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을 나누면서 성서사전이나 주석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은퇴하면서 후배들이나 교우들에게 사전이나 주석은 대부분 나눠주었기 때문이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며, 성서학자들이나 현역 목회자의 몫이라고 여긴 까닭입니다.
제가 나누는 묵상은 70년 인생 경험과, 45년 성경 묵상을 토대로, 그날그날 주신 감동과 영감을 나누는 것일 뿐입니다. 혹시라도 성서해석이 틀렸느니, 맞았느니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각각 만져본 부분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이야기처럼, 내가 묵상하는 중에 주신 감동을 나눌 뿐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제가 나눈 묵상이 마음에 안들거나, 더운 날씨에 열을 받게 한다거나 틀렸다고(?) 생각되거든, 너그럽게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모든 가정에서 경험한(?) 것처럼, 엄마와 아빠가 누구 편이냐 물으면 아들은 엄마와 아빠가 누나 편을 들어줄 때가 많다는 것이고, 딸은 그 반대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동생 편을 들어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둘 다 엄마와 아빠가 상대방 역성을 들 때가 더 많았다고 느꼈다는 것은, 우리 부부가 아들과 딸에게 공평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도 아들과 딸에 대한 우리 부부의 태도는 산술평균에 가깝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공평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고, 너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도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공평하게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세상 모든 나라를 두루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녀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떠올려야 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최소한 상식 선에서 지켜야 할 공평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뼛속까지 새긴 교훈. "나는 그러지 말고 살아야지!" 미움이나 원망은 없지만, 가슴 깊이 새기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합니다.
반면교사로 삼은 교훈적인 사건을 다시 나눠봅니다.
초등시절. 시험을 수시로 봤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들과 시험지를 비교하며 깔깔대기도 하거니와 시무룩할 때도 있었지만, 그깟 시험에 인생이 걸렸다고 여기지(?) 못했기에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1학기를 마치고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내 일생 일대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것만 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옆에 있는 친구 것을 보는 순간 충격.
내 기억으로는 내가 그동안 치른 시험성적이 거의 그 친구에게 뒤진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내 성적이 그 친구보다 못하게 나온 것입니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충격으로 온 몸이 쥐가 났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고 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밥도 먹지 않고 울음은 그치질 않았습니다. 뙤약볕에 수박밭에서 수박을 가득 따서 지게로 땀을 쏟으며 지고오시던 아버지가 인사도 하지 않고 울고있는 아들에 대해, 김치를 담그시던 어머니에게 전후사정을 들으시더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시면서 내 곁으로 오셔서 하시는 말씀.
"다 이 애비를 잘못 만나서 그런다"
한 시간 넘게 서럽게 울던 울음이 뚝 그쳤습니다. 눈물 콧물 쏟아지던 액체가 쑥 들어갔습니다. 더 이상 울어서는 안된다는 당위(?)가 생겼습니다. 더 이상 울면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거짓말처럼 울음도 그치고, 마음도 다잡고,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때로 공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 대부분 공정하지만 모두가 공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교사로 봉직하고 목사로서 살았습니다만 너는 범사에 공평하고 공정했냐고 물으신다면 최소한 상식과 교양의 선은 지켰습니다. 앞으로도 지켜야 할 공평과 공정을 유지하는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졌으니까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