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의 우리나라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쇄국정책으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상태로 세계정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당파싸움이 과열되고 있었으며 외세의 압력으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의 우리나라는 이처럼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었다. 세계 강국들에 의하여 식민지배가 보편화 되어 있던 시대에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였다.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기독교 정신은 자유대한민국의 발전에 너무나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 역사적인 발걸음을 짧게라도 돌아보는 것은 이 시대를 조명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크리스천들이 겸손하게 사역의 현장에서 고마움을 가지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선교사 입국의 흐름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북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가 단편이지만 일본에서 조선어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뒤를 이어 감리교 스크랜턴 부처와 모친 매리 스크랜턴, 헤론이 입국하였다.
호주장로 교회에서는 1889년 10월에 데이비스와 그의 누이가 입국하였다. 그리고 영국 성공회에서는 1890년 코프 감독과 6명의 목사, 그리고 2명의 의사가 조선 땅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였다.
미국 남장로교는 1892년 호남지방 선교를 시작으로 테이트 목사, 그의 누이 마티, 데이비스,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 이눌서 목사, 전킨 목사가 선교를 진행시켰다.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는 1896년 리드 목사를 보내었다. 그리고 캐나다 장로교회 출신인 맥켄지 목사는 독립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소래에 거주하면서 서경조(서상륜의 동생이며 후에 장로교 초대 목사가 되었음)의 도움을 받아 소래교회를 신축하였다.
후에 캐나다 장로교회는 맥켄지의 죽음을 계기로 1898년에 그리어슨 부처, 푸트 목사 부처, 맥캐어가 함경도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펜윅을 통하여 시작된 침례교의 선교는 1895년 폴링, 게이들린 등이 충청도 공주와 강경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중단되자 펜윅이 인계하여 1906년에 ‘대한기독교회’라는 독자적인 조직을 갖추고 선교에 착수하였다.
성결교회는 도쿄에서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 정빈이 1907년에 귀국하여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1921년 ‘조선 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라고 개칭하고 웨슬리 사상을 따르며 4중복음의 교리를 가졌다.
또한 구세군의 선교는 1908년 호가드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자유교회로 알려진 플리머스 형제단은 1896년부터 시작되었고 노리마츠와 조덕성, 신태일 등과 함께 서울과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펼쳤다.
선교사들이 다양한 면에서 조선의 개화와 사회적인 계몽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 인사들은 선교사들을 일정부분 다른 인사들보다 좀 더 신뢰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에 대한 보다 큰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전국적으로 자유로운 선교는 유보돼 있었고 전적으로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우회적으로 조심스럽게 트라이앵글 선교정책으로 선회하여 먼저는 학교를 설립하였고 다음으로 병원을 개원하여 국민들과 친숙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선교초기 목숨을 담보로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생명의 그리스도를 전하였던 선교사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복음을 받은 후손으로서 지혜로운 선교방법을 채택한 선교사들의 사역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였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 제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초대교회 이후 지구촌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물론 한국교회 선교역사 140년의 세월동안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목양일념으로 성령의 열매를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왔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역자들의 수고에 성령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간구한다.
장차 선교 강국으로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선교단체가 더욱 발전되어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땅 끝까지 증거하며 창조의 사명, 복음의 사명, 사랑의 사명을 전하는 탁월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