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965년
나에게 그 해가 무슨 의미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펜과 잉크와 원고지의 노예가 되고 싶었고
창조의 신비를 깊이 더듬어 보고 싶었다고
맹세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다시 한번 그 해를 되돌아보면
몇 송이 꽃, 꿀과 향기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었고
그 속에 몸을 담그고 꿈속을 유영하곤 했었다네
1965년
나에게 그 해가 무슨 의미가 있었냐고 다시 묻는다면
내 살과 피와 영혼의 흙을 밟아보았고
낯선 삶의 자리마다 찾아가며 나를 섞어보았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흙벽을 허물며
장마와 작렬하는 태양과 폭풍우를 견뎠었다고
긴 여정은 죽음과도 바꿀 수 있었던, 하지만
역마살이 낀 광기로 보낸 여름이었다고 말하리라
1965년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네
그래 동해안 휴전선 철책 앞에서 서해 낙도 홍도까지
그런데 혹시 그 돌섬이 예이츠가 찾던 이니스프리*가 아니던가
영산의 섬 탐라에선 무엇을 보았는가
바닷가를 끼고돌며 잡풀 둔덕 곳곳에 세워진 검은 비석들
공비들에 의해 몰살된 순경 가족의 젖먹이 이름까지
훗날 다시 찾았을 땐 비석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
연분홍 꽃 빛 편지 남몰래 읽고
애잔한 마음에 맴돌곤 하던 뽀얀 얼굴들
숱한 인연의 웃음 속으로
나, 지금 섞어가고 있으니
1965년, 그 해는 나에게
깊은 추억과 그리움이 스멀거리는 해이기도 하다네
나는 그때의 나로서 지금도 그곳에 머물러 있다네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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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스프리(Innisfree): 아일랜드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예이츠(William B. Yeats)의 시에서 이상향으로 묘사된, 목가적이고 향토색 짙은 시상 속의 호수섬(The Lake Is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