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서 공간으로(7)
시간에서 공간으로(7)
  • 한숭홍 (장신대 명예교수/ 시인)
  • 승인 2022.07.2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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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여름의 열기 속으로
영주에서 부석사로 가는 지도
영주에서 부석사로 가는 지도

8월 2일 월, 맑음/ 부석사 부석여관에서

영주에서 부석으로

  영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8시 40분에 부석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차는 벌써 떠나고 10시 30분 행이 다음에 있다고 한다.
  8월 1일부터 배차 시간이 바뀌었다는데 초행 여행객이 그걸 어찌 알겠는가. 다음 차가 출발하려면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에 다시 한번 영주 시장과 기념품 가게에 진열해 놓은 토산품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많은 사람이 승차장 앞에서 북적거리며 시끌벅적하다. 이곳에서 제천, 풍기, 봉화, 원주, 부석 등 사방으로 차가 뛰기 때문에 행선지로 가는 차에 오르려는 사람들과 표를 사려 매표소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 행상들로 정류장 안팎이 어수선하다. 매표창구에 학생증을 제시하니 30% 할인된 학생요금 차표를 끊어 준다.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부석 행 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날이 몹시 더워 사람들이 지쳐있었다. 차가 시골길로 접어들어 40분가량 달리고 있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옆 사람이 바른편 차창 밖을 가리키며 저기 송림이 무성한 곳으로 조금 들어가면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차창을 통해 점점 멀어져 가는, 숲이 우거진 그곳을 쳐다보니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웠던 서원의 역사가 아지랑이처럼 아물아물 피어오른다.
  소수서원은 명종 5년(1550), 이곳에 군수로 부임한 이황의 상언(上言)으로 왕이 칙액(勅額)을 하사하고 전과 노비도 내주어 시작하였으므로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를 이른 곳이다. 고종 8년(1871)에 당쟁의 해결책으로 서원 철폐 결정을 내렸을 때는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남겨지게 되었단다. (사적 기록 설명문)

8월 2일 여행기(1-2쪽)
8월 2일 여행기(1-2쪽)

부석에서 밤을 보내며

  부석 마을에서 영주로 나가는 막차가 3시 30분에 있다고 하여 부석사를 구경하고 영주로 나갈 예정으로 차에서 내려 그곳까지의 거리를 알아보니 앉아서 듣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봄이나 가을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 때문에 차가 절 근처까지 올라갔지만, 요사이는 절에 가는 사람이 적어 마을까지만 운행한단다.
  여기에서 절에 가려면 산길로 4km 이상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3시 30분까지는 이곳 버스정류장에 와 있어야 하는데 부석사 들머리에 도착하니 3시경이었다.
  나는 여행일정에 맞추려고 오랜 시간 동안 심신을 혹사했는데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피로감을 몰고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묵언의 저항!
  여행이란 날씨나 지형, 주어진 조건에 따라 만들어져 가는 과정일 텐데, 의지로 과정을 지배하려 해서야…
  아무리 주사위를 던져봐도 절을 구경하려면 내일이나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 판이다. 뒤틀어진 일정이 역정스러울 법도 한데, 오히려 긴장이 풀리며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우선 계곡물에 몸부터 씻고 땀에 젖은 속옷과 남방셔츠를 빨아 바위 위에 널어놨는데 남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파란 하늘을 덮으며 북쪽으로 밀려가고 멀리 서는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소낙비라도 올 기세다.
  젖은 옷을 불이 나게 껴입고 밑으로 내려올 때까지 천둥은 은은히 들려왔다.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푸니 마음이 한결 가뜬하다. 흐르는 물에 담겨놓은 음료수를 몇 모금 마시며 잔디밭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하늘은 점점 컴컴해지고 별빛은 구름에 가려 전혀 볼 수 없다. 월정사에서 밤하늘을 수놓았던 그 많던 별은 어디로 갔나.
  부석여관 대청마루에 걸어놓은 희미한 남포등 아래서 저녁을 먹는데 한편에서는 관광객 대여섯 명이 술에 취해 밤이 깊도록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밤을 새운다. 내일은 부석사를 봐야 한다.
 (19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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