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많이 알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나는 정말 만남의 복을 받았다. 우선은 학창시절 에는 믿음이 좋은 교사들을 만났고, 강원도 양구 21사서 군대 생활 할 때는 최용주 조교와 이승환, 남철우 소대장을 만난 것, 또한 내가 속한 교단의 어른이신 한치생, 송민섭 목사님을 군종참모로 만난 것은 큰 복이다.
생각해 보니 뭐하나 복이 아닌 것이 없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면 우선은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아버지는 경찰공무원에서 부름을 받고 목회 길에 들어스셨으니 나는 출발부터가 복이다.
1974년 1월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중요한 시점에 고인 되신 이천석 목사님이 논산 화정교회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나는 그 집회에서 성령의 불을 받고 인생길이 바뀌었다. 신학교 들어가서 1학년을 마치고 강경지방 성민교회로 목회 첫 발을 내딛었다. 그 지역의 영적 산실인 가야곡 영암기도원을 즐겨 찾았고 아버지 뒤를 이어 찬양 인도자로 몇 년간 유명세를 높였다. 그때 강사로 오신 신현균 목사님이 집회 중에 나를 나오라 하시더니 우리는 이기리라 하시고 찬양을 인도하라 하여 열심히 인도하였더니 나를 전체가 보는 강단에서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라고 축복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지금은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서 그의 아들 신광준 목사와 함께 일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숨은 뜻에 놀랍다.
목회 현장에 나와 이호문 감독님을 만나 7~8년간 후회 없이 함께 큰일을 열심히 하였다. 사람들이 나를 이 감독님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가 좋았다. 그곳에서 지금의 윤보환 감독을 만났다. 후에 그분이 운영하는 인천 성서신학교에서 부흥사 대학원이 시작되었고 나는 초기부터 주임교수로 가르치며 일하였고 지금은 영성부흥 동문 졸업생 78명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 목사님을 세 차례 초대받아 환담하였으니 뭔가 기대가 생기는 중이다. 이 어른이 남기신 어록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에 나는 100% 아멘으로 화답한다.
나는 신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게 크고 작은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내 신조는 나를 불러 달라고 먼저 말한 기억 없고, 초청하는 곳은 중복되지 않는 한 거절한 기억도 없다. 개척교회가 잡혀 지방 집회를 몇 차례 놓친 적은 있다.
최근에 나는 속초 임마누엘 기도원과, 인천 소망교회 영성원 집회를 여러번 인도하였다. 인천 소망교회 최승리 목사는 열심히 대단하여 내가 늘 ‘사서 고생하시는 목사’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그동안 나는 봉사한다는 마음에서 여러 번 다녀왔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준 것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부터는 한없는 기쁨이 샘 솟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첫째, 달력 이다.
우리교회가 사용하는 3단짜리 달력이 아주 좋은데 아쉬운 것은 음력 표기가 총총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 생일 자를 주보에 넣을 때 종종 실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소망교회 달력은 내가 지금까지 보던 중 최고가 아닐수 없다. 생각해 보니 원장님이 보는 안목이 있다. 그래서 한 부를 가져와 내 방에 걸었으니 소망교회는 복 터졌다.
둘째, 안마 운동기구이다. 오후 집회를 마친후 저녁까지 기다리려면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이 내게는 퍽 부담이 된다. 지난번 집회 때는 인천에 사는 강 목사님이 나를 월미도 구경을 시켜주고 저녁 식사로 바지락 칼국수를 사주어 잘 먹고 돌아왔다. 본래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번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은근한 걱정이 된다. 그런데 쉬는 공간에 아들이 어머니 건강을 위해 사준 안마기가 있어 그 의자에 앉으면 몸을 조여주어 피곤이 확 풀린다. 이곳에 욕심 나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데 우리 집에도 없는 고가의 안마 기계가 제일 부럽다. 원장님은 나이가 들면서 그것 없으면 잠시도 못 산다고 하신다.
셋째, 바나바 같은 착한 일꾼을 만났다. 내가 있는 장소에서 갑자기 벨소리가 울린다. 원장님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작년에 어머니 병환으로 집회에 오기로 했다가 못 오고 이번에 신문 보고 다시 생각이 났단다. 지금 코로나가 좋아졌다지만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더구나 외부 집회까지 찾아오는 것은 아주 열심히 특별히 마음먹지 않으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어찌됐든 그는 집회시간에 참석하였고 각자 황소 한 마리씩 드리자는 사회자의 말에 처음 왔음에도 배짱 있게 461장 ‘십자가를 질수 있나’ 찬양을 은혜롭게 드렸다.
이렇게 집회는 마쳤고 그는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그날 김 전도사가 찍어 보내준 특송 장면 사진을 전해 줄 겸 원장님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원장님께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를 드렸는데 이것이 큰 인연이 되었다. 그는 내 고향 충청도 논산 분이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가톨릭 계통의 학교로 이웃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그도 내 집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비슷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오네시모를 만나 영원한 사람으로 만들었듯 이번 만남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룬 기획 작품으로 나는 믿는다.
그는 이후 대전으로 이사 와서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지금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재직한다고 했다. 내가 늘 부러워하는 영어인데, 하나님께서 앞으로 임 집사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려는가보다. 그분의 숨은 뜻이 느껴지기에 은근히 기다려진다.
앞으로는 더욱더 좋으신 하나님께 나의 일생을 맡기련다. 너무나 정확하신 하나님을 뜻을 알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