기의 법당을 새로 지으려 한다는 안내 표지판이 사찰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폐허가 된 사찰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모퉁이 곳곳에는 불에 그슬린 기와며 돌들이 쌓여 있다.

7월 31일 여행기(1-5쪽)
7월 31일 여행기(1-5쪽)

깊은 산사에서 독경과 목탁 소리, 별이 흐르는 밤

  목재소 인부들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하니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아 오란다. 다행히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채(寮舍寨)에 빈방이 하나 있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감이 밀려든다. 석탑 밑에 앉아 밤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엔 별 무리가 무수히 반짝이고 은하수 하얀 물결이 내를 이뤄 흘러내린다.
  심산계곡의 개울 물소리와 어둠에 잠겨 든 숲과 무수한 별만 반짝이는 여름밤. 승방에서 흘러나오는 초롱 불빛이 창호지를 벌겋게 비춰 주고 있다.
  깊은 산사에서 밤의 적막을 가르는 목탁 소리와 독경 소리가 고해 중생에게 외경스러운 신비감을 안겨주며 심신 깊이에 스며든다.

  우리는 밤이 깊어가는데도 별에 관한 민담과 전설, 이야깃거리를 이어가며 몇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별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라며…. 마침 한 줄기 유성이 머리 위로 흐른다. (196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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