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천국은 어때”
“엄마 천국은 어때”
  • 전태규 목사 (감리교 31대부흥단장, 서광교회)
  • 승인 2022.08.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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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규 목사.
전태규 목사.

최근에 나는 모 감독의 사모와 중매 일로 자주 카톡을 나누었다. 그 후에 친구를 통해 사모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중매를 서다 중매장이가 먼저 가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밤새 안녕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가 보다. 

지혜서 중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는 말씀을 수없이 외쳤지만 정작 나는 잊고 살아온 듯하다. 어느 시인은 인생은 소풍을 다녀온 것과 같다고 하였다. 사모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먼저 입성하신 성도들에게 잠시 세상에 소풍 다녀온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어떻게 유가족들을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에 내가 본 사모님을 글로 남겨 추모해 주고 싶다.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자연히 남편 목사님과의 만남부터 말하게 된다. 나는 1979년 결혼하고 당시 신학생으로 갈현중앙교회 전도사로 사역하였다. 어느 여름날 은혜를 받기 위해 불광동 할렐루야 기도원을 올라갔다. 마침 저녁부터 한남지방 연합성회가 열렸는데 강사는 구본흥 목사이셨고 감리사는 양총재 목사였다. 첫날 광고시간에 교역자들이 나와 인사를 하는데 그때 그 목사님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당시는 신학생이 교역자들 인사하는 자리에 끼질 않았는데 이들은 체격도 크고 첫인상이 전도사 같았다. 그 후 1979년 9월 감리교 서울신학교 편입하는 자리에서 두 번째 만났다. 이후 우리는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고 또한 웨슬레선교단에서 함께 모이면서 가까운 교제를 쌓아왔다. 이들은 문래동교회서 청년회 활동 시절에 하나님께서 연상 여인을 아내로 맺어줬다고 들었다. 지금 나는 문래동교회 근처에 살면서 저들이 과거에 이곳에서 놀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하나님의 뜻 앞에 넓고 큰길 다 버리고 좁고 험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태초에 예비하신 배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받은 자만 아는 비밀이다. 나의 아버지도 평소 나는 열 번 남자로 태어나면 열 번 목사하고, 열 번 여자로 태어나면 열 번 사모하시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나는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후에 목사가 되고 나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목사님의 처음 하남에서의 개척은 녹록치 않은 환경이었다. 훗날 어렵게 종교부지에 주님의 교회를 건축 하였으나 재정 압박을 받으면서 열심 있는 후배에게 성전을 넘겨주는 힘든 결정 앞에서도 사모님은 묵묵히 주님의 뜻을 따르며 남편을 격려해 주었다며 사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였다. 내 기억 속에는 사모님은 남들보다 영성이 깊으셨다. 기도를 드리다가도 순간 방언 기도가 나오면 흐느끼는 듯 하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기도를 이어가곤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모님에게 기도원 원장이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2009년 내가 감리교 부흥단장 재임 시절 양평기도원에서 연합성회 폐회예배 설교를 목사님이 하였다. 그때 사모님은 내가 부흥단장 하는 것을 무척이나 귀히 여겨주던 모습이 선하다. 자녀들이 사모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은 한편의 순애보 같다. 연수원장이라는 피곤한 삶 속에서도 병원으로 퇴근하며 세상의 의학은 한계가 있어 새로운 신약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면서 하루하루를 숨막히게 살아왔다. 사모님은 그런 와중에도 자녀들이 다 컸으니 내가 먼저 가도 사명 잘 감당하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오히려 위로를 해주었다고 한다.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오라하시니 순종하여 떠나던 날 코로나의 적막함 속에서도 평소에 쌓아둔 사랑과 덕으로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슬픔 속에서도 장례식을 은혜롭게 마치었다. 장례를 마친 후 조의금 일부를 가족들과 의논하여 어머니 이름으로 연수원에 등록하기 어려운 비전교회 교역자들 등록금으로 기증하였으니 사모님의 값진 헌신이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였다. 어머니가 하늘나라 떠난 며칠 뒤 외동딸이 어머니께 이메일을 띄웠다. 진실은 통하니 읽는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그대로 옮겨 본다.

“엄마, 천국은 어때? 아픈 곳도 없고 걱정도 슬픔도 없고.. 진짜 그렇지? 엄마가 없는 우리는
그 어떤 걸 해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네. 정말 가슴이 뚫린 것 같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엄마가 마지막까지 있던 예서 방에서 자고 그랬는데 한번을 안 나타나주네. 섭섭하게...엄마 보내고 우리 삼 남매 부부가 며칠 동안 아빠 곁을 지키며 엄마 물품 정리하고 청소하고 그랬어. 엄마의 70년대 일기장, 미코 새언니랑 대화하고 싶어서 열심히 배워온 일본어, 영어 노트들, 언제 다 땄는지 많은 자격증들, 그리고 엄마가 언제 적었는지 우리들을 보고 싶어하며 유언같이 남겨놓은 메모 등등. 순간순간 엄마의 흔적을 보며 우리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호흡기도 하지 말라고 적어 놓은걸 보고 우리는 엄마 하루라도 더 보고싶다고 호흡기를 못 뺏던 지난 시간을 또 자책하며 슬퍼했어. 미안해 우리는 마지막까지 엄마의 마음을 너무 몰랐네. 그러는 사이 여기는 완연한 봄이 왔어.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여기저기 꽃들이 만개해 너무 예쁜데, 자꾸 꽃 볼 때마다 눈물이나. 당분간 봄은 내게 너무 슬픈 계절이 될 것 같아. 약 한두 달의 시간이 정말 꿈같아. 이번엔 다른 치료법으로 한다 했을 때 우리 모두 4년 전처럼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한번, 두 번 치료 할 때마다 치료가 되기는커녕 더욱 고통스러워 했던 엄마. 내가 모시면 잘할 줄 알고 우리 집으로 모셔오고 엄마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렌지 주스만 간신히 삼킬 때만 해도 이 치료만 끝나면 금방 좋아질 것 같은 알 수 없는 믿음에, 난 예서 학교 적응시키느라, 일하느라 엄마 곁을 늘 지켜주지 못했어. 그때마다 예서 방에서 힘없이 누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돌아보니 엄만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이미 그전부터 마지막 말들을 얘기했는데 나는 약한 소리 한다고만 했어. 엄마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낄 때마다 응급실을 몇 번을 오가는 동안 아무도 엄마가 어떻다고 얘기를 안 해줘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마지막 갔던 응급실에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입원을 했고 코로나로 얼굴도 못본 채 발만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다른 병원들을 알아봤던 다급했던 시간들. 그 시간 들이 불과 한 달여 전인데...엄마, 이 영상 기억나? 마지막으로 엄마 얼굴 볼 수 있게 허락된 단 하루. 병원 가는 길에 막 피어오른 벚꽃을 보자마자 영상으로 찍었어. 엄마가 너무도 좋아한 꽃. 이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힘없이 꿈벅이던 눈빛에 난 무너지는 것 같더라. 엄마의 달라진 얼굴보며 더 이상 이 예쁜 꽃을 같이 볼 수 없음이 현실로 와 닿았어. 그래도 엄마, 천국 가는 길은 이렇게 많은 꽃들로 뒤덮였어. 얼마나 많은 꽃들이 왔는지 놓을 곳이 없을 정도였어. 내가 엄마 보자마자 한없이 우니까 울지 말라고 내가 먼저 천국에 갈 뿐이라고. 넌 최선을 다했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난 걱정 없다고.. 한숨 한숨 겨우 내쉬며 간이 녹는 그 순간에도 날 위로해줬던 엄마. 문득 엄마가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봤더니 너희를 낳았을 때, 사모가 됐을 때.. 그리고 모든 순간이 기뻤고, 모든 순간이 감사 했노라고 고백하던 엄마. 엄마를 보내던 그날, 엄마가 아주 예전에 꿈꿨던 수많은 행렬이 엄마의 장례에 와서 슬퍼했다던 그때처럼 갑작스러워 연락도 다 못했는데도 정말 많은 분들이 와서 한마음으로 슬퍼해 주셨어. 얼마나 슬펐는지 하늘도 내내 비가오더라.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며 아직도 연락이 와.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왔는지, 살뜰히 챙기며 섬겼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어. 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엄마, 우리 모두 너무 힘들지만, 슬픔을 넘는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받은 위로와 소망으로 조금씩 힘내볼게. 아빠도 더 살뜰히 챙기고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살게. 엄마가 마지막까지 바라던 모습대로 하나님과 엄마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하게 살게. 그러니까 가끔 우리 꿈에라도 나타나줘. 늘 우리 지켜봐줘 알았지? 엄마, 내가 너무 사랑해. 그리고 보고 싶어. 꿈에서라도 꼭 만나자” 

그의 딸이 기록한 어머니를 향해 쓴 편지를 옮기면서도 너무 그 마음이 절절하여 목울음이 치밀어 오른다. 그의 딸의 글을 보며 나그네 인생길에 딸 하나는 꼭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게는 그 길이 영영 보이질 않지만! 딸 없는 분들 이글 읽으시고 더 늦기 전에 시도는 해보는 것이 어떨지. 하지만 인간의 생각으론 막막하다. 내게 딸이 생기면 그때는 톱뉴스거리가 되겠지!
오 주님! 사모님이 남겨둔 가족들을 주님이 지켜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가정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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