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보면 등대가 있습니다.
그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이 어느 쪽에서 오든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선장은 배의 위치와 등대의 위치를 감안해서 항구로 안전하게 입항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등대가 잘 안보인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직합니다. 항구의 특성상 여기저기 땅의 돌출부위나 바닷속 깊이의 차이로 배가 좌초할 위험이 높아집니다.
모든 건축물들을 보면 채광과 조명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유명 건축물일수록 자연 채광으로 건물의 용도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자연 채광이 되지 않는 어두움이 찾아오면? 그때 비로소 조명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가 판가름 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4-15)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습니다.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감춰질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도록 지음을 받고 은혜를 받은 존재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걸어둔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도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걸어두거늘 하물며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세상의 빛이라 칭하시면서 숨어서 살기를 원하시거나 숨겨지기를 바라시랴?
그럴리가 없습니다. 빛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숨겨진 빛은 빛이 아니고 이미 어두움이니까요.
빛을 비춰서 사람들의 삶을 밝게해야 비로소 빛입니다. 그 빛으로 사람들이 가야할 길을 잘 안내해야 빛다운 빛입니다. 빛은 숨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숨겨질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 앞에 서면 다 들어날 것인데....(시 139편) 뭘 숨기고 뭘 감춰요?
나 혼자 있을 때, 나의 행동과 선택이 주님께서 보시는 나의 모습입니다. 그대 홀로 있을 때,
그대의 행위와 결정과 삶의 모습이 주님께서 평가할 그대의 실상입니다.(고전 4:4) 주님께서 나를 세상의 빛이라 불러주셨거늘. 주님께서 당신도 세상의 빛이라 칭하시거늘. 주님께서 빛이라 불러주신 우리기 어두움 속에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것들은, 모양조차도 버리는 것이 경건이며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인 저와 여러분은 등경 위에 놓인 등불입니다.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빛을 비추는 존재가 어떻게 그 빛을 감추랴?
그릇으로 덮는다고 다 덮어지겠습니까? 차광막으로 가린다고 언제까지 가려지겠습니까? 그러니 숨을 생각 아예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감추려고 그릇으로 덮는다거나 암막을 칠 필요도 없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려해도 비취는 빛처럼 살아야 합니다.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 집안 모든 사람에게 두루 비친다면 금상첨화!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나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곳이 좀 더 밝아지기를 주님께서 기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인 그대로 말미암아 그대의 주변이 좀 더 밝은 세상이 된다면 주님께서 미소지으시리라.
오늘 하루도 이 좋은 날에 생명의 빛으로 화~안하게 삽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