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산상보훈으로 왔습니다.
그동안 오랜만에 긴 시간 독일 언저리를 여행하느라고 여행 중에 마주한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선 꽃"마냥, 믿음의 거울이자 행위의 거울인 성경말씀, 그것도 산상보훈 앞에 섰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하늘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며 참고 견디는 것이 소망의 인내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확실하고 분명한 사람이라야 주님을 위해 욕도 감수하고, 온갖 비난도 감수하며, 박해조차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욕을 먹은 적 있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악한 말을 들은 적 있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박해를 감수한 적이 얼마나 되십니까?
내 잘못으로 욕 먹는 것 말고, 주님을 위하여 욕을 감수해야 믿음이요 복입니다.
악한 말? 새번역은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이라고 쉽게 알려줍니다. 주님 때문에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을 때 그것을 감수한 적이 있기는 합니까?
내 인격과 내 이익에 반하는 일에는 쌍심지를 켜고 대들거나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을 위하여 터무니없는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왜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며 하늘 향해 삿대질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나 같은 사람이 주님을 위해 터무니없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내게 주님을 위해 모욕을 당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웬 일인가? 웬 은혜인가?
그런 모욕과 비난과 박해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고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모욕을 감수한 적 있습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온갖 오해를 받으면서도 잠잠한 적 있는가 말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욕을 먹은 적 있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박해를 받은 적이 얼마나 되느냐는 말입니다.
교회를 위해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복음을 위해 손해를 감수한 적이 몇 번 쯤 되신가요?
가만히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고통과 핍박과 모욕들은 내 잘못. 내 실수. 내 죄. 내 문제로 말미암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참지 못한 우리의 인품, 끊어내지 못한 우리의 습관, 절제하지 못한 우리의 본성, 그리고 정욕과 이기심에 휩쓸리기 십상인 우리들의 죄성으로 말미암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가 십자가라도 짊어진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정직하게 우리의 삶과 행위를 돌아보면은 우리의 무지와 실수, 그리고 나의 정욕과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당연한 업보(?)가 대부분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벧전 2장)
애매한 고난. 죄와 실수로 받는 고난. 주님을 위해 선을 위해 받는 고난.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이라야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고 많습니다. 물론 애매한 고난이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아름답습니다. 더욱 아름답고 복된 고난은 주님을 위해 선을 행하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내가 주님을 위해 이런 고난을 받을 수 있다니, 내가 교회를 위하여 이런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니, 내게 복음을 위해 이런 모욕을 감수할 기회를 주시다니,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고 많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다면? 하늘에서 주는 상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들일 것입니다.(고전 15:19)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고전 15:20)
할렐루야! 코 빠진 인생 말고, 하늘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의기양양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