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의 함자는 "전"자, "재"자, "근"자입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습니다. 혹은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당신의 이름"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올린 기도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누구 이름입니까? 당신의 이름입니다.
"당신의" 라는 표현이, 한국어 용례 상 우리 말 성경에서 생략된 것 뿐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즉 "아버지의 이름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즉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이름"만 떼어서 생각합니다.
이름이 갖는 무게는 구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이름은 본성과 성격, 그리고 인격을 포함하여, 그 존재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가"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기도하는 우리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우리들의 입술은 물론 생각과 영혼 그리고 전 존재로, 하나님의 권능과 충만함을 고백하고 누려야 할 것입니다.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혹은 "야훼"입니다만. 하니님을 의미하는 "엘"이나 "엘로힘" 혹은 "야훼"나 "여호와" 라는 말에 수식어나 서술어를 함께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통용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가 쓰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아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등등.
야훼 혹은 여호와에 붙여서 쓰는 이름.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여호와 샬롬. 여호와 샴마. 등등.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고백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나 알량한 자기 경험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축소지향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지어다!
왜요? 하나님 생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높으시니까요.(사 55:8-9) 하나님의 길은 어디서든지 우리가 찾는 길보다 높고 좋으시니까요.
하나님의 약한 것이 우리의 강한 것보다 강하시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우시니까요.(고전 1:25)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그때그때 가장 절박한 자신의 문제해결에 적합한 이름을 생각하며 부를 것입니다.
만약에 눈이 침짐하다면 "사람의 눈을 밝게 하신 하나님!"이라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부를 것입니다.
불안하고 걱정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면 "사람의 심령에 평강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여!" 간절하고 확실하게 부르는 순간 영적 스파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는 날에 따라서 간절한 분야가 달라지는 게 인간입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그리고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신뢰도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뭐라든지 간에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의 의미와 무게를 담아 불러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주는 감동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능력을 충분히 생각하며, 간절하게 "아버지의 이름" 부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벅차오릅니다.
이 묵상을 읽는 당신도, 오늘 "아버지의 이름"에 감동이 벅차오르기를 빕니다.
샬롬!